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 소소 70
학교에서 마리모 어항을 만들었다. 마리모는 물에서 사는 식물이라고 한다. 파래를 동그랗게 뭉쳐놓은 것처럼 생겼다. 어떻게 보면 초록색 사탕 같기도 해서 입에 쏙 넣으면 어떤 맛이 날지 잠깐 상상해 보았는데 씹으면 왠지 물컹할 것 같아서 시도는 해보지 않기로 했다. 특이하게도 물속에 있는 미생물을 먹고사는 식물이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만 잘 갈아 주면 조금씩 자랄 거라고 했다. 초록색이고 물속에 산다고 하니 바다가 연상되기도 했는데, 바다와는 반대로 동물 인형을 하나씩 어항 안에 넣었다. 나는 목이 긴 기린을 골랐다. 기린은 무거웠고 어항 바닥에 깔은 작은 돌멩이 위에 균형을 잡으며 잘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마리모를 하나씩 어항에 넣었다. 기린 옆으로 마리모가 떨어졌다. 기린을 키우고 있고 기린의 먹이로 마리모를 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마리모가 우리의 반려식물이라고 한다. 반려식물보다는 내가 자주 쓰다듬을 수 있고 나를 반겨주고 나에게 달려와 주고 나와 놀아줄 수 있는 반려동물을 원한다. 식물은 말을 할 수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으니까. 식물에게 다정한 말을 걸어주고 음악을 들려주고 자주 잎을 쓰다듬어주면 더 아름답게 자란다고 하는데 나 혼자서만 하고 싶지가 않다. 그건 그걸 좋아하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엄마처럼.
엄마는 식물이 좋다고 했다. 집에 손바닥 세 개를 펼쳐 놓은 정도 크기의 잎을 가진 몬스테라 화분이 하나 있다. 작은 잎은 손바닥 하나 크기다. 줄기가 그렇게 길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짧지도 않다. 작은 잎은 적당한 초록색이고 큰 잎은 완전히 초록색은 아니고 약간 밝은 초록과 진한 초록과 흰색으로 되어가는 색이 섞여 있다. 엄마가 좋아하는 식물이니 옆에 서서 종종 들여다본다. 손가락을 쫙 펴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나라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반짝이고 출렁이며 약해 보인다. 해를 많이 받아야지만 오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나는 몬스테라보다는 몬스테라를 품고 있는 하얀 화분이 더 마음에 든다. 화분을 쓰다듬어 본 적이 있다. 차갑고 약간 거칠어서 조금 놀라기도 했는데 그래서 한 번 더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몬스테라라는 이름은 몬스터와 카스테라를 떠올리게 한다. 확실히 잎이 나의 예상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나 거대하니까 몬스터다. 그리고 약하고 부드럽게 살랑거리니까 카스테라도 맞다. 엄마가 밥솥 크기의 대왕 카스테라를 만들어준 적이 있다. 맛이 그렇게 있지는 않았지만 그걸 생각하면 색만 다른 몬스테라다. 그래서 이 이름을 기억하게 게 되었다. 카스텔라가 표준어지만 엄마는 카스테라라고 불렀다. 내가 몇 번이고 카스텔라라고 고쳐주었는데도 엄마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이제 나도 카스테라에 익숙해졌다. 몬스테라, 몬스터 카스테라.
내가 삼 학년이 되었을 때 엄마가 선물이라며 몬스테라 화분을 안겨 주었다. 나는 그렇게 다정한 아이도 식물에 호기심을 보이는 어린이도 아니었기에 이게 뭐냐며 당연히 싫어했고 선물을 줄 거면 강아지를 데려오라고 투정 부렸다. 엄마는 잠시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이 계속 기억난다. 그러고는 바로 선물인데 싫으면 말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며 화분을 내 품에서 도로 가져가 거실 한쪽에 놓아두었다. 우리 집에 들어온 첫 반려식물이었다. 그 뒤로는 더 이상 들어 오지도 늘어나지도 않았으니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다음날 보니 거실 바닥에 있던 작은 화분은 볼품없는 플라스틱 의자 위에 올려져 있었다. ‘연우 몬스테라’라는 작은 이름표도 흙에 세워져 있었다. 내 이름을 보니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어졌다. 그렇다고 물을 주거나 엄마 눈에 띌 만큼 돌보는 행동을 한 적은 없다. 엄마가 노래를 흥얼거리며 물을 줄 때나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수건으로 잎을 닦을 때 왠지 신경이 쓰였다. 종종 몬스테라가 나를 바라보는 건 아닌지 의식하면서 나도 흘끗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기분이 좋은 날에는 몬스테라를 돌보는 엄마 옆에 서서 이런저런 실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많은 식물 중에서도 왜 하필 몬스테라인지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