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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Aug 14. 2022

올해도 역시 오징어

제주도에 가면 꼭 들러 가는 집이 있다. 반 건조 오징어를 파는 곳이다. 


10여 년 전, 제주 올레길을 처음 걸을 때, 해안도로에서 펄럭이며 걸려있던 오징어를 처음 만났다. 오징어 옆에서 힘차게 돌아가던 색색의 바람개비도 인상적이었다. 바람에 몸을 맡긴 오징어는 힘을 뺀 듯 흔들흔들하며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인연이 되었는지 제주 한 달 살기를 오징어집 근처 숙소에서 하게 되었다. 아침 해안도로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오징어를 보며 걷고 들어와 시작하는 하루는 뭔지 특별한 일상을 느끼게 했다.      


맥주를 좋아하는 남편은 당연히 마른안주가 친구였고 “무엇을 씹지 않으면 이빨이 근질근질하다”라고 할 정도로 유난히 씹는 것을 좋아했다. 임플란트를 몇 개나 한 처지의 남편이 딱딱한 것을 씹는 것을 걱정했던 나에게 말랄말랑한 반 건조 오징어는 환영할 만한 안주거리였다.      


우리 부부 또래의 주인 부부는 조그만 가게에서 오징어를 팔다 몇 년 전 그 자리에 집을 지어 가게를 확장했다. 맥반석에 오징어를 굽는 맛있는 시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같은 고향에 종교도 같다는 것을 알게 됐다. 후로는 대화 거리가 많아져서 몇 번 들르지 않았는데도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부지런한 부부는 새벽부터 문을 열어 언제 가도 만날 수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에게 기회가 오는 것인지 얼마 전엔 티브이에서 동네를 소개하는 프로에도 출연을 했다. 덕분에 올해에는 이런저런 촬영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출연료는 주던가요?” 

“아니요. 잠깐 나오는데도 3일이나 촬영했어요. 그때는 장사도 못했고 이런저런 촬영 요구 사항도 많아 힘들었어요. 그런데 확실히 홍보가 잘 됐는지 이후에 주문이 많이 들어왔어요.”

홍보가 잘 됐다는 이야기는 구운 오징어만큼이나 따끈따끈했다.      


남편은 오징어 애호가이다. 이것은 아마도 시어머니의 다양한 오징어 요리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시댁에는 늘 오징어 반찬이 있었다. 오징어 간장조림밖에 몰랐던 나와 달리 시어머니는 마른오징어를 작게 잘라 고춧가루와 각종 양념으로 무쳐냈다. 딱딱한 오징어무침요리는 독특한 맛과 식감을 냈다. 그것도 지루해지면 잘게 찢은 오징어포를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 냈다. 


물오징어는 무를 듬성듬성 썰어놓고 새우젓과 고춧가루로 간을 맞춰 국으로 끓여내기도 했다. 각종 야채를 썰어 넣고 물오징어 볶음을 하면 남편은 대번에 술잔을 꺼냈고 오징어 부침개는 간장 양념으로 맛을 더해서 먹었다. 회집에 가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오징어 튀김도 그냥 패스하는 법이 없었다.    

 

강경지역을 지나갈 때마다 사는 오징어 젓갈도 좋아하지만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오징어 요리는 실 오징어 볶음이다. 약한 불에도 대번에 뽀글뽀글 오그라드는 실 오징어는 간장, 설탕과 깨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조리인데도 불 조절이 까다로워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불 조절을 못해 순식간에 태우기도 했는데 불 조절만 잘하면 이보다 더 간단할 수가 없다. 그 간단한 요리를 어머니 손맛을 내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이다.     


어쩌면 우리 세대의 오징어 사랑은 70년대 문방구에서 팔던 오징어 다리에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꼬리꼬리 한 냄새를 풍기는 오징어 다리가 하굣길의 우리를 멈춰 세우곤 했다. 소화력이 떨어지고 치아가 부실해지면서 마른오징어를 멀리하게 된 나에게도 반 건조 오징어는 타협의 대상이 된다. 적당히 말린 부드러운 오징어의 식감이 오징어의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후덕함을 주기 때문이다.      


친구 어머니는 90이 넘은 연세에도 오징어를 가만히 물고 있다가 물오징어로 만들어 드실 만큼 오징어 사랑이 대단한데 어느덧 100세를 바라보신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징어와 장수가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장수의 비결이 될 만한 영양 조건도 있을 것이다.    

 

올해 오징어는 금값이 되었다. 한 축을 사놓고 먹던 오징어가 가격이 폭등하니 이제는 서 너마리씩 사서 먹는다. 제주도에 온 김에 통 크게 반 건조 오징어 한 축을 샀다. 반 건조 오징어를 선물로 받아 맛봤던 지인들은 제주에 갈 때마다 오징어 부탁을 한다.     

 

올해도 제주를 떠나는 날, 해안가 산책을 하며 오징어 선물 꾸러미 2개를 샀다. 안주인은 즉석에서 구운 반 건조 오징어 한 마리를 차 안으로 넣어 주었다. 제주에서 목포로 향하는 4시간의 긴 항해에 맛난 간식이 되었다.      

이제 오징어를 전해 받을 누군가의 저녁이 맛있어질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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