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기타와 대학가요제 문화 세대인 우리 부부는 음악과 청춘의 건전한 한국 젊은 문화를 만끽하고 살았었다. 긴 시간 한국을 떠나 중동에 살다가 잠깐 들어온 나의 나라 대한민국의 급속하게 변한 문화가 너무 신기했다. 남편과 나는한국의 청소년 문화를 곧 대학을 가야 하는 딸에게알려주고 싶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 연습장을 갔다.
건전하게 자신의 정서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특별히 음악, 춤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절제가 많이 필요한 나라에 살다 온 우리 가족이기에 더 기대가 되었다.
들어가는 입구의 화려한형광색빛들을 지나 어두운 작은 방안에오손도손 앉아 천천히 곡을 골랐다.
“음… 그게 뭐였더라…”
우리 부부 도 아는 노래는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한때 젊은 시절 음악다방에서 큰 이어폰을 하고 열심히 들었던 팝송들을 기억하면서 옛날의 흥을 찾아냈다.
물론 씩씩한 우리 남편! 뭐든지 새로운 것을 하기 좋아하고 신나 하는 우리 남편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익숙한 가사에 내 심장이 뛰고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혜경아~~ 저 바깥에 느그 아부지가 또 술 잡숫고 노래 부르고 오시네.. 빨리 모시고 가거라이. 온 동네가 다 시끄럽다야….."
그 당시 중학생이었던 난 얼른 뛰어가서 비릿한 술 냄새 풍기는 아버지의 팔을 부축해서 집으로 데리고 오곤 했었다.
가난한 살림에 월급 때 만 되면 아버지는 엄마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받으신 월급의 삼분의 일이나 되는 돈으로 맛있는 것과 선물들을 잔뜩 사 오셨다.아직 갚아야 할 쌀값과 외상값이 많았는데..
술 주정 하시는 날에는 유일하게 아버지는 웃으시고, 말을 하시고, 화도 내시고, 드디어 한참이나 우시다가 '젖은 손을' 부르시면서 아버지만의 방식으로 빨래를 하신다.
빨래터가 있었는데 굳이 좁은 단칸방안에 큰고무대야를 놓고 빨랫감과 물과 비누를 넣고 발로 밟는 것이버지만의 빨래 방식이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사랑의 고백 을 항상 아버지는 꼭 술을 드실때만 요란하게 하셨다.
몸이 약한 아내에게 미안해 하셨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술을 드시고 당신이 늘 빨래를 하셨다.
그런 날이면 꼭 나까지 불러 같이 빨래를 하자고 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우리 삼 남매를 정말 사랑하셨다.
평생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셨고, 가난한 모든 시간을 이겨내시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셨다.
항상 미안해하셨고, 자신을 무능하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술을 드시면 절제력을 잃은 아버지의 숨겨져 있던 슬픈 감정이 마구 흘러나왔던 것 같았다.
그렇지만 조용하시고 점잖은 분이 갑자기 술만 드시면 온 동네가 알도록 주정을 하시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는 중학생인 내게는 상당히 수치스럽고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어디선가 " 젖은 손이 애처로워.."라는 노래가 들려오면 가슴이 쿵쾅 뛰었었고,
비틀거리고 걷는 술 취한 사람을 보면 우리 아버지 아닌가 돌아보고 늘 긴장하던 시간들!
정말 싫지만 미워할 수도 없고, 왜 부끄러운 일을 계속하시는지 이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아버지의 모습…
정말 결혼한 후에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어쩌면 아주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었을 것이다.
처음으로 노래 연습장에 가서 사위가 골라서 부르는 첫 노래가 장인이 늘 부르던 그 노래라니!
남편은 아버지의 술 취한 목소리가 아닌 부드러운 중저음의 목소리, 사랑의 눈빛으로 내게 손을 내밀며 그 노래를 불러 주었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겨우 겨우 참았는데 남편의 그 모습에 난 울고 말았다.
'아! 아버지! 아버지 얼마나 아프셨을까? 반드시 술을 먹어야만 아픔을 그리고 사랑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아버지 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런 아버지를 난 얼마나 부끄러워했었는지.. 얼마나 원망했었는지..'
“아버지, 아버지.. 미안해요……"
긴 시간 가슴깊이 시린 추억을 고이 묻어두었던 어린 영혼이 남편이 부르는 아버지의 노래에 안겨 깊은 사랑에 흠뻑 젖었다.
그동안 살면서 내 안에 수치심과 두려움이 있어서그랬는지, 흥겹게 노래하고 흩어진 모습들이 보이기만 하면 불안했었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 노래를 부르거나 감정을 맘껏 표현하는 것을 절제하도록 하였었나 보다.
그날 노래 연습장에서 깊이묵혀두었던 아버지와의 아픔들을 모두 풀어버렸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 가며 춤도 추고 노래도 맘껏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