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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달글 May 16. 2021

[장문장] 한달소회

1년이 금방 지나갑니다.

안녕하세요, 장문장입니다.

2021년 5월 24일을 마지막으로 한달글은 1년을 채우고 끝이 납니다. 지난 1년간 66편의 글이 올라왔고, 우리는 미디엄에서 시작했다가 2020년 10월에 브런치로 넘어왔습니다.  조금 민망하지만 한달글 단톡방에는 무려 17명이 있습니다. 글 쓰는 게 쉽지 않습니다. 사실 저는 이제 좀 쉬워진 것 같기도 합니다.

미디엄에서는 월 30회쯤 나오던 조회수가 브런치에서는 평균 800회 수준으로 나왔습니다. 물론 완독률을 따져본다면 많이 줄어들겠지만, 브런치의 노출 정책 덕분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었습니다.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로 한달글에 올라왔던 많은 글 중 가장 좋아하는 글은 Parapluie님의 해피 엔딩 입니다. "우리는 가장 날 것으로 갈수록, 가장 내면에 집착할수록 점점 더 보편적인 글을 써낼 수 있다."라는 저의 글쓰기 태도와 맞는 글이지 않나 싶습니다. 


글을 쓰면서

사진은 제가 11월에 썼던 남자와 여자가 처음 만날 때의 유입 검색어입니다. 검색어를 보면서 글 쓰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디 이들이 수치스럽지 않은 소개팅을 했길 바랍니다.

한달글을 기획한 이유는 인트로에도 나와있듯이, 혼자서는 영 힘이 나지 않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여태까지 짧은 글만 써오다 보니 긴 글을 쓰는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고, 2000자가 넘는 글을 쓰는 연습을 하고자 했던 것이 한달글의 시작입니다.

그동안 썼던 12개의 글이 자랑스럽고, 또 충분한 연습이 되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제 글은 P와 농산코너 입니다. 할 말을 다 했는데 군더더기가 없거든요. 한달글을 마치고 저는 개인 브런치 계정을 열려고 계획 중입니다. 거기서는 개발에 관한 글을 좀 써볼까 합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반도의 개발자 중에서는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어보겠습니다.


반성

 사실 리더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습니다. 한달글은 명확한 보상이 있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각자 원하는 것도 다르고, 참가하는 태도도 다르고, 그래서 얻어갈 수 있는 것도 다릅니다. 이런 종류의 프로젝트를 할 때는 참가자의 우선순위 목록 상단에 프로젝트를 위치시키는 일이 중요합니다. 말하자면 [우선순위 끼어들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다들 성인이니, 제각기 일주일 정도의 시간 프레임 안에 잘 정돈된 과업 집합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간의 우선순위 또한 (의식적으로 정리한 적은 없지만) 명확합니다. 저는 이런 과업 집합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아떨어져 일상이 굴러간다는 심상을 갖고 있습니다. 새롭고 거대한 과업(e.g. 새 직장, 연애의 시작 등)이 들어오면 우리의 일상은 삐걱대면서, 필요한 만큼의 자리를 내주게 됩니다. 시간이라는 한정적인 프레임 안에서 기존의 것들이 줄어들고 재배치되는 과정을 적응이라고 부릅니다.

한달글은 새로운 연인이나 직장이 아니라서 당연한 듯 뻔뻔하게 우선순위 최상단을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한달글이 적당히 우선순위 목록 중간에 끼어들기 위해서는 별도의 장치가 필요합니다. 리더가 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장치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우선순위 끼어들기]를 위한 다양한 장치가 있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처벌로써의 벌금이지만, 저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가 동기라면 안 하는 게 낫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능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달글의 우선순위를 높이고 싶었습니다. 서로 글을 읽고 댓글을 달고, 설명과 의견교환을 하는 과정에서 각자 "홀로 한 편의 글을 완성함"과 다른 차원에서 오는 효용을 느끼고, 그로써 이 프로젝트에 더 몰입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 장치에 대한 고민은 번번이 익명성이라는 장벽에 막혔습니다. 한달글이 익명으로 구성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조금 더 진솔하게, 날 것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이미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는 일이 덜 발생하도록

 즉 익명성은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설계였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참 부끄럽고 부담스러운 일이니 말입니다. 이 익명성은 초기에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는 도움이 됐고, 첫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됐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익명성은 [우선순위 끼어들기]에는 큰 방해가 되었습니다.

 익명성 아래 댓글을 통한 의견교환은 생각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체로 피상적인 감상이 오갔는데, 익명의 타인에게 칭찬이 아닌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게다가 비판의 자격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안다고..."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경우에 불편함을 무릅쓰고 타인의 결과물을 비판할 수 있습니다. 프로페셔널이거나, 친하거나. 우리가 글쓰기의 프로페셔널할 수는 없으니 친밀감이 필요했습니다. 친밀감과 익명성이 정반대의 개념은 아니지만, 익명성 안에서 친밀함을 얻기란 무척 난해합니다. 이걸 깨달은 순간부터라도 매달 구글밋이라도 열어서 그 달의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어영부영 시간이 지나고 결단을 내리지 못해서 익명인 상태로 쭉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참여한 분들이 더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번에 이런 일을 한다면 적어도 절반의 기간이 지나고 나면 실명으로, 매달 온라인 미팅을 하는 방향으로 해봐야겠습니다.


마무리

 연극을 배웠다면 공연을 해야 하고, 웹개발을 배웠다면 서비스를 오픈해야 합니다. 그런 결과물이 없다면 스스로조차도 내가 무엇을 했던가 잊어버리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동시에 결과물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브런치 작가라는 타이틀도 하나의 결과물입니다만,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을(?) 박제된 계정 하나로는 상징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왕 글을 쓴 것 전통적인 종이책으로 내보려고 합니다. 전자책도 나올 수는 있겠네요. 

 이제 한달글은 한달글 편집팀으로 이름을 바꾸어 7월까지 책이 나올 수 있도록 힘쓸 예정입니다. 한 권 팔릴 때마다 인세가 2400원 정도 들어온다고 하니 글쓴이 6명이 나누면 400원이군요. 코로나 끝나고 다 같이 멋진 카페에 가서 바스크 치즈케이크 사 먹겠습니다. 그럼 책이 나오면 영업과 마케팅과 후기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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