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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Mar 23. 2022

오늘 저녁엔 뭐 먹어?

“오늘 저녁엔 뭐 먹어?”


아직까지도 이렇게 묻는 이가 있다.

딸과 남편이다. 간혹 듣는 질문이지만 이 말에 나는 언제나 말문이 막힌다. “뭐 먹냐?”는 질문이 ‘어떤 요리할 거냐?’는 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나서 아이 키우는 몇 년간은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시어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시댁과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하고는 저녁 술자리가 일상인 남편 덕에 요리라면 아이들 반찬 정도였다.    

  

아이들이 기숙사로 들어가고는 열심히 해 먹이던 피자와 닭요리에 요긴하던 오븐레인지도 치워 버렸다. 딸까지 출가하고 나자 외식을 주식 삼는 남편 덕에 주방에 서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러던 차에 딸이 육아 도움을 받고자 가까운 곳으로 이사 온 후에는 저녁마다 가는 딸네 주방이 내 주방이 되어 버렸다.     


30년 전 시어머니 집에서 먹던 저녁식사가 이제는 딸네 집에서 먹는 식사로 바뀌었다. 시어머니가 해 주시던 식사에서 딸에게 해 주는 식사로 바뀌었으니 이런 것을 ‘세상이 물 흘러가듯 하다.’고 할 수 있으려나.    

 

이제는 딸과 남편이 “오늘 저녁엔 뭐 먹냐?”라고 묻지 않아도 ‘뭐를 해 먹이나’를 늘 고민하게 된다. 백반보다는 특별한 음식을 좋아하는 남편, 어린 두 아들에게 치여 늘 밥맛이 없는 초보 엄마 딸, 간이 적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한 살, 세 살 베기 두 손주가 내 음식의 주 고객이다.     


혼자라면 찬밥이나 누룽지를 팍 팍 끓여먹어도 되건만 그래도 하루 밥 한 끼는 꼭 새로 하게 된다. 그런다 한들 오래전 이미 하향곡선을 타기 시작한 내 요리 솜씨가 방향을 바꾸진 않는다.    

  

남편이야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적극 외식을 하고 나는 ‘내 밥이 그리 마땅치 않냐’고 하며 따라가 먹으면 된다. 그런데 두 손주가 이유식과 유아식을 해야 하는 때라 할머니의 요리 무능력이 늘 마음에 걸린다.     

‘각자의 자식은 각자 챙기자.’라는 슬로건으로 나는 딸의 밥을 챙기고 딸에겐 손주의 밥을 챙기라 하지만 두 아들 육아로 허덕이는 딸이 손주의 반찬을 챙기는 것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거꾸로 “저녁에 뭐 먹을까?”라고 묻는 경우가 있다. 아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떨어져 사는 아들에게서 어쩌다 집에 내려온다는 소식에 반가워 물으면 “아무거나 괜찮아요.”가 답으로 돌아온다. 묻는 나도, 답하는 아들도 흥이 안 난다.     


얼마 전 아들이 온다 해서 묻지 않고 만두를 빚었다. 만두는 아들과 딸, 남편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이다. 김장김치가 묵은 김치가 되는 이때쯤 김치를 듬뿍 넣고 만두를 빚으면 외식에 길들여진 남편도 ‘맛있다’는 인사를 인색하지 않게 한다.     


만두는 나에게 이틀짜리 요리이다. 하루는 밀가루 반죽과 만두소를 만들고 다음날에야 만두를 빚는다. 한 시간이 넘기는 요리에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는 내가 그래도 만두에 이렇게 후한 시간을 주는 것은 어릴 때부터 친정에서는 일상인 요리였기 때문이다.     



친정에는 국수기계가 있었다. 아버지가 밀가루와 물을 섞어 거칠게 반죽한 덩어리를 기계에 넣고 여러 번 돌리면 만두피를 할 수 있는 얇은 반죽이 나왔다. 거기에 국그릇을 눌러 만두피를 찍어냈다. 그동안 엄마는 김치를 쫑쫑 썰어 꽉 짜고 두부와 돼지고기, 숙주를 섞은 만두소를 만드셨고 우리는 아버지가 찍어놓는 만두피에 엄마의 만두 속을 넣어 입구를 야무지게 붙였다.      


만두를 만드는 중에 뜨거운 만둣국이 끓여졌고 모두 밀가루를 여기저기에 묻힌 채 둘러앉아 허겁지겁 만둣국을 먹었다. 그렇게 여러 번 만둣국을 먹고 나면 겨울이 지나갔다. 주먹만 한 왕만두는 몇 개 먹지 않아도 배가 터질 것 같은 포만감을 주었다.      


이사 온 도시에서는 만두는 사서 먹는 음식이었다. 덕분에 솜씨 없는 내가 만두를 빚는다면 다들 신기하다는 얼굴로 쳐다봤다. 보통 입맛이 아닌 남편도 자기가 퇴직하더라도 만두 빚어 팔면 굶지는 않겠다는 말로 내 솜씨를 인정했다. 집에서 모임이 있을 땐 만두를 해서 나눠 먹으면 대접을 제대로 했구나 싶었다.      


평소 같으면 찐만두 두 접시를 먹었을 아들은 한 접시에서 젓가락을 놓았다. 싸서 준다는 말에도 괜찮다고 응대했다. 늘 식사를 걱정하는 내 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고 만두 먹은 후에는 ‘엄마는 요리왕’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던 아들의 변화에 고개가 갸웃해졌다.      


“만두는 한 번 입에 대면 계속 먹게 돼요. 아무래도 칼로리가 높고 제일 살찌는 음식 같아요.”   

  

아들에게 체중조절 이야기를 여러 번 한 나로서는 달리 응대할 말이 없었다. 조금씩 조절해서 먹었으면 싶었지만 이에 대한 원천 방어의 말까지 들은지라 그냥 서운한 마음을 감추어야 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살과 피를 만들어 준 만두의 역사를 이쯤에서 끝낼 수는 없다. 나에게는 손주가 둘이나 있지 않은가? 김치를 말끔히 헹구어 매운맛을 빼기만 하면 어린 손주들에게도 최고의 음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손주 입에 기꺼이 들어가 말캉말캉하게 씹힐 만두를 빚으며 또다시 요리왕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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