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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n 03. 2023

위로를 몰라

글러브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지방의 소도시가 됐지만 내가 막 터를 잡았던 12살 시절엔 시골 읍내였다. 그쯤 대원 아파트 근처에 18층짜리 고층 아파트가 새로 지어져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지은 지 1년도 안되어 명소로 유명해졌다. 무엇으로 유명했느냐 불행히도 백산 아파트의 옥상은 자살명소가 되어 3명이나 연달아 추락사를 다. 새 아파트에서 거주자도 아닌 사람들이 죽자 백산 아파트는 옥상문에 커다란 자물쇠를 달았다. 그 단단한 자물쇠가 채워지기 전 205호 아줌마의 막내아들이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몸을 던졌다.

  20대 초반의 그는 세상과 벽을 쌓고 살았다. 그래서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는데  솔직히 아줌마에게 막내아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후에 듣기론 지독한 우울증을 앓아 고등학교 졸업 후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고. 친구도 없고 이 세상 그 무엇에도 정을 주지 않더니 그렇게 훌쩍 떠났다고 이웃들은 안타까워했다.

  한 번씩 하교하며 계단을 오르면 205호 현관문 틈으로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듯 오열하는 아줌마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런 처절한 울음소리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웃 그 누구도 소음불만이 없었다. 어린 마음에 그 소리가 무서워 귀를 손으로 틀어막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계단을 오르내렸는데 기억에 오랫동안 아줌마의 울음소리는 계단을 채웠다.

  하루는 종부랑 같이 계단을 오르는데 늘 닫혀있던 205호 문이 활짝 열린 채 아줌마가 짐들을 정리하다 나와 동생을 보더니 불러 세웠다.

"야구 좋아해? 이거 가질래?"

아줌마는 종부에게 야구 글러브를 건네며 활짝 웃었다. 그 순간 무슨 마음이었는지 글러브를 받으려 손을 뻗는 종부 팔을 가로막으며,

"집에 있어요. 괜찮아요."

급히 종부를  쪽으로 끌어당기자 아줌마는 겸연쩍은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글러브를 거두었다. 집으로 들어서자 종부는 왜 있지도 않은 글러브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냐고 내게 화를 냈다. 그냥 그 말이 튀어나온걸..... 멋쩍게 어색한 미소를 짓던 아줌마의 얼굴이 온종일 떠올라 마음이 불편했다.

 12살의 어린아이는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을 몰랐다. 오랜만에 본 아줌마의 웃는 얼굴이 반가웠지만 종부가 그 글러브를 받아오는 건 싫었다. 만약 그때 글러브를 넙죽 받아 아파트 공터에서 나와 동생이 캐치볼 하는 모습을 아줌마가 창문 너머 봤다면 그랬다면 위로가 되었을까.

  아빠가 교통사고로 대학병원에서 두 달 넘게 입원했을 때 이웃들이 병문안을 왔었다. 205호 아줌마가 오이소박이며 멸치볶음, 깻잎김치를 만들어 오셨다. 아줌마 반찬으로 병원밥에 물려있던 아빠와 엄마는 맛있게 식사를 하고 그 마음에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았다. 

  위로는 아줌마의 밑반찬처럼 정을 느끼게 하는 별거 아닌 소소한 것이 아닐까. 나도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해 위로를 전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무심하지만 마음을 담아 상대가 부담을 느낄 새 없이 그의 두 손에 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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