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몰랐던, 아이와 목욕탕 함께 가기의 비밀

코로나가 야속한 또 한 가지 이유

by 그랑바쌈

코로나 시대에 가장 아쉬운 점을 딱 한 가지 고르라면 난 주저 없이 목욕탕을 꼽겠다.

목욕탕 이용이 금지된 건 아니지만

바이러스의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무리한 외출을 하고 싶진 않으니까.

탕 안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뉴스를 보고선 생각을 접었다.

(목욕탕을 운영하시는 분들께는 너무 안타깝고 송구하다)


집집마다 샤워실에 욕조까지 갖춘 시대에

예전처럼 목욕탕에 못 간다고 때가 겹겹이 싸이는 것도 아닌데, 왜 목욕탕이냐고?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아들과 목욕탕을 못 가게 된 걸 두고 하는 말이다.


해가 바뀌면 6학년이 되는 우리 집 장남

목소리가 빽빽 갈라진 지는 벌써 일 년쯤 됐다.

성대는 낮은 음자리로 내려왔는데 소리는 높은 음자리를 때려대며 생겨나는 파열음이다.

목소리는 변했어도 하는 짓은 그대로였는데

얼마 전부터 행동도 바뀌기 시작했다.

칭찬 듣기를 싫어하고 장난도 거부한다.

코밑이 거뭇거뭇하다고 신기해했더니

못마땅한 듯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모든 아빠와 아들은 그렇게 어색해진다.

둘의 관계가 인간 대 인간, 남자 대 남자로 재정립되는 과정에서 오는 필연적인 어색함이다.

이 어색함을 중화시켜주는 효과적인 매개체가

난 목욕탕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의 알몸을 확인하며

아빠는 아들이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아들은 아빠의 늙어감을 발견한다.


어릴 적 아버지와 목욕탕 가는 게 그렇게 싫었다.

피부가 벗겨질 만큼 아프게 를 밀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내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이제 고마 니가 밀으라" 하며 때밀기의 독립을 허락하셨다. 난 만세를 외쳤지만 실은 고된 때밀이 노동에서 해방된 아버지가 축배를 들 일이었다.

이후로도 아버지와 나는 꽤 오랜 시간 목욕탕을 함께 다니며 서로에게 등을 맡겼다.

그 곳에서, 팔다리는 얇아지고 어깨는 처지며 배가 볼썽사납게 나오는 아버지의 몸을 순간순간 눈에 담으며, 나는 아버지의 늙고 나약해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사이 아들은 쑥쑥 자라고 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몸 구석구석에 hair꽃이 얼마나 피어올랐는지

알 길이 없는 나는 아직도 녀석을 마냥 귀여운 꼬맹이로 대하는 실수를 종종 범한다.


모두가 코로나가 사라지면 일상이 돌아올 거라 기대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것들도 있다.

아들의 사춘기도,

목욕탕의 추억도.

갑자기 코로나가 더 미워진다.


*커버 사진은 동화 <때 빼고 광내고 우리동네 목욕탕>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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