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수진 Dec 19. 2023

나의 도플갱어


  카페의 커다란 문을 열자마자 눈에 띄는 물건이 있다. 얼마 전 마음에 쏙 드는 파우치를 샀는데, 색깔만 다른 것을 가진 여자가 앉아 있었다. 같은 물건을 가진 타인을 만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단골 카페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괜히 의미부여를 하게 된다. 커피 취향이나 좋아하는 물건이 비슷한, 나와 같은 결의 사람이 아닐까 하는 기대. 슬쩍 보았더니 푹 눌러쓴 캡모자도 같은 브랜드다. 아이스라테를 주문하고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눈썹을 찌푸리거나 킬킬 거리며 웃었다. 영상을 보느라 내 존재는 눈치채지 못했다. 둘 다 흰 운동화를 신고 있고 나는 네이비 후드티를, 그녀는 비슷한 색의 카디건을 걸쳤다. 긴 머리를 늘어트린 우리는 마치 쌍둥이 같다. 지구 어딘가 나와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있다는데, 어쩌면 그녀는 나의 ‘물건 도플갱어’가 아닐까.


  도플갱어는 독일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의 분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뜻이 된다. 존재 여부는 밝혀진 바 없지만 진짜 있을지도 모를 나의 도플갱어를 상상해 본다. 성격은 어떨까. 직업과 취미는 뭘까. 결혼을 했을까. 아이가 있다면 몇 명 일까, 배우자는 어떤 사람일까. 한국의 나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궁금해진다. 실제로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하다.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든든하다. 나와 똑같은 누군가가 지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간질거린다. 도플갱어는 오직 본인만 마주친다는 속설이 있다. 혹시 우리가 만나게 된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의 도플갱어, 당신은 언제 가장 외로운가요?


  나는 인생의 틈 사이로 밀려드는 외로움을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고.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견디는지 묻고 싶다. 제대로 된 방법을 찾지 못한 나는 종종 휘청거린다고. 울거나 도망칠 때가 훨씬 많다고. 때론 나를 적시는 외로움에 그대로 몸을 맡긴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때도 있다고. 완전히 젖은 옷을 한 꺼풀 벗겨내면 한결 가벼워진다고. 글 쓰며 살고 싶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외로움은 쓰는 시간 속에서 밀려든다 고백하고 싶다. 하지만 나의 기쁨, 반짝이는 행복 역시 그 시간 안에 있다고. 매일 경계를 넘나드는 마음에 대해 와르르 털어놓고 싶다. 그는 과연 어떤 말을 할까. 만날 일이 없으니 들을 일도 없을 대답이지만.


  휴대폰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물건 도플갱어가 고개를 든다. 커피를 마시는 내내 영상을 보던 그녀와 글을 쓰던 나. 우리는 같은 취향을 가졌지만 각자 다르게 시간을 보낸다. 도플갱어를 만난다 해도 내가 바라던 대답은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완전한 타인이니까. 어쩌면 같은 얼굴을 한 사람으로부터 따뜻한 응원을 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건 스스로를 향한 응원이 될 테니까.


  주섬주섬 파우치를 챙기던 그녀와 창가에 앉은 나의 눈이 마주친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의 물건을 쳐다본다. 모자와 파우치, 비슷한 색의 옷과 신발까지. 찰나의 정적. 문이 닫히고 나는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고 그녀는 횡단보도 저 멀리 사라진다. 비현실적인 아침이다.






이전 05화 부캐는 작가입니다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