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7년 전 일이다. 부디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건'이라 이름 지었는데 아들은 지독한 건선에 걸려버렸다.
무릎 뒤에 아주 작은 부스럼으로 시작했는데 몇 달 만에 거북이 등딱지 같은 비늘이 온몸을 뒤덮었다. 건선 치료 좀 한다 하는 종합병원 의사들이 두 손 두발 들고서야 오직 건선만 치료한다는 유명한 한의원을 수소문해 찾아갔다. 한의사는 자기 병원에서 두 번째로 안 좋은 상태의 건선환자라고 진단했다. 두 번째라는 구체적인 순위가 참 야속하게 들렸다. 몇 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고 치료가 되더라도 재발될 수 있으니 마음을 굳게 먹으라고 했다. 아내는 눈물을 쏟았고 나는 가슴이 무너졌다.
그 후로 나는 아들을 데리고 한 달에 두 번씩 진료를 받으러 세종과 서울을 오갔다. 병원이 강남에 있어 시외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두 번째 상경, 진료를 마치고 참을 수 없을 만큼 허기가 진 우리 부자는 버스터미널에서 식사할 곳을 찾았다녔다. 고기, 튀긴 것, 기름에 볶은 것을 금해야 하기에 갈만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겨우겨우 적당한 식당을 찾아 산채비빔밥을 시켰다. 먼저 고기와 계란 프라이를 덜어내고 나물 중에서 볶은 것은 빼고 데친 것으로 보이는 것들만 얹어놓으니 정말 초라한 비빔밥이 되었다. 고추장 대신 간장에 비벼주었다. 7살짜리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한 밥상이다.
'이걸 먹으라고?'라고 말하는 듯한 아이의 표정에 난 또다시 슬픔이 몰려왔다. 이 병은 나을 수 있을까? 내가 겪어온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의 고난들도 자식을 덮친 몹쓸 피부병 앞에선 한없이 작아졌다. '나까지 약해지면 안 돼. 이겨낼 수 있어.' 혼자 맘을 굳게 다잡고 아들에게 비장하게 얘기했다. "우리 힘내서 꼭 이겨내자." 아들은 아빠가 뭔 말을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눈치다. 그저 씁쓸한 풀떼기를 씹으며 표정이 일그러질뿐이다.
배만 겨우 채우고 식당을 나와 터미널 지하상가를 지나는데 아들이 갑자기 멈춰 섰다. 화초 가게에 진열된 선인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저걸 사달라고?" 꽃도 아니고 저런 볼품없는 걸 왜?
일단 가게에 들어가서 가격을 물었다. '무슨 저 쬐그만 선인장이 이만 원?' 그냥 무시하고 나가려는데 아이의 눈에 이슬이 그렁그렁 맺힌다. 건선 비늘로 덮인 얼굴을 안쓰럽게 쳐다보던 가게 주인은 오천 원을 깎아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강남에서 세종시 우리집까지 오게 된 선인장은 아들방 창가에 놓였다. 아들의 관심은 며칠을 못 갔다. 화분 하나 없는 황량한 아파트에서 외딴 선인장은 아무런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집안 청소할 때마다 이구석 저구석을 휩쓸리다가 언젠가부터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시간이 한참 흘러 선인장의 존재가 완전히 잊혔을 무렵,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구석에 자리 잡은 작고 푸른 것을 발견했다. 박제가 되었나 싶어 손가락으로 몸통을 눌러보니 웬걸.. 살아있다. 그것도 꽤나 탱탱하게. 사막에 산다던 그 선인장이 맞긴 한가 보다.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어찌 그 오랜 시간을 버텼을까. 별안간 선인장에서 아들 얼굴이 보였다. 그때 즈음 아들의 피부도 어느 정도 회복된 상태였다. 일 년 가까이 독한 한약에 풀떼기만 먹으면서 버틴 아들. 그래도 아들은 절대 비참해지거나 처량해지지 않았다. 사막에서 뜨거운 햇볕을 받고 이따금씩 쏟아지는 비를 기다리는 고독한 선인장처럼 원래 그런 존재로 서 있었을 뿐이다. 오히려 비극의 주인공으로 빙의한 것은 나였다.
아들은 녀석답게 건조하게 자랐다. 늘 말이 없고 구석을 좋아했다. 유쾌 상쾌 통쾌의 대명사인 우리집 막내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책을 읽어도 동화나 만화 대신 두꺼운 고전소설만 읽었다. 기름기 없는 나물 채소같이 무미건조한 책을 끝까지 놓지않고 완주하는 끈기가 놀라웠다. "너 그거 내용은 이해하고 읽는 거니?"라고 물으면 제인 에어의 굴곡의 인생을 아빠는 얼마나 아느냐고 되묻는다. 녀석을 누르기엔 내 지식이 너무 얄팍하다.
아들은 어느덧 13살이 되어 키와 지식이 나만큼 자랐지만 여전히 자기관리 안되는 어린 아이다.
"일요일 밤까지 숙제 안 하고 뭐했니? 한심하게" 엄마의 잔소리가 늘상 따라붙는다.
"엄마가 한심하다고 한 순간 내가 한심한 아이가 되는 거지." 아들은 능청스럽게 대꾸한다. 무슨 테스형의 선문답도 아니고. 그래 봐야 돌아오는 건 강력한 등짝 스매싱 한 대 뿐이지만 어린 철학자의 가시 돋친 궤변은 늘 거침이 없다. 나는 그런 아들이 참 멋있다. 물기를 쏙 뺀 선인장처럼 메말라 보이지만 속은 여전히 탱글탱글하고 질긴 생명력이 있다. 가늘고 뾰족한 가시는 자기 정체성을 확인시켜 줄만큼 따끔하다. 화려한 꽃과 풍성한 잎이 없이도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