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소똥구리가 어떻게 소똥 밖으로 나오는지 알아?

그래, 그 소똥구리가 바로 너였어!

by 그랑바쌈

내가 잘 쓴 글은 대부분 '쓰다가 잘 써진 글'이다.

닥치고 쓰다가, 지우고 고치고 덧붙여서 결국에 잘 쓰게 된 글이다. 반면, 내가 잘 못 쓴 글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못 써질 운명의 글이었다.


쓰다가 잘 써진 글이라니 웬 횡재? 쓰다가 안 써질 수도 있는데 감지덕지 아닌가. 그래도 처음부터 작정하고 잘 쓴 글이면 더 좋겠다는 욕심은 떨치기가 어렵다. 모자란 생각을 손가락이 채워주길 기대하며 기약 없이 써 내려가는 글 말고, 이미 완성된 생각을 글로 오롯이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젖은 붓을 들어 하얀 종이 위를 휙 가른다. 흩뿌려진 먹물이 완벽한 한 점의 그림이 된다. 그렇게 찰나에 태어나도 단 한 군데 고칠 데 없는, 날 때부터 미인 같은 '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유시민 작가가 옥중에서 쓴 <항소이유서>는 끝까지 한 번도 고치지 않고 일필휘지로 완성된 글이라고 들었다. 요즘말로 '레전드'다. 생각을 글자로 오차 없이 옮기기 위해 그는 머릿속에서 수없이 필사를 반복했다고 한다. 두뇌가 특출 난 사람은 이런 탁월한 기억저장장치를 장착하고 있겠지만, 이런 능력은 현실을 초월한 초능력의 세계다. 유작가도 옥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 재난상황에서 고립된 생존자가 먹지 않고 한 달여를 버텨낸 기적처럼.


평범한 글쓰기 실력으로 평범한 일상 속에서 글을 쓰는 나에게 '타고난 미인'같은 글이란 언감생심. 선택은 늘 둘 중 하나다. 쓰다가 잘 써지는 글과 처음부터 글러먹은 글. 쓰다가 잘 써지는 글의 운명은 말 그대로 두 가지다. 잘 써지거나 못 써지거나. 반면 처음부터 글러먹은 글의 운명은 한 가지다. 아무리 뜯어고치고 별별 수작을 다 부려도 심폐소생이 안된다. 기승전결의 서사도 있고 문장도 썩 괜찮은데 말이다.


이유가 뭘까. 최근에야 답을 찾았다. 쓰다가 잘 써지는 글은 땔감이 좋았다. 숲 속에 널브러진 죽은 잔가지 더미 가운데 이따금씩 발견되는 두툼한 나무 조각. 아직 뿌리의 온기와 물기를 머금고 있어 불이 잘 붙지 않지만 일단 타기 시작하면 오래도록 뜨겁게 타오른다. 그런 땔감으로 시작해야 '쓰다가 잘 써지는 글'이 된다. 처음엔 잘 타들어가도 그 기세가 금방 죽어버리는 마른 잔가지같은 땔감은 아무리 바람을 불어넣어도 소용없다.


쓰다가 잘 써지는 글의 땔감은 쉽게 알아볼 수 있을까? 실은 그걸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글쓰기의 기본이 아닐까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이때 기본이란 '기본적인 문법'이나 '기본적인 어휘력' 할 때의 그 기본이 아니라 밥상 위의 밥, 된장찌개의 된장, 피자의 도우, 중식당의 자장면 같은 기본이다. 그것을 빼면 별로 남는 것이 없는. 좋은 땔감이란 그저 '그럴싸한 이야기'가 아니라 외부에서 날아든 그것이 속까지 뚫고 들어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내면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강력한 한방이다. 우려낼수록 진국이 되고 깊은 맛을 내는 우직한 식재료다. 그것은 때때로 흔한 육아의 일상에서도 발견된다. <파브르 곤충기>를 읽고 있던 아들이 낸 퀴즈도 그런 발견 중의 하나다.


"아빠 소똥구리 새끼는 어떻게 소똥 밖으로 나오는지 알아?"


소똥 말똥을 먹고사는 소똥구리는 소똥을 굴려서 자기 몸보다 큰 공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소똥 안에 알을 놓는다. 알에서 부화한 새끼는 한동안 이 소똥 안에서 지내게 되는데, 공의 내벽은 촉촉하고 말랑해서 부화한 새끼에게 좋은 먹을 것이 되고 그 외벽은 돌덩이처럼 딱딱해서 외부의 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한다. 문제는 이 소똥 공이 너무 딱딱해서 새끼의 힘으로는 깨뜨릴 수 없다는 것. 자 그럼 소똥구리 새끼는 어떤 방법으로 소똥 밖으로 나올 수 있을까? 이게 아들의 질문이다.


정답을 들으면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새끼가 자라 세상 밖으로 나와야 될 쯤이면 때마침 봄비가 내리는데, 이때 비를 맞은 소똥이 물러져 으스러진다. 새끼는 힘 한 번 안 쓰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아이의 질문과 답은 화살이 되어 내 가슴에 박혀 '억'하는 비명을 자아낸다. 그러고도 한동안 화살 꼬리가 떨릴 정도의 묵직한 진동이 온몸에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벌레를 향한 시선은 인간으로, 그리고 신에게로 옮겨간다. 봄비를 내려 소똥구리를 나오게 하는 오묘한 자연의 이치, 열 달이 지나면 자궁문이 열리고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는 어김없는 생명의 법칙, 위대한 창조의 섭리. "그래 그 소똥구리 새끼가 너였어, 너." 이 정도면 훌륭한 땔감이 아닌가?


작정하고 잘 쓴 글을 토해내는 특출난 능력은 없지만 좋은 재료를 알아보는 눈은 조금 있는 것 같다(고 아내가 말했다) 좋은 재료를 조리하다가 망가뜨릴 때가 부지기수지만 가끔씩 꽤 먹을 만한 요리가 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 많은 글을 쓰다보면 좋은 글도 많이 나올 것이다. 확률적으로다가. 이런 얄팍한 능력과 예측에 기대어 오늘도 쓴다. 쓰다가 잘 써지는 글이 되는 요행을 바라며.


P.S. 그런데, 이 글은 쓰다가 잘 써진 글인가, 아니면 처음부터 글러먹은 글인가..갑자기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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