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몰랐던, 아이의 계산법

과정의 즐거움을 놓치고 있는 어른들을 위한 충고

by 그랑바쌈

7살 딸이 주말 바자회에 참가한다고 한다.

쿠키를 내다 팔려고 하는데, 가격을 얼마로 할지를 두고 가족회의를 열었다.

아이는 천 원에 팔겠다고 한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얼른 개입했다.

"야 쿠기 재료를 사 오는데만 2천 원이 들었는데 천 원에 팔면 손해잖어"

"왜?"

"최소한 2천 원 보다는 더 받아야지.. 천 원에 팔면 천 원만큼 손해잖아..

아니 네가 들인 시간과 노력까지 생각하면 더 큰 손해인 거지.."

"그게 왜 손해야? 쿠키를 만들어 팔아서 천원이 생겼는데.." 아이가 반문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자유로운 사고가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원동력임을 굳게 믿어온 내가

그 순간만큼은 고리타분한 교수님으로 강림했다.

격앙된 목소리로 비용과 수익, 더 나아가 기회비용의 개념까지 들이댄다.


그렇게 가족회의를 찝찝하게 끝내고, 조깅을 하러 밖에 나왔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뛰는데 갑자기 '아뿔싸'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내리쳤다.

'내가 틀렸구나..'

가격은 비용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물건을 사겠다는 사람이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지가 중요하다.

경제의 핵심인 수요와 공급 원리다.

2천 원의 비용을 들였다고 해도 인기가 있으면

1만 원에 팔 수도 있고,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천원도 못 받는 게 시장이다.

물론 아이가 수요공급의 원리를 이해하고 천 원이라는 판매가격을 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쿠키 재료를 사는데 쓴 2천 원을 가격을 정하는데 고려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써버린 돈에 집착한다.

주식이나 도박에 실패하고도 이를 끊지 못하는 것은 잃은 돈, 즉 본전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이미 써버린 돈, 즉 매몰된 비용에 대한 미련을 남겨두지 않는 것은 장사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여기까진 뒤늦게 나혼자 깨달은 부분이고,

정작 아이를 통해 배운 것은 다른 데 있다.

"아빠, 슈퍼에서 재료 2천 원어치를 사서 재밌게 쿠키를 만들었어

그런데, 또 그걸 팔아서 천원이 생겼으니 얼마나 좋아"

쿠키를 만드는 행위 그 자체가 아이에겐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지갑에서 빠져나간 2천 원은 <쿠키 만들기>라는 놀이에 지불한 정당한 대가였다.

쿠키 만든 시간도 노동이 아닌 즐거운 놀이였으니 비용으로 따질 게 아니었던 것.


아이 한 명을 양육하는데 얼마..

결혼 비용으로 얼마..

출산율이 떨어지고, 싱글족이 늘어나는 게 고작 <비용> 때문이란다.

비용을 따지는데 익숙한 우리는 정작 과정의 기쁨을 누리는 데 인색하고,

누려야 할 것들을 비용으로 환산하며, 도리어 보상을 요구한다.

그렇게 이것저것 비용 따지다가 정작 중요한 것들을 놓치며 살아간다.

'너한테 얼마가 들어가도 좋아.

너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내게 기쁨이고 보상이니까.'


생각은 이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세 자녀를 둔 외벌이 가장의 통장은 늘 마이너스 신세.

그래도 인생에서 늘 남기는 장사를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이처럼 무지한 아빠를 날마다 일깨우는

지혜로운 내 딸이 있기 때문이다.



* 7년 전에 쓴 제 일기장에서 꺼낸 글입니다.

이제 중학생이 된 딸은 아빠보다 훨씬 똑똑하고 지혜롭게 자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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