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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Dec 21. 2023

브런치에 글 쓰는 여자


  브런치? 먹는 게 아니라 쓰는 거라고요?


  보통 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이다. 브런치는 자신의 글을 공개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인터넷에 자기만의 방 하나를 만드는 셈이다. 글을 공유할 수 있다는 든든함과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쁨 때문에 이곳을 좋아한다. 혼자 글 쓰는 일은 외롭지만 브런치 속 다양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힘이 난다. 어딘가에서 부지런히 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잠시 기댈 수 있다. 오전 내내 도서관에서 글을 썼다 지우고 새로 쓰기를 반복했다. 오늘의 글을 올리고 나서야 오후 한 시가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을 기억해 냈다. 가방을 메고 일어서는데 가장자리에 앉은 사람의 노트북 화면이 보인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방금까지 내가 들여다보던 화면이었다. 브런치 작가를 만난 것이다.


  튼튼한 노트북 거치대와 마우스, 손목 보호대까지 장착한 그녀에게서 포스가 느껴졌다. 글쓰기 툴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글자와 고군분투 중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글쓰기 모임을 해봤지만 브런치 작가를 만난 적은 없었다. 신기하고 반가웠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글쓰기 동지를 현실에서 만난 기분이랄까. 사실 그녀와는 초면이 아니다. 내가 크게 놀란 데는 익숙한 얼굴이기 때문이었다. 도서관을 오가거나 장을 볼 때, 아파트 헬스장에서 종종 마주쳤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픽업하거나 카페에서 지인들과 크게 웃는 걸 보기도 했다. 같은 아파트 주민인 그녀가 글 쓰는 사람이라니. 인사 한번 나눈 적 없지만 괜히 친근했다. 엄마 대 엄마로 마주쳤던 그녀는 지금 글자와 싸우고 있다. 글을 다듬으며 조용히 자신을 비워내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에너지를 채우고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나 역시 매일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한다. 이 시간만큼은 잠시 다른 삶을 사는 것 같다. 글 쓰는 오전은 순식간에 흐른다. 제대로 된 글 한편을 완성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애타는 마음을 뒤로하고 엄마로 돌아가야 한다. 시간이 정해진 신데렐라처럼. 아이와 놀이터에 가고, 순식간에 집안일을 해치우고, 저녁을 준비하는 슈퍼 엄마로. 오전 내내 글을 쓰며 행복했던 마음을 에너지 삼아 남은 하루를 보낸다. 그녀 역시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엄마이지만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삶을 살고 싶어서.


  우리에게는 각자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출근하거나 지겨운 아침을 반복하며 학교로 향해도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일이 분명히 있다. 누군가는 영화를 보며 감탄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행복해한다. 피아노를 다시 시작하거나 용기를 내어 마라톤에 도전하며 잊고 있던 즐거움을 알아간다. 커피나 제빵, 요리를 배우고 자신만의 맛을 찾아내는 기쁨을 만끽한다. 마음의 방향에 따라 피어나는 아름다운 모습들. 우리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지레 겁을 먹는다. 나도 그랬다. 글 쓴다고 뭐가 달라져,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야. 스스로를 꽁꽁 묶어둔 건 바로 나였다. 오늘의 나를 보기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의 나를 밀어내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매일 작심삼일을 반복해도 좋다. 가장 좋아하는 일 하나를 찾아내 시작해 보자. 행복은 아주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글을 쓰며 냉탕과 온탕을 오가도 매번 기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나 둘 시작하다 보면 내가 어떤 행복을 찾는지 알게 된다. 그렇게 우리의 매일을 사랑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 주변에는 행복을 갈고닦는 숨은 고수가 많을지도 모른다. 자신만의 기쁨을 찾아낸 사람들이 회사에서 일을 하고, 점심을 먹고,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리 피곤해도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당신도 아주 쉬운 일 하나를 찾아보면 어떨까. 나는 매일 글쓰기의 고수가, 우리 엄마는 건강한 요리 만들기의 고수가, 내 친구는 영어 프리토킹의 고수가 되고자 한다. 하나씩 쌓다 보면 언젠가 진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더없이 꽉 찬 행복을 느끼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글 쓰는 자신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애쓰던 그녀를 기억하고 싶어 이 글을 썼다. 나의 뒷모습도 아름다운 장면이 되길 바란다. 쓰는 시간의 외로움을 딛고 글 쓰는 나의 앞, 뒤, 옆모습을 상상하며 오늘의 글을 쓴다. 가장 작고 사소한 행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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