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롱디(장거리 연애)를 빛내주던 매일 그 밤
지나온 시점
나와 아내는 결혼 전까지 오 년이 넘는 기간을 롱디로 지냈다. CC였던 일 년 반 동안은 대학교가 방학을 하면 그 기간만 롱디가 되었지만, 내가 먼저 졸업을 하고 나서부턴 사 년 가까이를 쭉 롱디로 지내왔다. 우리는 "하늘이 두 쪽 나도 본다"는 일념으로 백팔십 킬로미터의 거리를 극복하며 거의 매주마다 만났다. 멀리 떨어져 지내다 보니 주말의 만남이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었다
장거리 커플인 우리에게 있어서 주말에 서로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이나 중요한 시간이 있었으니, 그것은 잠들기 전 밤 열 시부터 열한 시까지의 통화 시간이었다. 진부한 표현일지 몰라도 우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시간이면 각자의 침대에 기대어 전화기를 붙들었다. 가끔 친구들과의 술 약속이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면 한 시간 정도 지연이 될 때도 있었지만, 웬만해선 통화를 거르는 법은 없었다.
그날그날 밤마다 자기 전에 하던 통화는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외에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뢰를 쌓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남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지독하다, 혹은 대단하다 라며 칭찬과 빈정의 경계를 알 수 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예전에 일 때문에 친구 세 명과 숙소 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한겨울에 패딩을 입고 베란다에 나가 한 시간씩 전화를 했었다.
"귀찮지도 않냐?"
"오늘은 쉬자고 하지 그냥."
친구들의 입에서 이런 말들이 나오는 건 다반사였고, 심지어는 술을 마시다가도 내가 전화를 해야 해서 술자리가 와해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전화기를 들고 숙소 밖으로 나와 주차된 차 안에서 통화를 했다.
아무래도 매일 한 시간씩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보면 다투기도 하는데, 그런 과정들이 무조건 부정적이지만은 않았다. 서로 언쟁을 벌이다 보면 목소리가 올라가고 감정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그 안에서 상대가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에 민감한지 알게 되어 나중에는 더 조심할 수 있었다. 또한 오래 지나지 않아 화해하면서 다시금 우리의 관계를 돌아볼 수가 있었다.
"오빠는 이번에 이러이러해서 많이 서운했었어."
"미안해. 그 점은 앞으로도 조심할게. 나는 오빠가 이런 점은 고쳐줬으면 좋겠어."
"응. 이해해 줘서 고맙고, 나도 앞으로는 더 신경 쓸게."
대강 이런 식이었다.
백 번의 문자보다 열 번의 전화가 낫고 열 번의 전화보다도 한 번의 만남이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물론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직접 만나는 것보다 전화로 이야기하는 게 차분하게 서로의 진심을 전달할 때가 있듯이, 심사숙고한 문자 한 통에서 글자 하나하나에 커다란 진심이 묻어나듯, 우리는 여러 해 동안의 장거리 연애에서 진심을 다해 낮에는 문자를 나눴고 밤이면 전화 통화를 했다. 그래서 우리의 주말이 더욱 사랑스러웠던 게 아닐까 싶다.
결혼을 하고 같이 살게 되면서 이제는 밤이 되면 함께 침대에 누워 서로의 지나간 하루를 이야기하는 우리. 아직은 결혼 기간보다 연애 기간이 길어서인지 지금의 밤이 잠들기도 전부터 마치 꿈만 같다. 롱디였을 때는 얼마나 소원하던 밤이었나 싶어서다. 비록 그때의 그 밤에 열 시부터 전화기를 붙들고 열정을 불태우던 통화는 옛일 되었지만, 우리의 롱디를 빛내주던 매일 그 밤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우리의 밤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