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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Dec 14. 2023

부캐는 작가입니다만


  부캐(부 캐릭터)라는 말이 있다.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아닌 현실에서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유행이다.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이나 평소에 할 수 없었던 일을 부캐로 만든 사람들을 보면 부러웠다. 삶을 두 번 사는 것 같았다. 나도 부캐를 만든다면 뭐가 좋을까. ‘작가’라는 단어가 바로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저의 부캐는 작가입니다.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다면 인생 2회 차를 시작할 수 있을까. 영 자신이 없다. 문득 아이의 첫 학교 상담이 생각난다. 긴장한 내 앞에 종이 한 장이 놓였다. 아이가 그린 가족 그림이었다. 남편 머리 위에는 회사원, 내 머리 위에는 작가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어머, 글 쓰는 일 하시나 봐요 ‘라는 말에 심장이 쿵 떨어졌다. 차마 작가라고 대답할 수가 없었다. 대충 얼버무리고 귀까지 빨개진 채 상담을 마쳤다.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매일 글을 쓰지만 작가라고 말하지 못하는 나. 어중간하고 애매한 삶을 사는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


  엄마는 왜 회사에 가지 않냐고 묻거나 직업란에 전업주부를 선택할 때마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시간을 쪼개며 부지런히 사는데 월급은커녕 보람도 없었다. 적은 돈이라도 내가 직접 벌고 싶다는 욕망이 일었다. 좀 더 생산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의욕이 마구 생기다가도 정신을 차려보면 교문 앞이었다. 그곳이 내 자리였다. 내 인생은 이대로 마른 낙엽처럼 파스스 부서져 흩어지는 게 아닐까. 복잡한 마음을 달래며 글을 썼다. 컴퓨터에, 작은 수첩에, 휴대폰 메모장에 하나 둘 글이 쌓여 갔다.

  혼자 쓰다 외로워진 어느 계절에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마음 맞는 이들과 공저로 출간한 책이 두권 생겼다. 나의 애씀이 책이 되다니. 기뻤지만 이상하게 자꾸 쪼그라들었다. 책만 나왔을 뿐 모든 게 그대로였다. 인세는 물론 글쓰기 제의는 당연히 없었다. 무명인 내가 태평하게 앉아 글을 쓰는 건 사치 같았다. 쓰는 일 말고도 고민거리는 넘쳐났다. 아이의 병원 예약이며 학원 수업 조정 같은 것들. 산처럼 쌓인 빨래와 눌어붙은 설거지를 내팽개치고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었다.


  아이와 뒹굴거리며 잠을 미루던 밤. 딸이 책 하나를 꺼내왔다. 나의 두 번째 책이었다.


“나는 엄마 글이 너무 좋아. 슬픈데 마음이 뭉클해.”


  코 끝이 찡했다. 어두운 삶의 조각을 알기엔 아이가 어리다고 생각했다. 몰래 글을 숨기고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글을 받아들였다. 좋아하는 문장을 소리 내어 읽거나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되묻기도 했다. 글 쓰는 엄마가 자랑스럽다며 자신의 책장에 내 책을 소중히 넣어두었다. 작고 귀여운 독자가 눈앞에 있었다. 나는 이미 넘치는 응원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자꾸 잊고 있었던 것일 뿐.


  다음날, 남편과 아이에게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누가 직업을 물으면 작가라고 대답할 거야. 그러자 둘 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문했다. 매일 글을 쓰고 책도 두권이나 나왔는데 아직도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냐는 말이었다. 인세를 받고, 서점 매대에 번듯하게 책이 놓여야만 진짜 작가라고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중요한 것은 멈추지 않고 쓰는 일인데. 조바심은 사라지고, 오늘 어떤 글을 쓸까 하는 고민만 남았다. 새로운 글쓰기 챕터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유혹하는 글쓰기의 저자 스티븐 킹은 글쓰기 뮤즈가 지하실에 있다고 했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지하실에서 반드시 작업한다는 사실만 알려주면 언젠가 그 시간에 뮤즈가 찾아온다고.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말고 다른 지름길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뜨끔했다. 뭔가 더 쉬운 방법이 없나 한눈을 팔곤 했다. 책을 내고 글쓰기 제의를 받는 사람들을 부러워한 적도 많았다. 자책은 그만두자. 대신 매일 오전 나만의 지하실로 내려갔다. 도서관, 카페 구석, 나의 창가 테이블, 음식을 하다 말고 글 쓸 수 있는 거실 테이블, 아이의 작은 책상, 버스 정류장, 기차 안, 산책하다 숨 돌리는 벤치. 그 모든 곳이 나의 지하실이 되어주었다.


  뮤즈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앞으로 쭉 만나지 못해도 좋다. 대단한 글을 쓰지 못해도 괜찮다. 이대로 쭉 쓸 수만 있다면. 글 밖의 삶에서 부스스한 머리를 한 채 정신없이 아침을 준비하는 나도, 글 안의 삶에서 단어 하나에 매달라는 나도 모두 나 자신임을 잊지 않는다. 나는 주부지만 삶을 써 내려가는 작가다. 매일의 나를 기록하는 지금이 행복하다. 작은 기쁨을 모아 나의 지하실로 내려가 오늘의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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