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해지는 일은 너무나 드물어서
사타구니에 욕창이 생길 정도로 글을 썼었다던, 한 소설가의 자기 고백을 읽었다. 누군가가 읽어줄 거라는, 글로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어떤 희망도 기대도 하기 어려웠을 시절에도 그렇게나 글을 썼었다는 고백에, 무언가가 간절해서 몰두하는 일은 저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 류시화의 책에서, 아픈 사람에게 돈을 주며 자신의 기도를 대신 빌어달라고 부탁한다는 한 부족의 문화를 읽은 적이 있다. 아픈 사람만큼 간절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마음을 갖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임을 새삼 깨닫는다. 노력할 수도, 억지로 만들어낼 수도 없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이 나에게도 드물게 있었다.
간절해서 이루어졌던 일은, 혼자서 노력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었다. 고시를 준비할 때의 일이다. 1년 넘게 합격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으며 최선을 다했고, 그만큼 절실하게 합격을 바랐다. 그리고 이루어졌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게 됐다.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난 후에, 누군가를 만났다. 그 사람의 애정을 갈구했고, 함께할 수 있기를 무척이나 바랐다. 그 마음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많이 원하고 기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지극히 바랐으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꽤 상처 받았던 것 같다고, 몇 해나 지나서도 생각한다. 어떤 슬픔은 너무 커서 더 이상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일을 두려워지게도 만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자다가도 일어나 엉엉 울기도 할 만큼 간곡했던 사람이었는 데.
이제 나에게는 무언가 절실한 것이 없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도, 독자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만큼의 능력을 갖춘 학자이고 싶다는 마음에도,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에도,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더 배우며 일하고 싶다는 마음에도, 강의를 하거나 책을 쓰며 무언가 생산을 하는 사람이고 싶다는 마음에도, 바다나 강을 볼 수 있는 넓은 서재를 갖춘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도, 내가 가진 목소리가 누군가를 위해 쓰였으면 하는 바람, 그 어디에도 간절함은 없다. 다만 '그랬으면 좋겠다' 정도의 소망과, 느리지만 바라는 것들을 향해 무언가를 하고 있는 일상뿐이랄까. 간절함이라는 게 얼마나 귀하게 나타나는 것인지를 알고 나면 지금 간절함을 가지며 사는 누군가가 부럽고, 과거에 무언가에나 누군가에게 그렇게나 간절했던 내가 그립기도 한 것이다.
간절해도, 간절하지 않아도 이루어질 일은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우리는 드물게, 아주 드물게, 왜 그렇게나 간절해지는 걸까. 수많은 사람들이 가졌을 수많은 종류의 간절함을 떠올린다. 간절함이 닿는 곳은 어디일까. 그 간절했던 마음은 어디로 간 걸까. 이루어지지는 않았더라도, 그 간절함들이 어딘가에는 도착했길 바랄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가 닿았길 바랄 뿐이다. 차마 다 떠나보내지 못한 마음은 아쉬움의 모습으로 여기에 남겨져 있지만, 보내진 나머지의 마음들은 가닿았으면 하는 곳에, 누군가에게, 잘 당도해서 흔적이라도 남겼기를. 우리는 드물게, 아주 드물게 간절해지니까. 그래서 비할 수 없이 소중한 마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