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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윤 Oct 08. 2020

4. 이제 치유할까요?


아침이 달라졌어요.
새벽부터 골목 달구던
자동차 시동거는 소리가 사라졌어요.
베란다 창밖 앞 뒤를 차지하던
회색 아파트 건물이 보이지 않아요.
상가 건물 너머
도로 질주하던 차량의 굉음이 들리지 않아요.
마늘 찧는 소리, 못질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층간 소음이 잠들었어요.
문을 열면 켜켜이 날아들던 미세먼지가
자취를 감추었어요.

온갖 소음 사라지고 적요가 찾아온 아침
푸른 하늘 드높이 펼쳐지고
부드러운 초록의 능선 겹겹이 자리하고
누렇게 익어가는 논의 벼들과
장엄한 솔숲의 노래 나지막히 들려요
눈부신 정오의 햇살 아래
나뭇잎 스치는 바람이
살그머니 일렁이는 숲 속
나는 이제야
자연 속을 걷고. 마시고
함께 숨 쉬어요

++++++++++++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열었더니 대구에서 매일 마주하던 회색 아파트 건물 대신 초록의 산과, 벼가 익어가는 논 그리고 솔숲이 시야 가득 들어옵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자연의 품에 들어와 있는 것이 실감납니다. 날씨가 좋으니 동해 일출을 보러가도 되겠지만 피로가 덜 풀려 오전에는 쉬기로 하고 환기를 위해 창을 열었습니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들어오기에 빗자루로 방 청소를 쏜살같이 하고 부랴부랴 창문을 닫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느낀 좋은 점은 일체의 소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투브에서 기타연주곡을 골라 틀어놓았는데 어떤 소음도 훼방을 놓지 않습니다. 음악을 들으며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부자리에 다시 누웠습니다. 챙겨줄 누군가도 없고 나를 간섭할 사람 아무도 없는 혼자만의 시간을 자유롭게 누리기로 합니다. 겹친 피로를 풀려면 잠을 잘 자야하는데 밤마다 토막잠을 자고 있으니 낮잠이라도 자면서 보충해야합니다.

휴식 겸 누워 있다 한숨 자고 일어났더니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갔습니다. 점심을 먹고 가까운 옥계 바다로 가기위해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여성수련원에서 나와 산책로 표지판을 보고 그쪽 방향으로 접어드니 주변 소나무 숲을 한바퀴 도는 코스입니다. 세상에 태어나 이토록 넓은 면적의 소나무 군락지는 처음 접하는 것 같습니다. 우람한 소나무 아래 솔방울이 즐비합니다. 다시 원위치로  돌아와 바다쪽으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날씨가 화창하여  제 빛을 찾은 코발트빛 바다가 닮은 빛깔의 푸른 하늘을 반갑게 조우하고 있습니다.

그네 세 개가 나란히 해변에 서서 고즈넉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양산을 쓰고 간이의자에 앉아 밀려오는 파도를 감상하는 두 명의 여인네와 낚싯대를 드리운 남자 하나가 보입니다. 바다가 쉴 새 없이 파도를 몰아 모래톱을 때릴 때마다 천둥처럼 우렁찬 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집니다.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며 무작정 해변을 걸어가 봅니다.

"이 곳은 군사시설이니 철조망 바깥으로 나가주시겠습니까?"
파도 동영상을 찍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젊은 군인이 저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습니다.
"아, 네. 들어왔던 쪽으로 나갈게요."
황급히 걸음을 옮기며 가늠해보니 군사시설 안쪽 해변으로 100m가량 들어와 있었습니다. 밀려오는 파도에 홀려 해변을 마냥 걷다보니 군사시설 안으로 접어드는 줄도 몰랐습니다. 철조망 밖으로 나와 수천 수만의 얼굴로 모습을 바꾸는 파도의 표정을 다시 읽습니다. 파도의 속마음을 알듯도 전혀 모를 듯도 합니다.

어둑해질  때까지 해변에 서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파도치는 바다와 동행했습니다. 시 한 편 건지기를 소망하면서

숙소에서 보이는 풍경
솔숲 산책로
옥계해변의 파도

옥계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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