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를 놓쳤다

언제나 그리운 싱가포르

by 천혜경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25년 전에 써 두었던 수단 카르툼 공항에서 비상 착륙한 상황을 적은 시를 브런치스토리에 올려놓고 부지런히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특별히 이번 연말에는 오고 가는 손님이 많아서 바쁜 시간을 보낸 남편과 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 가야 하기에 오랜만에 긴 여행을 하게 되어 기쁘게 여정을 시작했다.


기내 작은 의자에 앉아 재미있게 영화도 같이 보고, 맛있는 기내음식도 먹고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이 신이 났다. 드디어 싱가포르 공항에 내려 환승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 비행기가 연착을 하였기에 시간이 너무 빠듯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간 게이트에 한 사람도 없이 텅텅 비었다.


'Gate Closed'


그래서 다시 환승 창구에 가서 알아보니, 비행기는 아직 떠나지 않았기에 기장님이 허락하시면 비행기 문을 열어줄 것이라고 기다리라고 하신다. 너무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연락이 왔다.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아직 비행기 출발 시간이 20분 넘게 남았는데...


'세상에! 새벽에 올린 25년 전 그 시 와 비슷한 일이 바로 일어나다니!'




둘째 아이가 태어나 3달이 못되었을 때 비자 거절로 남편이 파키스탄에서 급히 나가게 되었다.

1년 3개월 된 딸은 아직 한국에 있었고, 남편은 병원일을 하는 아내와 3달 된 아들을 두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데, 그냥 무작정 떠나야 하는 세 번째 이별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떠나기 일주일 전에 싱가포르에서 5명의 단기 선교팀이 오셔서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분들이 우리의 상황을 들으시더니 싱가포르로 와서 본인들처럼 훈련을 받으면서 상황을 지켜보라고 조언을 하시는 것이었다. 선교 훈련을 받지 않고 무작정 달려들었던 남편에게 어쩌면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서 남편을 격려했다.


그렇지만 아내와 아들을 두고 떠나는 남편의 마음은 정말 만 갈래로 찢어졌음을 나는 안다.

특히 그 당시 아기를 수유를 하다가 내가 빈혈이 심해져서 수유를 멈추고 우유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아들이 아메바성 이질을 앓게 되었고, 모든 약을 먹여도 낫지 않아서 나도 아기도 고생을 하던 시간이었기에, 둘이만 두고 떠나는 남편의 마음은 나보다 더 아팠을 것이다.


"나도 마치면 갈게요! 좋은 훈련 찾아서 잘 받고 기다리세요.. 내가 아이들 데리고 갈게요..."


우리 둘이 다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세 번째 이별인사를 어두운 새벽 집 문 앞에서 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떠나는 남편의 뒷모습만 멍하니 한참 동안 쳐다봤다. 그래도 내심 남편을 싱가포르라는 좋은 나라에 가는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은 편했다.


보통 남편 선교사님이 비자가 거절이 되면 모든 가족이 같이 나가는 게 정상인데, 우리 부부는 또 이상한 결정을 했다. 아내에게 남겨진 약속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약속의 시간을 잘 마치고 오라고 오히려 격려하며 남편 혼자 나가는 것을 결정한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 젊은 시간에 약속한 것을 목숨을 걸고 지켜낸 것이 오히려 나는 속이 시원하다.

그 약속을 지키도록 함께 해준 남편과 딸과 아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그렇게 남편은 싱가포르에 입성하였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두 번째 나라에 우리 가족은 약 7년의 시간을 이곳에서 살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였지만 여러 민족과 언어가 어울려 살아가는 나라이다. 질서가 있고 법이 참 중요한 나라이다. 그리고 가족적인 문화와 친절함이 함께 하니 우리 가족에게는 최고의 장소였다.


남편은 영어가 서툴렀지만 무사히 훈련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동안 힘들었던 여러 가지 아픔들을 시원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든 일을 선택한 선교사로 살기로 헌신하였지만, 둘의 삶에 지속적으로 달려들었던 사건들은 마음깊이 많은 생채기를 남겼다.


고속버스에서 만난 한 여자 때문에 한 번도 상상하지 않았던 삶으로 본인도 모르게 달려가고 있는 이런 상황들이 너무 혼동스러웠을 것이다. 남녀가 사랑을 하지만 자신을 포기하면서 까지 사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속적인 아픔을 통과하면서 장하다고 손뼉 치기보다는 통과하고 흘려낸 아픔들을 보담은 것이 더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아픔을 토해 내고 쓰다듬을 수 있도록 많은 친구들이 함께 해 주었던 곳!

잘 참았다고, 수고했다고 격려를 받았던 곳!

왜 달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해 준 곳!

친구들이 방문 앞에 놓고 간 비닐봉지에 가득했던 식생활용품들...

나에게 싱글리쉬( 싱가포르에서 쓰는 영어)를 가르쳐준 친구들!

처음으로 네 명 이 함께 모여 살았던 우리 가족의 쉼터 싱가포르....




사랑하는 싱가포르에서 우리는 비행기를 놓치고 창이 공항 안에서 쪽잠을 자며 밤을 설친다. 싱가포르가 아직 우리를 잊지 못한 탓인지 이렇게 라도 조금 더 길게 머물게 하는 것이 은근히 행복하다.

아프리카로 날아갈 비행기 연결을 걱정하기보다 폭신한 카펫이 깔려 있는 깨끗한 싱가포르 공항에서 밤새도록 터미널을 옮겨 다니며 우리 부부는 추억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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