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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힙스터 Oct 08. 2024

가을을 품은 텃밭

가을 텃밭 사진 기록

자연이 계절을 품었기에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있다. 텃밭을 시작하며 난 자연 안에서 계절을 탄다. 지금은 가을이란 시점에 있고 정성스레 그 시간을 기록해 보았다. 





박과 동과

봄이 되었을 때, 옆집할머니께서 주신 박 모종을 심었다. 어느 여름날 하얀 박 꽃이 피더니 가을이 되선 큰 박이 열렸다. 텃밭에 자란 박을 보시곤 밭에서 꼼지락거리는 나에게 이젠 따야 할 때라 일러주신다. 그전엔 어디에 심었는지, 박이 열렸는지, 크기가 얼만한지까지 확인해 주셨다. 난 처음 키워본 커다란 박을 따서 고이 창고에 모셔두었는데 그 모습이 참으로 예쁘다. 

박과 감
호박과 고구마


올해 심은 박 종류가 하나 더 있다. 그 이름은 동과, 동네할머님들 사이에서 인기만점이었다. 동과를 처음보신 다며 이건 이름이 뭐냐며 우리 밭을 지나는 할머님마다 물어보셨다. 처음엔 초록색이다가 자라면서 하얗게 변하는 그 비주얼이 신기하긴 하다. 그래서 옆집할머님께 내년에 모종을 드리기로 했다. 

동과를 키우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친구분께서 주신 동과즙을 먹게 되면서부터다. 직접 기르신 동과로 만드신건데 맛이 좋아 키워보고 싶어서 씨를 조금 얻었다. 박 좋류는 모종 단 두 개만 심어도 잔뜩 열리니 대박이다!


동과


나의 텃밭은 유난히 박과 식물들이 잘 자란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충분한 빛이 닿는 밭이라 그런지 열매도 실하다. 흔히 뜻밖의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우린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다고 표현하는데, 텃밭을 시작한 이후로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아마도 텃밭을 가꾸면서 내 몸과 마음도 자연에 평온 해진듯하다. 다음 해도 박과 식물들을 잘 키워 기분 좋은 열매들을 맺고 수확하는 일을 해야겠다.






오래된 감나무

어릴 적 이 동네엔 감나무가 많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강한 한파로 동네의 감나무가 다 죽어버리고 몇 그루만 남게 되었다. 텃밭과 할아버지집 근처에는 그때 다 사라진 줄 알았는데, 풀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감나무 한그루가 살아남아 열매를 맺은 게 아닌가! 풀이 잔뜩인 곳이라 가는 길을 어려워 예초기를 돌리기로 했다. 풀을 베어낸 감나무로 향하는 길은 신비로운 숲 느낌을 가지고 있다. 

오래된 감나무


이 감나무는 엄마께서 태어나시기 그 이전에도 있었던 나무라 하니 아마도 백 년 정도는 된 아주 오래된 감나무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살면서도 열매를 맺을 수 있다니 놀랍다. 한참 동안이나 감나무를 바라봤다. 숲 사이를 재잘거리며 날아다니는 새들도 있다.  태양빛에 빛나는 붉은 감들이 사이사이 보인다. 올해 가을 디저트는 감이다. 새들의 달디 단 양식일 테니 적당히 따고 남겨두기로 한다.


감 따기








새로운 임시 창고 <반창고>

농기구들을 얇디얇은 텐트로 대신하다 조금 더 튼튼한 창고를 짓기로 한다. 모종도 기를 수 있는 작은 비닐하우스이자, 장비들을 넣을 수 있는 창고이자, 시간이 필요한 가을 곡식들이 익어가는 저장고이기도,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작업하다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이 창고의 이름은 반창고다. 

아빠의 아이디어로 지어진 이 창고의 이름은 참으로 귀엽다. 50% 정도의 창고 역할을, 50% 정도의 쉼터 역할을 하는 반창고에겐 적당한 이름이다. 확실히 날이 추워지긴 추워졌다. 작업하다 추워서 잠시 들어와 떠들고 있으니 비닐로 만들어진 창문에 김이 서린다.


밭 초입에 위치한 반창고
김 서린 비닐 창문






가을텃밭

가을 텃밭엔 김장 채소들이 주를 이룬다. 직접 채종한 쪽마늘을 심었더니 쪽파가 자랐다. 추워진 날씨에 이른 아침엔 촉촉하게 파를 적신다. 또, 홀로 제멋대로 자란 깻잎은 조금 더 지나면 스스로 말라 들깨향을 뿜어낼 것이다. 탈탈 깻잎 터는 소리와 향에 온마을이 고소해질 예정이다. 또 씨를 뿌려둔 무는 뿌리가 커져 흙을 밀어내 무가 하얗게 모습을 보이고 여유롭였던 한랭사 안은 배추가 커져 답답해졌다. 그리고 심어둔 순무 옆엔 왠일인지 카모마일 싹이 텄다. 올 겨울 잘 월동해서 봄에는 예쁜 꽃을 피워 밭이 환해지길 바란다. 


쪽파
순무 옆 카모마일 싹

 




그대로 인듯해도 매 순간 달라지는 텃밭을 구경하는 건 정말 행운이다. 전생에 어떤 좋은 일을 했길래 이번 생에 이 풍경을 볼 수 있고 기록할 수 있는지 감사할 따름이다.



밭에 위치한 향나무
할아버지 마당에서 본 풍경
가을 하늘과 새





사진, 글 : 시골힙스터




[시골힙스터]

"태어난 곳은 시골, 내 꿈은 힙스터"

시골의 일상을 그리고 담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삶과 마음이 따르는 행복을 실천하는 진정한 힙스터가 되는 것이 꿈입니다.

instagram : @countryside.hipster
e-mail : countryside.hipst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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