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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ara 라라 Oct 27. 2024

[시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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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순이]     


 크리스마스이브 날 아침이 되었다. 지혜의 남자 친구가 차를 가지고 왔다. 혼자가 아니었다. 다른 차도 한 대 더 있었다. 지혜의 남자 친구와 한 명, 또 다른 차에는 운전자와 다른 한 명이 있었는데 이 둘은 커플로 보였다. 이렇게 총 네 명이 두 대의 차를 타고 시애틀에서 왔다. 한국인인데도 뭔가 느낌상으로 미국물을 많이 먹은 사람들 같다고 해야 할까, 인사를 하며 싱긋 미소를 보냈지만 왠지 어색했고, 미미는 버벅대기까지 했다. 두 차에 짐을 나눠 싣고 순이와 미미는 지혜와 남자 친구 차에, 지혜의 남자 친구 차에 타고 왔던 사람은 제니와 함께 다른 차에 올라탔다. 그 사람은 전에도 지혜한테 놀러 와서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어 제니와는 얼굴을 아는 사이라고 했다. 

    

 바다를 끼고 커다란 다리 위로 차가 진입을 했다.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국경을 넘는 시간이다. 총을 든 군인들이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긴장이 됐다. 그들은 주차를 하도록 신호를 보냈고 순이 일행의 차 두 대는 주차를 한 후에 입국 수속을 밟기 위해서 어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은 차 안에서 신원확인을 하고 국경을 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여행자이자 방문객이 차에 있다는 걸 알아서인지 따로 수속이 필요한 것 같았다. 지혜 남자 친구도 약간은 긴장된 표정이었는데, 순이가 미국에 있을 때 동양인들에게 은근한 차별을 주었던 사람들이 떠올라 순이도 순간 소름이 돋았다. 하라는 대로만 하면 크게 문제가 없을 거였다. 미미는 자신이 영어를 알아듣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속삭이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만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순이는 미국 여권을 꺼냈다. 미국의 시민임을 증명하는 명확한 표식. 밴쿠버 입국 도장이 없어서 그걸 빌미로 트집 잡을까 봐 순이는 걱정했는데 다행히 여권만 확인하고 별다른 말은 없었다. 모두의 미국 입국 수속이 조용하게 지났다. 차에 다시 타서 미미는 사실 무서웠다고 슬쩍 순이에게 흘리듯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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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출입국 사무소를 그렇게 지나갔다. 여기는 시애틀입니다, 미쿡입니다, 지혜의 장난스러운 소개로 마음이 조금은 안심되었다. 다리를 하나 건넜을 뿐인데 나라가 바뀌었다니, 미미는 기분이 이상했다. 시애틀은 느낌도 새로웠다. 영화에서 보았던 약간은 도시풍이지만 그런 바닷가 마을의 기분이었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시애틀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성비 좋고 유명하다는 버거를 테이크 아웃 해서 주차장에 나란히 두 대의 차를 대고 앞뒤 네 개의 문을 활짝 연 다음에 커다란 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은 거였다. 콜라도 사이즈가 굉장히 컸다. 미미는 드라이브스루를 처음 경험해 봤다. 남자들은 버거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콜라를 쭉쭉 빨아 꿀꺽꿀꺽 삼켰다. 커다란 컵 속의 콜라가 줄어드는 게 소리만으로도 상상이 갔다. 이게 아메리칸 스타일인가 신기해하며 미미도 티를 내지는 않고 탄산을 입속에서 없애고 살짝 삼켰다. 버거는 얼굴만 했다. 비싸서 자주 가지는 못하는 버거킹의 패티 같은 그릴의 맛이 났고 약간 탄 맛과 소스의 달달함은 바로 다른 한 입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늦은 점심에 배가 고파 미미는 열심히 먹었다. 그래도 줄지 않아 절반 정도는 남겼고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순이는 의외로 잘 먹어 두 입 정도만 남겨두고 입을 닦을 수 있었다.      


