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아파트 앞 상가 골목은 한산했다. 불 켜진 식당도 몇 안 되는 데다 대부분 테이블 개수를 줄인 상태로 영업하고 있었다. 몇 군데를 두리번거리다 손님이 두 팀 이상 보이면 그냥 지나쳤다. 5인 가족이 입장하는 순간 왠지 거리두기의 균형이 깨지고 서로 불편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겨우겨우 손님 없는 식당을 찾아 문을 열고 입장하는 순간 종업원의 난감한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구석 6인석 자리로 들어가 앉았더니 주인이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와서는 테이블을 두 개로 나눠 앉아야 한다고 한다. 방역지침상 4인까지만 식사를 할 수 있다면서. 식당 주인이라도 방역지침을 속속들이 꿰고 있진 못하겠지. 난 예상했다는 듯, 주민등록상 함께 거주하는 한 가족은 한 테이블에 동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애써 한산한 식당을 찾아들어가도 이런 상황이 생길 정도니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외식 한번 하기가 쉽지 않다. 밥을 같이 먹는 사이라 해서 식구(食口) 아니던가! 요즘 현실이 이렇게 웃프다.
코로나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회사든 친구든 모임이란 모임은 죄다 취소되었다. 경조사에도 부조금만 부치는 게 상식이 되었다. 심지어 재택근무, 화상수업 등으로 대낮에도 가족들과 집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육아 과잉의 시대가 도래했다. 코로나 아니어도 날씨도 춥고 미세먼지도 많아 외출이 꺼려지는 계절인데, 정부 차원에서 가급적 집에 있으라고 캠페인을 해대니 더욱 나갈 이유가 없어졌다.(모 지자체는 직원이 코로나 걸렸다고 직위해제를 시켰단다. 살벌하게) 종일 집에서 삼시 세 끼를 차려먹다 보니 아내는 꼭 핵전쟁이 터져서 방공호에 갇힌 신세 같다고 한다.
싱글인 30대 직장 후배는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했다. 동호회 모임도 없고, 소개팅도 기약 없이 미뤄지고, 하다못해 별다방에 앉아 여유롭게 음악을 들을 수도 없다. 퇴근하면 침대만 덩그러니 놓여있는 감옥 같은 원룸에 들어가 종일 유튜브와 넷플릭스만 쳐다보는 것도 한두 달이지 이대로는 너무 힘들다는 얘기를 털어놓았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런 시대에 가족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게다가 소통할 인간이 다섯이나 있으니 크게 외로움은 없다.
TV 프로그램에 <트렌드 코리아 2021>의 김난도 교수가 나와서 코로나 시대 인간관계와 소통방식에 대해 얘기한다. 온라인에서 유행한다는 <남의집 프로젝트>가 소개되었다. 말 그대로 남의 집에서 모이는 일종의 소모임 활동이다. 같은 취미나 관심사를 가진 타인들을 자신의 집에 직접 초대해서 밥도 먹고 대화를 나눈다. 공통의 관심, 소수그룹, 익명성으로 특징 지워지는 이 활동은 나이, 성별, 출신 상관없이 쿨(cool)하게 만나서 쿨하게 헤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소통의 방식이 될 수 있겠다고 '김난도'교수가 얘기한다. 뭐 그렇잖아도 TV에 나오는 전문가 얘기를 있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편은 아니지만, 이건 아니다 싶었다. 엄연히 주민등록상에 동거하는 5인 가족도 한 테이블에 앉는 걸 견제받고 눈치 봐야 하는 시대에 아무리 소수라고 하나 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생면부지의 타인들이 밀폐된 공간에 모여서 취미와 관심사를 나누는 게 코로나 시대 소통의 대안이라고?
그렇게 타인을 집으로 끌어들여서까지 서로의 공허함을 해소하는 걸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쿨'한 것으로 얘기하는 것 까지는 오케이다. 근데 이게 코로나 시대랑 무슨 상관? <남의집 프로젝트> 역시 코로나 거리두기 시대에는 힘을 못쓰는 이런저런 '모임' 중의 하나일 뿐이다. 아무 데다 코로나를 갖다 붙이는 건 좀 곤란하다. 김난도 교수의 해석에 딴죽을 걸려는 의도는 아니고, 실은 코로나 시대 소통의 대안은 다른데 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우리는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관계가 가족관계를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된 지 꽤 됐다.
각양각색의 동호회, 취미생활, 여행이 너무 재미있어서 연애와 결혼을 미룬다. 바쁜 직장생활, 야근이다 회식이다 워크숍이다 빠짐없이 챙기느라 출산을 미루고 육아를 떠넘긴다. 온라인이 오프라인 만남을 더 쉽게 하고, 값싼 비행기표는 해외여행의 부담을 덜어줌으로써 이삼십대는 너무 바빠졌다. 청춘은 짧고 즐길 것은 많다. 많은 사람을 쿨하게 만나고 쿨하게 헤어지는 게 트렌드다. 그런데 이놈의 코로나 시대가 이런 쏘~쿨한 청춘의 풍경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동호회로 모일 수 없고 콘서트장에 갈 수도 없다.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도 갈 수 없다. 시간은 남아도는데 할 게 없다. 타인을 만난다는 것은 나의 안전과 사회의 안전에 위협이 되니 함부로 모일 수 없다. 결국 남은 것은 가족. 내가 안전하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통할 수 있는 대상은 징글징글한 가족뿐이다.
우리가 코로나 이전으로 완벽하게 리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모두가 그걸 염원한다. 나도 그렇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적어도 이 시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선 한 번쯤 귀 기울여봐야 하지 않을까, 질문을 던져본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시선은 '언제쯤 비행기를 타고 다시 날아오를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를 향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까지 가족 만들기, 가족과 시간 보내기에충분한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가에 대한 반성이 먼저다.
많은 사람들이 '사라진 1년'이라고 하지만, 누군가에겐 가족의 가치를 발견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을지 모른다. 수염 안 깎은 채로 볼을 마구 비벼도 아무렇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사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내 '식구'들을 만들어두는 것이 코로나 시대 외로움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이다. 코로나보다 더 지독한 바이러스가 들이닥쳐도 우울증 걱정할 것이 없다. 소개팅 미루지 말고 부지런히 연애하라. 연애 장소가 꼭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이나 콘서트장일 필요는 없다. 차 안이나 인적 없는 골목도 충분하다. 결혼식장 떠들썩한 하객이 없으면 좀 어떤가. 허례허식에 시간낭비 안 하고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으니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부지런히 연애하고 결혼하고 가족을 만들어라.이미 그런 가족을 두고도 그간 바깥으로만 돌았던 가장들은 이제부터라도 방공호 같은 집에서 아내, 아이와 함께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두는것이 좋겠다. 이게 내가 고쳐 쓰고픈 <트렌드 2021>이다. 물론 이런 꼰대스런 내용이 담겼다면 베스트셀러는 못되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