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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철현 Feb 25. 2021

다닥다닥 붙어있던 포스트잇

지나온 시점


다들 그렇듯 나에게도 사회 초년의 기억 대부분이 쓰라린 아픔으로 남아있다. 지나고 보면 그렇게까지 힘들어할 일이었나 싶지만, 당시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두 달만에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제과회사에 취직을 했다. 사실 운이 좋았다. 학점도 별로였던 내가 최종면접까지 붙을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순발력과 말발(?)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게 호기롭게 사회에 첫 발을 내딘 나는 곧바로 냉혹한 현실에 부딪혀 휘청거렸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렘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매 순간 나를 지치게 했다. 당연한 건데도 자꾸만 능수능란하게 일 처리를 하는 상사와 부족한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갉아먹었다. 이른 출근에 늦은 퇴근 또한 내 삶의 질을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회사 근처에 원룸형 아파트를 구해 혼자 살던 나는 외로움에 몸서리쳤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외로웠던 적이 있었나 싶었다. 밥 먹듯이 하던 야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정작 밥 해먹을 시간도 없어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던 나날들. 아침이 되면 숨이 턱 막히고 밤이면 눈을 감은 듯 컴컴한 무력감에 빠져버렸다.

일과 일의 반복인 평일이 싫어, 당시엔 여자 친구였던 아내를 만나는 주말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내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내 삶의 활력소였다. 둘이 함께 있는 주말에는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가끔 데이트 도중에 걸려오는 거래처 담당자의 전화가 분위기를 가라앉힐 때도 있었지만, 아내를 보면 금방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다. 퇴근길에는 쓸쓸하게만 느껴지던 밤거리도 둘이서 밤늦게 나와 산책을 하니 예전에 함께 강의를 들으러 가던 캠퍼스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우리의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야속한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또다시 우울해졌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미 내 얼굴에 다 쓰여있었다. 아내도 못내 발이 떨어지지 않는지, 떠나가는 버스 안에서 한시도 내게 눈을 떼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도저히 견디기 힘든 순간들이 찾아왔다. 그만 멈추고 싶었다.


그 무렵 우리는 주말이 되면 주말 부부처럼 함께 토요일과 일요일을 보냈는데, 월요일 아침이 되어 나는 먼저 일어나 출근을 했고 아내는 조금 더 있다가 나와서 내게 집에 간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날 저녁 어김없이 밤늦게 퇴근을 한 나는 녹초가 되어 방에 들어왔다. 그러고는 신발장 앞에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한참이 지나 정신을 차리고 구두를 벗으려고 몸을 돌리는데, 문득 문에 붙어있는 작은 종이들이 보였다.

현관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종이들은 다름 아닌 포스트잇이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또박또박 정성스러운 글씨로 써 내려간 포스트잇은 오늘인 월요일부터 우리가 다시 만날 토요일까지 일주일치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요일 요일마다 내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월요일이라 힘들었지? 바빠도 밥 꼭 챙겨 먹어'부터,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그리고 금요일까지 오늘도 수고했다 사랑한다 따듯한 로가 있었다.


그 순간 감정을 주체할 수 없던 나는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숨기지 못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인 게 미안했고, 이런 나라도 감싸 안아주는 마음이 고마워서 계속 눈물이 났다.


벌써 몇 년도 더 지난 일이라, 내용이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 아내가 건넨 위로는 여전히 내겐 큰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나중에 아내도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힘들어할 때 나는 똑같이 힘이 되어주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받은 위로를 언젠가 나누어줄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러므로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고 진심을 다해 위로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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