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몰랐던, 책 읽어주기의 비밀

인공지능(AI)이 대신해줄 수 없는 '함께 깨어있기'

by 그랑바쌈

느닷없이 8살 아들이 책을 읽어달란다.

무술에 푹 빠진 녀석의 손에는 어린이 무협지가 들려있다.

시간은 자정으로 향하고, 내 몸의 시계도 거의 멈추려던 찰나.

아내는 이미 잠든 지 오래다.

아이 얼굴엔 이미 잠이 그득한데, 남은 1%의 수면제가 되어달라는거지.

아빠의 곤란한 표정에, 쿨한 녀석은 적선하듯 관용을 베푼다.

"내가 금방 잠들 것 같으니까 여기까지만 읽어주면 돼"


며칠 후 TV를 보다 눈이 번쩍 뜨였다.

인공지능(AI)에 관한 다큐였는데,

AI가 딥러닝(deep learning)으로 엄마 목소리를 똑같이 카피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무릎을 탁 하고 쳤다.

"오.. 밤에 원이가 책 읽어달라고 할 때 저걸 틀어주면 되겠다."

아내가 곧장 응수했다.

"여보 애가 책 읽어 달라는 건 책 내용이 궁금해서가 아냐. 엄마 아빠를 깨우려는게 목적이지."

반박할 수 없는 진리앞에 다시 무릎을 탁.

'엄마 목소리'를 구성하는 주파수와 음색에 집착하는 첨단기술의 어리석음이여.

아이는 단지 함께 깨어있어 달라는 것 뿐인데.


아이가 아주 어릴 때는 자신보다 부모가 더 일찍 잠에 드는 걸 본능적으로 거부한다.

밤에 혼자 남겨지는 게 싫은 것이다.

그러다가 사춘기가 지나면 어느 순간부터 부모가 먼저 잠들기를 원한다.

혼자 있고 싶은 것이다.


용감하게도 셋을 낳아 키웠고,

아이마다 통과의례처럼 늦은 밤 책 읽어주기 미션이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해방인데,

마냥 홀가분할 것만 같진 않다.

언젠가부터 굳이 미래로 가서 오늘을 처연히 바라보는 고약한 습관이 생겨버렸다.

그리운 오늘이 될 지 알고 사는 오늘은 잔인하다.


그렇다한들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열심히 깨어있어야지.

조금이라도 많이 담아둘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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