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노력해서 얻은 가장 값진 행운
'죽기 전에 일본 한번 가봐야 할 텐데...'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즈음 태어나 일제 강점기의 교육을 받은 형과 누나와 지내온 아빠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곧 팔순을 앞둔 아빠가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두 다리로 잘 걸어 다니고 정신도 짱짱한 지금이 그때가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 아빠와 언니네 가족 4명, 그리고 나의 가족 4명까지 총 10명이 움직이려 하니 때가 잘 맞지 않았다. 사실 아이들이 어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엄마, 아빠, 언니, 나 이렇게 넷이 가면 어떨까 생각했다. 나는 대학을 조기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취업 준비를 하다가 다른 직종으로 전환하여 바로 시집을 갔다. 언니까지 제치고 외로운 타지에서 나의 가정을 꾸렸다. 그래서 제대로 된 가족여행을 가 본 적이 없었다. 가족여행이라고 하면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제주도에 잠깐 갔었던 기억이 있을 뿐, 그곳에서의 추억은 사실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 적절한 시기는 놓쳤지만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니까, 이제라도 원가족 네 명이서 여행을 가보고 싶었다. 신랑은 무척이나 섭섭해했고, 아이들은 매우 아쉬워했지만 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각각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여행을 추진했다.
어른들을 모시고 가는 거라 패키지여행을 하려고 알아보았다. 하지만 한 가지 복병이 있었으니. 엄마, 아빠, 언니는 부산에서 출발하고 나는 인천 공항에서 출발을 한다는 사실. 패키지는 같은 공항에서 출발하여 같은 시간에 도착하여 이동한다. 물론 항공기 값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정에 합류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여행사에 전화해 본 결과 그런 일정을 맞추는 건 어마어마하게 힘든 거였다. 패키지란 모두 함께 움직이는 것이니까. 어차피 패키지로 진행하면 아빠의 체력이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었는데 오히려 좋아라는 마음으로 자유여행을 준비했다.
아빠에게 자유여행으로 가야겠다는 말을 전하자, 아빠는 일본어도 못하는 두 딸을 믿지 못하겠는지 계속 패키지를 운운하셨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준비하는 건 엄마아빠가 아니라 성인이 된 언니와 나의 몫이었기에 우리 의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빠의 의견을 십분 반영해 하루는 일일투어를 신청했고, 나머지는 자유여행으로 계획했다. 패키지를 이야기하며 걱정하던 아빠는 일본으로 오자 우리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우리 손을 잡고 걸었다. 어린 시절 모르는 곳에 여행 가면 아빠 엄마를 잃어버릴까 봐 손을 꼭 잡고 걷는 우리 모습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서로의 자리는 바뀌어있었지만 그 모습은 참 닮아있었다.
메뉴를 시킬 때에도 의견을 받아들여 주문은 우리가 했고, 밥값을 내거나 물건을 사는 것도 내 카드로 결제했다. 호텔에서의 예의를 지키는 것도 그들의 문화를 지키는 것도 모두 딸인 우리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왔다. 일일투어하는 고속버스 안에서 창을 내다보는 안쪽 좌석을 아빠와 엄마에게 내어주었다. 어린 시절, 멀미할까 봐 창가 자리는 늘 우리에게 양보하던 엄마, 아빠는 없고 우리의 말대로 척척 따라오는, 어린아이처럼 언제 도착하냐고 물어보고 도착한 관광지에서는 다리가 아프다고 하고 그럼에도 사진을 찍자고 하면 척하고 포즈를 취해주는 엄마, 아빠가 있었다. 커다랗고 든든했던 엄마 아빠의 울타리는 지금도 여전하지만 여행 내내 나는 당신들의 보호자였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을 마치고 다시 나 홀로 인천공항행 비행기를 탔다. 그때부터 갑자기 몸살기가 돌기 시작하더니 기침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가까운 일본이라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첫 여행이었고, 해외라는 어려운 상황에서 나름 긴장하는 바람에 내 몸이 아픈지 체크도 못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그날로부터 꼬박 3일을 몸져누웠다. 보호자라는 역할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이들을 키우며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꽤 많이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작아져버린 커다란 존재들을 돌보는 것은 몇 배로 어렵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시간이었다.
누군가가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고 하면 참 부러웠다. 멀리 살고 있어서, 제대로 된 여행을 모시고 가본 적이 별로 없어서, 늘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가 부모님과 여행을 간다고 하면 좋기도 또 힘들기도 하겠다며 몸을 단단히 챙기라고 일러준다. 몸살까지 날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럼에도 엄마, 아빠의 보호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지난 여행이 언젠가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 내 인생의 달콤한 초콜렛이 되어줄 거란 걸 알고 있다.
고정순 그림책 작가님의 일력 중 어버이날 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당신은 내가 노력하지 않고 얻은 유일한 행운'이라고. 어떤 노력도 없이 이렇게 멋지고 존경스러운 엄마, 아빠를 얻은 나는 행운아가 틀림없다. 이제는 내가 엄마, 아빠에게 노력해서 얻은 행운 중에 가장 값진 행운이 되어 주고 싶다. (음. 그럼에도 당분간 부모님과의 여행은 쉬는 걸로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비밀로)
2박 3일의 시간 동안
작아지고 느려진 당신이 꼬옥 잡은 손을 제가 앞장서서 이끌었지만,
그런 저를 나아가게 해 준 건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엄마, 아빠. 당신의 사랑을 기억할게요.
우리의 소중한 추억을 오래오래 함께 나누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