 차로 천천히 시애틀 시내를 구경했다. 아, 이런 게 진짜 해외여행이구나! 이런저런 설명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지만 미미는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하느라 어떤 단어도 귀속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한 바퀴 돌고 마트에서 장을 본 뒤에 집으로 갔다. 집에는 여러 명이 더 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 명 두 명씩 더 도착했다. 먹을 걸 가지고 오는 친구도 있었고, 술을 들고 온 친구도 있었다. 여자, 남자, 형, 동생, 다양한 사람들이 왔다. 모두 다 한국인이었는데 한국말에 능숙한 사람도 있었고 영어가 더 자연스러운 사람도 있었다. 신기했다. 파티 문화. 음악이 흘렀고, 부엌이든 거실이든 방이든 1층은 일상인 듯이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사람들이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미미는 소파에 앉아서 이들을 지켜봤다. 순이도 제니도 어느샌가 그들 사이에 껴서 자연스러운 하나의 그림이 되고 있었다. 지혜와 제니는 홀짝홀짝 술을 잘 마시고 있었고, 미미와 순이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기도 하고 평소에 학교에서 말고 마실 기회가 많지 않기도 했는데 분위기에 휩쓸려 무언가를 계속 손에 들고 있었다. 대부분은 맥주, 가끔은 샴페인이나 와인. 맥주나 소주 이외의 술은 처음이었다. 한쪽에는 평범한데 인상이 따뜻해 보이는 남자도 있었다.     




 숙취의 두통으로 크리스마스 당일을 맞이하였다. 커튼이 다 처져있어서 방은 어두웠고 밖은 전날 밤과는 달리 고요했다. 제니와 순이는 한 명은 침대 위에서 다른 한 명은 미미 옆에서 단잠에 빠져있었다. 더듬어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보니 이미 12시가 넘어 있었다. 새벽이었을 텐데 몇 시에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목도 마르고 머리도 아프고 공기도 너무 탁해서 슬며시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크리스마스트리는 변함없이 반짝이고 있었고 거실 소파와 테이블은 파티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조금은 들떠있고 조금은 따뜻하면서도 질서 없이 흐트러져 있는 물건들. 부엌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조용히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어제 본 것 같기도 하고 처음인 것 같기도 한 인상이다. 헬로, 잘 잤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미미에게 말을 건다.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이구나,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셨다. 그녀는 자신이 앤디의 오래된 친구이고 어제 잠깐 들러서 스치기는 했는데 아마도 자기를 기억하지는 못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약간 까무잡잡한 피부에 머리는 노랑과 갈색이 섞여 있는 파마머리여서 또 한국말도 서툴러서 한국인인가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었다. 앤디는 지혜의 남자 친구 차에 타고 밴쿠버로 온 사람이다. 어제 파티 내내 신나게 큰 소리로 떠들던 사람이기도 했다. 한국말을 잘하지는 못했는데도 한국말로 계속 무언가를 소리 지르듯이 말했다. 이 둘은 어울리지 않아. 미미는 그녀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다.     


 2시가 넘어서야 모두가 일어났다. 크리스마스 인사를 건네고 파티 정리를 하면서 숙취에는 뜨거운 클램차우더를 먹어야 한다고 다들 말했다. 미미는 클램차우더라는 단어를 생전 처음 들었다. 그게 뭔지 몰랐지만 물어보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살아보니 가만히 있으면 절반은 묻어갈 수 있다. 순이도 가만히 있었는데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건 알 수 없었다. 이번에는 차가 한 대 더 늘었다. 세 대에 나누어 타고 클램차우더라는 걸 먹으러 간다. 오늘도 한국말과 영어가 섞여 시끌벅적하다. 외국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차는 바닷가로 갔다.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나고 커다란 갈매기가 날아다니고 있는 바닷가다. 하지만 모래사장은 보이지 않았고 일행이 다가간 펜스 아래로 바다가 출렁거렸다. 그 옆에 작은 식당이 있었다. 여자들은 야외 테이블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그 작은 식당에서 클램차우더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동그랗고 크고 깊은 통에 담겨 김이 무럭무럭 나고 있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건넸다. 플라스틱 스푼과 함께. 그건 수프였다. 아, 클램차우더는 조개와 감자가 들어있는 수프구나. 뜨거운 수프가 몸에 들어가니 정말로 숙취가 싹 가시면서 몸이 따뜻하고 머리가 개운해졌다. 게다가 바로 눈앞에는 바다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이 순간이 오래고 기억에 남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곱씹고 되뇌게 될 아름다운 장면이다.     


 크리스마스 날에 차가운 야외 벤치에 앉아 뜨거운 클램차우더를 후후 불어 마시면서 바다 너머로 일몰을 바라보던 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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