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딸이 오이소박이가 먹고 싶다고 합니다.
"엄마, 외할머니 오이소박이 진짜 맛있었는데..."
"그래, 엄마는 그 맛을 따라갈 수가 없어."
"할머니 배추김치도 엄청 맛있어, 칼칼하고 시원해."
"맞아, 난 김치가 자신 없더라. 할머니처럼 안돼." 하면서도
"오이소박이 간단해 만들어 줄게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 장 보러 가야겠네 하니
"엄마 컬*에 시킬게 엄마 무거워서 안돼." 평소에도 마트 들려 장을 봐오면 무거운데 들고 온다며 걱정하는 딸에게 이것저것 주문을 넣었습니다. 새벽에 문 앞으로 배송을 해주니 너무도 편한 세상에 살고 있어서 좋습니다. 대가족으로 살면서 제사 지낼 장을 볼 때마다 두 어깨가 빠지도록 장을 봐서 날랐던 생각이 납니다. 방학이면 세 딸이 출동을 해서 각자 장바구니를 한 개씩 들어주던 착한 딸들이 생각나기도 하네요^^
딸은 점심에 일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밤리단길을 산책하자고 했었는데, 제게 갑자기 일이 생겨 급히 처리해야 할 일로 예약한 레스토랑엔 다음에 가기로 취소, 오전에 서울에 나갔다 와서는 딸과 근처 중국 레스토랑에 가서 코스 정식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딸이 엄마에게 맛난 것을 먹게 하려고 부득부득 코스 요리를 먹겠다는 것입니다. 내일 어버이날인데 부득이하게 컨테이너에 물건을 실어야 해서 셀프 효도를 하기로 했다며, 사위는 본가에 가고 저와 시간을 보내는 딸이 기특하고 대견하기도 하면서 친정 엄마가 떠 올랐습니다.
어머니 보다도 전 아직 엄마라는 어감이 더 좋네요. 정감도 있고요.
엄마가 자주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뵈러 올라갔습니다.
토요일 올라간다고 했는데
연락도 안 드리고 봄비가 촉촉이 대지를 적시는 금요일 저녁, 늦게 엄마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깜짝 놀란 엄마!
"응~? 내일 온다더니?"
"하루라도 일찍 보려고 올라왔어요 ㅎㅎㅎ~"
말없이 반가운 표정만 보이시는 엄마.
오느라고 고생했다며 그 늦은 시간인데도 밥을 차려 주시겠다고
불편하신 몸을 움직이시는 것을 간신히 말려 앉혀 드리고 얘기부터 나눕니다.
"너 아플 때 한 번 가 보고 싶었는데 못 갔다."
"내가 오면 되는데 힘들게 왜 오세요.. 그래서 이렇게 왔잖아요."
하룻밤 함께 누워 자고 싶어서 조기 퇴근하고 서울로 향했던 것입니다.
엄마도 만나야 하고, 곧 러시아로 떠날 막내딸도 만나야 하는 일들이 순서를 정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이 나쁘시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고, 시간이 지나면 더 좋아지실 거라서 더 이상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심했어요.
엄마와 함께 잠을 자고 이야기 나누고, 차려주시는 구수한 된장찌개로 아침밥을 먹고 또 길을 나섰어요.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면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어서요.
그리고 막내딸에게 가서 함께 시간도 보내야 하니까요.
외손녀를 보고 싶어 하시는 엄마를 위해 막내를 데리고 다시 친정으로 가야 하는 일정이지요.
막내와 만나서 그동안 쌓였던 이야기를 풀고 함께 나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며 수다도 떨었습니다.
밤에는 근처 시장에 나가 구경도 하는데 바람이 세차서 다시 겨울이 온 줄 알았습니다.
새벽까진 비가 내리고, 아침엔 햇살이 눈부시게 청명한 봄날인데 갑자기 하늘이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제가 서울에 왔다고 환영인사를 하는지 흰 눈도 내려 주더군요.
아무튼 바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너무도 빨리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주일 아침 막내와 함께 근처 예배당에 다녀온 뒤,
애타게 기다리시며 "출발은 했냐" 시는 엄마의 전화를 받으며 영등포로 향했습니다.
