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과장님이 신입사원으로 강등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육아는 좀 다르다. 간신히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 놨는데 둘째가 나오면 다시 신생아 아빠로 강등된다. 그렇다고 유치원생 아빠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정확히 말하자면 강등된 지위 하나가 추가되는 것이다. 1팀에선 과장이 2팀에선 신입사원이 되는 동시진행 미션과도 같다. 셋째, 넷째가 태어나면 <미션 임파시블?>
2팀 사원은 2팀 일을 완수해야 한다. 1팀에서 과장 일도 하고 있으니 사정 좀 봐달라는 변명은 2팀에서 안 통한다. 같은 이치로, 자녀가 몇이든 자녀 각각의 인생에서 아빠는 하나뿐이니 어느 한 아이에게도 소홀히 할 수 없다. 학부모 신호등 봉사도 각 아이마다 열외 없다.
첫째 육아 경험을 둘째에 적용하는 게 도움이 될 성싶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둘째의 성격과 행동이 까다롭다면 첫째의 경험은 전혀 통하지 않거나 오히려 혼란만 야기할 수도 있다. 어찌나 다른지 생김새 말고는 같은 구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설상가상, 아빠의 체력은 이삼십대로 리셋되지 않고 나이가 들면서 엔트로피 증대 법칙을 따라 오직 저하될 뿐이다.
<우리집 주식회사>에서 나는 1팀 부장, 2팀 과장, 3팀 대리로 일하고 있다. 요새는 3팀 일이 제일 바쁘다. 1팀과 2팀은 이제 내가 없어도 그럭저럭 굴러가는데 3팀은 툭하면 호출이다. 3팀 업무 중 빠지지 않는 일과가 '무술대련'. 무술에 푹 빠진 8살 막내는 시간을 정해놓고 훈련한다. 발차기, 권법, 검술, 쌍절곤.. 레퍼토리와 순서가 있다. 훈련이 좀 되었다 싶으면 스파링을 요구하는데, 상대하려면 제법 기술과 체력이 필요하다. 날아오는 주먹과 다리를 적당히 막고 피하다가 결정적인 한방을 실감 나게 맞고 쓰러지는 액션까지, 리얼하게 완성해야 한다. 가끔 옆구리가 제대로 차이면 연기가 필요 없다. '잠들기 전 책 읽어주기'도 빠지지 않는 3팀 업무인데, 내려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리며 책을 읽을 때는 차라리 무술 대련이 낫겠다 싶기도 하다.
이런 식이라면, 부모의 재력과 시간, 체력 등 인풋이 동일하다는 가정하에 다자녀 가정은 늘 불리할 수밖에 없다. 자녀수만큼 n분의 1로 쪼개야 하니까. 그러니 한 자녀가 대세다. 하나에 몰아주는 효율적인 전략이다. 처음부터 한 자녀만 계획하는 부부도 있지만, 여럿을 계획했던 커플도 첫째를 낳은 후 마음이 바뀌는걸 종종 본다.
"힘들어도 키워놓으면 좋아"
어르신들한테 종종 듣는 말이다. 옳으신 말씀이긴 하지만, 이 역시 육아를 노동의 결실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키워놓으면 좋은 거 아는데 힘들어서 안 할래요.' 요즘 젊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러게요 저도 하나만 놓을 걸 그랬어요. "나도 맞장구다. 아이가 돌아가면서 아플 때는 정말 그랬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더 그렇다. 하지만 하나에올인해도 내 힘으로 안 되는 게 육아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아이들이 1/n의 법칙을 뛰어넘는 에너지를 먹고 자란다는 사실이다. 형제간의 상호작용도 그런 에너지의 원천 중 하나일 것이다. 다이어트하는 엄마의 반대를 꺾고 야식을 시켜먹기 위해 셋은 치킨 동맹을 맺기도 하고 배달되어온 치킨 조각을 나눠갖는 과정에선 다시 갈등 전선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합과 갈등 그리고 화해의 반복 작용은 꽤 대단한 양의 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다. 물론 이걸로 아이들이 성장하는 비밀이 다 설명되는 건 아니다. 내가 손오공의 분신술처럼 아등바등 쪼개 나눠 준 시간과 정성의 백배 천배 크기로 아이들은 지혜와 몸이 자라며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간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어디서 이런 걸 터득했을까?'<우리집 주식회사>에 매일같이 일어나는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아이들은 이미 완성된 존재로 부모에게 맡겨진거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확신이 되어간다. 부족한 부장, 과장, 대리는 거들뿐이다. 왜 그런 유행가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