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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수진 Dec 26. 2023

운명이 정말 있다면

타로를 보러 간 어느 가을아침 이야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생각했다.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다녀오겠다고. 우연히 발견한 타로가게에 대한 호기심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실은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이었음을 고백한다. 최근 백영옥 작가의 <힘과 쉼>이라는 에세이를 읽고 마음에 남은 장면 때문이다. 글 쓰는 삶이 힘겨웠던 작가는 인터뷰차 점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당신의 대운은 70대에 깃든다는 말을 듣는다. 글쓰기를 계속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던 작가는 화가 났다. 70대까지 어떻게 기다리란 말인가. 그러다 문득, 말년에 꽃 피우는 운명이라면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작은 것부터 하나씩 선택했다. 출근 전 커피 한잔을 마시며 글을 썼다. 늘 피곤한 몸으로 밤늦게 쓰던 오타만발의 글에서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공모전에 탈락할 때마다 점쟁이의 말을 떠올렸다. 말년에 꽃 피울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니 오히려 담담해졌다고. 그렇게 차곡차곡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갔다.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른다. 지금 이 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오전에 글 쓰는 습관을 만들며 미래를 향해 나아간 것처럼. 나 역시 글쓰기에 지쳐있던 작가와 같은 마음이었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글쓰기에 쏟아붓는 게 맞는 건지 불안했다. 재능도 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수많은 책과 성공한 작가들은 그저 묵묵히 읽고 쓰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언젠데? 얼마나 더 이 화면과 마주해야 내 글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건데? 내게도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곳이 타로 가게였다. 운명이 정말 있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을까. 뜬구름 잡는 말이라도 좋으니 응원이 필요했다. 글 쓰는 삶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싶었다.

   

  사주나 신점은 어쩐지 무섭고, 그나마 내가 용기 낼 수 있는 마지노선이 타로였다.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까지 고민했다. 가는 게 맞나? 괜한 돈낭비 아닐까? 정작 듣고 싶은 말은 하나도 못 들으면 어쩌지? 복잡한 마음음을 안고 예약시간에 맞춰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긴장한 탓에 손에 땀이 났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차분한 분위기의 타로 마스터가 앉아 있었다. 진짜 와버렸구나 하는 생각에 귀가 빨개졌다. 어쩌자고 이른 아침부터 여기로 달려온 걸까. 호기심 반, 후회 반으로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금색 카드가 촤르르 펼쳐졌다. 내 질문은 하나였다. 너무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이 길을 가는 게 맞는 걸까요. 뒤집은 카드 속 그림과 나를 번갈아 보는 마스터의 눈이 두려웠다. 움츠러든 어깨를 펴지도 못하고 대답을 기다렸다. 재능은 있으나 아직 갈고닦을 때라고. 지금 많이 답답해 보이니 수시로 기분전환을 하라며 산책과 운동을 권했다.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노련한 그는 몇 개의 질문을 던지며 카드를 계속 뒤집었다. 어떤 질문이 오갔는지, 뭐라 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짓눌렸던 마음에서 벗어나 한결 가벼워졌다는 것이다. 분명히 빛을 발할 날이 온다. 재능이 있으니 이대로 나아가라. 2년 내에 성과가 있을 거라는 그의 말을 나침반 삼기로 했다. 든든한 보험 하나를 든 것처럼 안심이 되었다. 이런 안도감 때문에 다들 점집을 찾고 절에 가고 교회를 다니는구나 싶었다.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글 쓸 기회가 생겼으면. 매일 간절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인맥 제로에 무명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도서관에서 혼자 쓰는 글이 내 가능성의 끝일까 봐 무서웠다. 보장된 미래가 없는 노트북 화면에는 물음표만 가득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외로웠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혼자 이겨내야 하는 외로움. 나는 끝끝내 이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쓰는 삶을 떠나지도 못하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면 조금만 더 버텨보자. 나를 믿고 이 외로운 시간을 묵묵히 통과해 보자 생각했다. 오늘 아침, 금색의 카드가 뒤집힐 때마다 보이던 그림과 말에서 힘을 얻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앞뒤 재지 않고 타로 가게의 문을 열어보길 잘했다. 뭐든 발버둥 쳐봤으니 오늘 또 한 편의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오늘의 나’를 감싸 안으며 쓰다 보면 언젠가 ‘미래의 나’와 반드시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길에서 도망치지만 않는다면. 미래의 내가 오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흩날리는 낙엽을 밟으며 타로가게의 문을 열 때의 공기와, 완벽한 타인으로부터 듣는 응원의 말에 자꾸만 눈물이 차오르던 순간을. 벅찬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이 글을 쓰던 아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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