엄마는 또 불편하신 몸으로 찰밥을 만들어 놓으시고, 겉절이를, 광어회와 막내가 좋아하는 생굴을 차려놓으시고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엄마의 정성스러운 상차림에 불효한 딸은 그저 맛나게 많이 먹는 길 밖에 없었습니다.
막내와 저는 평소에 먹던 양의 몇 배를 먹는다면서 맛있게 맛있게 먹었습니다.
밥을 먹고 나니 엄마는 또 보따리 보따리 싸주시는 것입니다.
막내에게도 찰밥과 겉절이를 싸주시고, 먼 길 가는 제게 또 그동안 못해주셨다면서 김치를 싸고, 깻잎김치, 짭짤한 장아찌를 담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편찮으시면서도 자식 위해 몸을 아끼시지 않는 어머니, 우리 어머니....
풍성하게 보자기 대신 캐리어에 담아 넣어 부산까지 끌고 왔습니다.
첫째와 둘째 딸은 " 외할머니 그러실 줄 알았다."면서 찰밥에 새김치 얹어서 장아찌와 함께 넉넉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저는 늘 염치없게 엄마한테 받기만 했습니다. 예전에 엄마에게 다녀와서 써 놓은 글이 있어 불러왔습니다. 어버이날에도 꼬박꼬박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지금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 그래서 살아 계실 때 잘하라 는 말들을 했던 모양입니다.
아침부터 열일을 했더니(서울 다녀오면 급 피곤해져요) 피곤해서 잠깐 쉬고 나서 오이소박이를 만들었습니다.
소금물을 끓여 붓는 저에게 딸은
"왜 물을 끓여서 부오요?"
"으응, 피클이나 깍두기 만들 때 소금을 넣어 끓인 물로 절이면 다 먹을 때까지 무르지 않고 아삭하게 먹을 수 있어서 그래." 딸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 곁에서 살림을 배우지 못했기에 제가 하는 일은 전부 궁금하고 낯선 일입니다.
다 만든 오이소박이를 먹으면서
"엄마, 왜 오이소박이라고 해요?"
"응 부추와 갖가지 양념을 넣어 만든 소를 오이 안에 넣기 때문에 그렇지"
"그렇구나." 하더니
"정말 맛있어요. 엄만 중국 음식이 소화 안됐다고 하시는데 난 또 이렇게 먹네~ ㅎㅎ"
딸이 맛있게 먹는 것만 보아도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부모는 그런 것인가 봅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게 마련이 이지만 대부분 저와 같은 생각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오이는 먹으면 그냥 몸에 좋다는 생각만 했으며 가끔 특유의 향 때문에 먹기를 꺼릴 때도 있지만 영양이 탁월하면서 칼로리는 적고, 영양소는 많다고 합니다.
300그램짜리 오이 한 개에는 비타민C 하루 권장량의 14%가 들어 있고, 비타민K는 62%, 마그네슘은 10%,
칼륨은 13%가 포함돼 있으며 반면에 지방은 없고 탄수화물이 11그램, 45칼로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또 옛날에는 사람들이 오뉴월 삼복 무더위 속에 먼길을 떠날 때 봇짐 속에 반드시 오이를 지니고 다니다가 뙤약볕 아래 갈증이 심하거나 더위를 먹으면 오이를 먹어 더위를 식혔는데, 이것은 오이에 열을 식혀 주는 효능이 있기 때문이며 뜨거운 물에 데었을 때에는 오이의 즙액을 상처에 바르면 효험이 있습니다. 예전에 산에 갔을 때 오이를 준비해 온 친구가 주는 오이를 먹었는데 입안이 말랐다가 갈증도 달아나고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항산화 작용, 칼륨과 마그네슘이 많아서 심장에 좋네요. 오이도 몸을 도와주는 효능이 참 많아서 오이 향이 싫어도 자주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 딸들이 어렸을 때 소풍이나 미술실기대회에 다녀오면 얼굴이 빨개졌을 때 냉각 작용을 하는 오이를 얇게 저며 얼굴에 붙여주면 뜨거웠던 얼굴이 시원해지며 다시 하얗게 돌아오는 마법 오이이기도 합니다.
오이소박이는 오이 속에 파, 마늘, 생강, 부추, 양파, 새우젓, 고춧가루를 한데 버무린 소를 넣어 익힌 김치라는 것 모두들 아시지요?
*photo by you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