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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장 Oct 04. 2021

새로 담그는 깍두기룰


엄마, 나 보고 깍두기래!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는 외가가 있던 의성군에서 자랐다. 내가 백일을 갓 넘기자마자 아빠가 리비아로 장기 출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엄마는 꼬물거리는 나를 혼자서 키울 수 없었기에 친정으로 갔던 듯했다. 그곳은 꽤 시골이다. 아이들은 제 또래의 친구들이 그리 없었다. 막 걷기 시작하고 말문만 트인 코흘리개부터 국민학생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들이 한데 어울려 놀았고 그게 친구였다. 그래도 여전히 그 안에서의 갭은 있었다. 그 들 사이에서 나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그런 나를 아이들은 깍두기라 불렀다. 나는 어떤 놀이를 해도 벌칙이 면책되었고, 고 콩알만 한 것들의 사이에서 존재하던 더 콩알만 한 규칙조차 무시해도 되었다. 나는 무적이었다.


한미녀 역시 그랬다. 그녀도 나처럼 파트너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오징어 게임>이야기다. 다른 게임 참가자들은 그런 한미녀가 탈락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치열한 게임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온 이들을 편히 쉬고 있던 한미녀가 활짝 웃으며 맞이한다. 본인은 깍두기였노라며 말이다.


이 <오징어 게임>에 대한 애국심, 흔히 말하는 국뽕이 대단하다. 언론은 전 세계 모든 넷플릭스 대부분 진출국에서 1위를 했다는 흥행실적에 관한 기사를 다루며 유일하게 1위를 달성 못 한 나라에 관한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결국 엊그제 인도에서도 마침내 넷플릭스 1위를 했다는 팔로우업 기사가 기어이 올라왔다. 그러나 묘하게 균형을 잃은 자화자찬식 기사가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거기에 합세해 어느 나라에도 없다는 한국 유일의 <깍두기 제도>를 소개하며 흥선대원군 못지 않은 쇄국의 기운을 보인다. 다른 나라에 없는 훌륭한 시스템이자 한국이 얼마나 따뜻하고 약자를 배려할 줄 아는 전통을 지녔는지의 언급도 빼놓지 않는다. 물론 나는 <오징어 게임>을 정말 재미있게 본 한 사람이지만 정말 그 시절의 깍두기였던 나는 동네 아이들의 배려 속에 외롭지 않았던 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게 뭔지 아나? 뭐가 좋다고 웃노!


몰랐다. 깍두기가 무엇인지. 그저 같이 놀아주는 언니, 오빠들이 있어서 신이 났었다. 엄마는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한참 뛰어다니다가 발갛게 된 얼굴로 엄마를 향해 뛰어든 나를 향해 말했다. 지금은 알겠다. 깍두기는 무적이 아닌 무법자라는 것을. 그리고 공증된 머저리라는 것을. 깍두기였던 나는 실제로 그 들과 같이 뛰놀고 있었으나 없었다. 그들 눈에는 내가 있는데도 난 없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LH가 또 다른 차별의 레이블이 된 것처럼 말이다. 한참을 숨바꼭질하다가 아무도 찾지 않아 나와보면 승패와 상관없던 나는 혼자 남기 일쑤였다.


요즘 회사에서 깍두기가 된 느낌이다. 담당하는 브랜드가 두 개인 나는 원래부터 맡고 있던 브랜드의 업무는 서서히 줄여 나가며, 새 브랜드에 대한 업무를 가열하게 늘려가고 있다. 그러나 인력이 부족해 여러 역할을 해야 하다 보니 오롯이 한 브랜드만 전문성 있게 맡을 수 없다. 집중적인 업무를 하기가 힘들다. A 브랜드 소속도 B 브랜드 소속도 아닌 바보가 되어 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A 브랜드 미팅에서는 현 상황을 따라가기 힘들었고 B 브랜드 미팅에서는 히스토리를 숙지하기 어려웠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전과 다르게 업무 누락과 공백을 빚었다. 이런 나의 위치를 회사는 이해하는 태도이나 스스로가 멍청한 깍두기 된 기분을 지우기 힘들었다.


깍두기, 과연 약자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제도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약자를 골라내거나 피해 가려는 주홍글씨는 아닐까. 깍두기라는 제도를 두어 약자를 배제하지 않으려는 명목은 훌륭하다. 하지만 진정 약자를 배려하려 했다면 어느 팀에도 소속시키지 않는 neglecting을 행하는 대신 어느 한 팀에 소속시켜 도움을 주는 형태가 더 약자를 위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작지만 제 몫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없는 셈 치는 깍두기룰 보다 낫지 않은가. 참으로 편하게 타이틀 하나 씌워 놓았다. 그러고서는 동료로서 더 이상의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깍두기룰. 이것이 한국 전통이라면 나는 결코 자랑스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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