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을 두 번 놓쳤습니다. 토요일마다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하면 핑계겠죠? 그래도 변명을 얹어보자면, 책방 쉬는 날이 일요일과 월요일이다 보니 토요일만 되면 너무 신이 납니다. 자연스레 마감은 잊어버리게 되죠. 후후
그렇지만 완전히 잊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이렇게 돌아왔잖아요.
지난해 11월,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두 건이나 진행했었는데요. 그때의 회포를 풀어볼까 합니다. 꽤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어요. 분량을 뽑아야 하는데 기억이 잘 따라줄는지요.
작년 말 '26', ‘이유’라는 이름으로 북커버 가방을 만들었습니다. 북커버는 북커버고, 가방은 가방인데 북커버 가방은 뭐냐고요? 북커버에 가방 끈을 연결해서, 이동시에도 책을 읽기에 용이하도록 만든 건데요. 오직 책에 진심인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가방입니다. 이렇게만 설명하면 너무 재미없으니, 꽤 거창한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던 프로젝트의 계기를 알려드릴게요.
저는 책 읽기 하면 바로 떠오르는 사람이 ‘이동진’ 평론가인데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모습을 꽤 존경하고 있습니다. 저도 책을 파는 사람이지만, 한 편으로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왜 책 읽기가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요. 다만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세계의 깊이가 남다르다고는 생각하고 있죠.
이동진 평론가님이 "어떻게 하면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하신 적이 있는데요. 그 말이 정말 인상 깊어서, 어딜 가나 책 이야기를 할 때마다 꺼내놓곤 해요.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손에 책이 들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고서는 손에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처럼 책을 계속 쥐고 있으면 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셨죠. 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 말을 듣고 바로 실천해 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서울에 출장을 간 일이 있었는데, 책을 항상 손에 쥐고 있었죠. 지하철을 탈 때도, 카페에 앉아 있을 때도 책과 함께 있다 보니 그걸 읽게 되더라고요. 며칠 지나지 않아서 읽으려 벼르고 있었던 책을 한 권 다 읽어냈습니다. 독서가 이렇게 재밌고 간편한 일이었다니요. 결코 어렵지 않았던, 책을 읽는 방법을 깨우쳤던 순간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야기가 더 있는데요. 지하철에서 인상 깊은 사람을 본 일이 있어요. 또 서울에서의 일입니다. 늘 그렇듯 출퇴근 시간이라 수많은 인파가 지하철 역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저는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었고, 그분은 올라가는 걸 타고 계셨는데요. 두 손에 책을 들고 그 속에 파묻힐 듯이 읽고 있었어요. 이동하는 내내 손에서 책을 떼지 않고 몰입해 있는 모습이 신비롭게까지 느껴졌죠. 주변 사람들은 멍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보고 있어서, 그분의 모습만 대조적으로 보였습니다. 정말이지 ‘책에 진심인 사람’이었어요. 그분이 만들어 내는 광경이 너무 근사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서론이 꽤 길어진 것 같은데요. 이 두 사람에게 얻은 영감을 통해, 언제든 손에 책을 들고 다닐 수 있는 도구를 만들자!라는 결심을 하게 되었어요. 요즘 사람들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저는 책을 정말 좋아하고, 책에 진심인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다른 모든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만을 위해서 무언가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