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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샤장 Oct 24. 2021

퀸메이커

고성과자를 키운는 건 8할이 바람, 2할이 퀸메이커

브랜드 두 개를 맡다 보니 업무도 두 배가 되었다. 그 덕에 퇴근이 꽤 늦어진 요즘이다. 수업이 있는 월, 목을 제외한 나머지 평일은 어김없이 집에 오면 자정 무렵이다. 어떨 때는 더 늦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간혹 9시쯤 퇴근을 하는 길에 엄마한테 전화하면 이른 시간에 전화를 건 것에 적잖이 놀라곤 하는 것이 그 것이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건 시간을 몇 번이고 다시 쓸 수 있는 헤르미온느의 타임 터널 목걸이이다.


온종일 환기가 되지 않던 집을 여는 순간 응축되었단 더운 공기가 훅 밀려 나온다. 내 집인데도 나를 밀어내는 것만 같다. 비단 밀려 나오는 미적지근한 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을 들어서자마자 늘어놓은 옷가지들과 널브러진 택배 상자 그리고 정리하지 못한 테이블 때문에 덩달아 신산스러워진 마음 탓이다. 누구도 정돈해주지 않은 내 집은 들어서기가 겁난다. 더운 공기가 집으로 들어서는 나를 밀어내었듯이 입구에 서서 작은 한숨으로 나도 집을 밀어낸다. 이럴 때는 나도 우렁각시가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내 몸을 쪼개어 직장에서 헌신하고 왔는데 쪼개진 몸뚱어리를 퇴근 후에는 더 잘게 쪼개어 집안일에 할애해야 한다.


내가 관리하는 가맹점주들은 부부내외나 혹은 모녀, 형제끼리 동업을 하는 점주보다 유독 젊은 나이에 혼자 장사를 시작하는 점주들이 많다. 이른 나이에 퇴사를 결심하고 홀로서기 하는 그런 젊은 사장들이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 확신한다. 물건을 받아다가 팔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장사가 그리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금 결제도 세금 납부도 소득세 신고도 직원 월급 지급도 모두 제 손으로 해야 하는 것도 모자라 쉼 없는 고객의 부름과 직원의 물음에 답해야 하는 젊은 사장들은 쉴 틈이 없다. 사장이라는 자리가 주기만 하는 자리인지라 받는 거 없이 뺏기는 순간들도 못내 서러울 것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뜻뜨미지근한 공기를 겨우 게워낸 집에서 주말내내 붙어있었다. 쾌적해진 공간을 실컷 누리고 싶어서 주말내내 나가지도 않고 못다 본 <스트리트 파이터 우먼>을 몰아 보았다. 거기에서 나오는 댄스팀 중 <코카인버터>라는 팀은 매가 좋아하는 장르의 춤을 추는 팀이라 항상 응원하는 팀이다. 그러나 낮은 성적의 연속으로 초반의 강렬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갈수록 기가 꺾인 모습을 보여 주었었다. 그러다가 최근 진행했던 미션에서 리더인 리헤이가 초대한 넉스라는 댄서의 도움을 받아 역대 최고 점수를 받게 된다. 사실 넉스는 리헤이의 남자친구이다. 인터뷰에서 넉스는 원래 잘하는 친구들인데 기가 죽는게 너무 아쉬웠다는 이야기를 하며 본인은 퀸메이커로 왔으니 이들을 우승시켜주겠다는 시원스러운 발언을 하였다.


퀸메이커. 내게도, 장사를 혈혈단신 시작하는 젊은 사장들에게도 지금 필요한 것이다. 아직 터도 닦이지 않은 불모지에서 맨손으로 브랜드를 일구어 나가는 내게는 내 업무를 나눠 줄 동료도 물어볼 선임도 없다. 게다가 자취생인 내게는 퇴근 후 집안일 걱정 없이 그저 푹 쉬기만 하는 여건도 되지 않는다. 젊은 사장들은 크지 않은 자본으로 홀로 장사를 시작한다. 인생 경험과 요령도 적은 그들은 가족 대부분이 아직 본인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나이대이기 때문에 내부적 도움을 받기도 어렵다. 내게는 없지만 슈퍼바이저인 나는 가맹점주들의 퀸 혹은 킹 메이커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재미있기만 해서 스우파를 보다가 슬며시 눈물이 났다. 나도 지금 보다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 내는 성과메이커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이드 없는 업무의 가이드라인을 만들던 나도 누군가가 밀어주기만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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