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舊官)도 통과하지 못한 2차 예선
회사 사정이 작년에 비해 나아졌는지 인력 충원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내가 면접관이 되었다. 면접관이었던 적은 아르바이트 혹은 단기직 직원을 뽑는 때뿐이던 내게 본사 디자이너를 뽑는 면접에 참석하라는 연락이 온건 지난주였다. 살아오면서 이제껏 쓴 이력서와 자소서만 족히 2,000통이 넘던 내가, 면접장 문 앞에서 사시나무처럼 떠는 몸뚱어리를 부여잡아가며 기다리던 내가 말이다. 이런 날이 오다니 감회가 새롭다. 경력직으로 이직한 나는 예외로 면접을 보고 입사했다. 그러나 우리 회사에서는 현장을 잘 이해해야 하는 슈퍼바이저의 특성상 직영 매장 매니저가 슈퍼버이저로 승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면접을 볼 일이 매우 드문 직군이었다.
면접 전날 추려진 지원자들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니 디자인 직군답게 화려하다. 누구는 BTS굿즈 패키지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누구는 디자인 물 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 매장의 인테리어 도면까지 작업 해봤단다. 혹여나 생길 편견에 대비해 사진과 성별 등의 지원자 이력이 담긴 이력서 등의 서류는 넘어오지 않았다. 이런 게 MZ세대를 맞이하는 회사의 새로운 애티튜드인가 싶다. 나 역시도 지원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시작했다. 면접장으로 향하는 길에 근무했었다는 회사의 SNS도 찾아보고 질문지도 미리 추려갔다. 합격한다면 같이 진행해보고 싶은 프로젝트도 서둘러 정리를 해두었다.
면접 자체는 순조로웠다. 애티튜드는 변해도 면접은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사시나무처럼 떠는 몸뚱어리들이 그 자리에 있었으며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시답잖은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려는 면접관도 있었다. 다만 그 면접관이 내가 되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였다. 그중 출산 후 복직을 희망하는 지원자도 있었다. 유연근무제를 갖추고 있으며 출근이 필수가 아닌 우리 회사의 근무조건이 그 지원자에게는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면식도 없던 사람이지만 부디 면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내심 바랐던 지원자였다. 쇼미더머니의 심사위원들이 유독 특정 지원자를 향해 ‘제발 절지만 않았으면(가사를 틀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한 소망을 내비치었던 것처럼 나 역시 그런 심정이었다. 포트폴리오도 흠잡을 데 없었다. 더욱이 B.I 리뉴얼을 계획하던 내게 인테리어 도면 작업 능력도 갖춘 그 지원자는 큰 자산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끝 무렵 함께 참석했던 다른 면접관의 질문에 하염없이 무너지는 지원자를 보며 뽑기도 전에 해고를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저희 브랜드 매장은 가보셨나요? 가보셨다면 어떤 매장을 가보셨나요?”
“아니요. 가 본 적은 없습니다.”
“가보지 않았다면 면접 준비하시면서 검색이라도 해보셨을 텐데 매장 인테리어나 현재 포스터는 보셨나요?”
“몇 개 찾아봤는데 기억이 잘….”
솔직해도 너무 솔직하다. 가식 없는 시원스러운 답변에 면접관들은 호탕한 웃음으로 경의를 표했으나 실은 당혹감을 감추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지원한 회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성의가 보이지 않아 그녀의 큰 장점과 능력들은 더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들였던 예의와 성의가 아깝다. 실력은 다소 부족해도 일하면서 배워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일을 함에 있어 회사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어떻게 일을 발전시켜 나가겠는가.
<조건 충족 최소 비용 기법>이라는 평가 기법이 있다. 평가 시 필수 조건은 당연한 충족 사항이 되어야 하며, 선택 조건은 총 항목 중에 일정 충족 비율만 맞다면 충족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입사 지원자들의 자격증과 성적표, 진행했던 프로젝트는 선택 조건인 셈이나 회사에 관한 관심은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충족되지 못하면 가차 없다. 영꼰대라고 불릴 수 있는 점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게다가 지나친 솔직함은 면접장에서 독이 된다. 나 역시도 20대 시절 이런 솔직함으로 좋은 성과를 얻지 못한 적이 있다. 잘 흘러가던 면접에서 궁금한 점이 있으면 편하게 질문을 하라는 면접관의 물음을 그저 친절로만 받아들였던 게 화근이었다. 장담하건대 야근과 초과근무가 잦은 편인지 물어본 것이 아마 불합격의 초석이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솔직함과는 별개로 지원한 회사에 관한 관심 부족은 면접관으로서는 도저히 봐줄 수 없는 기본조건이다.
<쇼미더머니10>이라는 서바이벌 래퍼 오디션에서 탈락한 베이식이 그렇다. 베이식은 과거 시즌의 최종 우승자이다. 그의 재도전 자체는 실력에 대한 디폴트값을 충분히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도 기본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우승자 타이틀의 베이식과 활동기간이 짧은 카키라는 래퍼의 실력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둘의 랩 스타일 자체는 다르지만 그 세월이 녹아진 노련미와 그를 기반으로 한 베이식의 발성은 카키가 뛰어넘을 수 없었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2차 예선에서 베이식은 탈락했고 카키는 합격했다.
나도 매일 잘근잘근 씹어대는 회사기에 애정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관심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에 관한 관심이 중요하기에 신입이 입사하면 매장 근무와 식자재를 작업하는 에프앤비 공장 OJT를 반드시 진행하고 있다. 관심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다. 내 눈에 그 지원자는 관심의 불씨조차 지니고 있지 않았다. 그저 외주 디자인 업체와 진배없었다. 이것이 많은 아쉬움이 남던 내 첫 면접관 이야기이다.
공교롭게도 면접을 끝내고 나오니 마침 본사 근무자들에게도 이력서를 요청하는 공문이 내려와 있었다. 새로 온 인사 관련 고문 이사에게 각 직원의 역량 평가를 맡기게 되었단다. 말이 이력서지 업무 수행 평가서인 셈일 것이다. 연봉협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이력서다. 오래간만에 쓰는 이력서라 참고해 볼 겸 내 입사 지원서를 찾아보았다. 3년 만에 찾아본 내 입사 지원서는 뽑을 만했다. 그 당시의 심정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떻게 지역별 매장을 세세히 분석해서 개선안을 제시했나 싶다. 면접관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회사에 대한 나의 관심을 어필하는 게 최고이다. 심사위원들이 도저히 허용할 수 없었던 ‘가사절지 않기’의 기준을 베이식은 통과하지 못한 탓에 이른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었다. 그 기본적인 기준 앞에서는 구관도 명관은 아니다. 카키도 작년 쇼미더머니에서 결국 가사를 틀려 탈락하게 된 것이 그제야 생각이 난 건 왜일까. (베이식은 후에 패자부활전을 통해 살아남았고 그의 재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