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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Jun 19. 2023

눈탱이 밤탱이 206호 새댁

탈출은 지능순이라던데...

  206호에는 올망졸망 삼 형제를 둔 새댁이 살았다. 애가 셋이라 새댁은 아닌 것 같은데 이웃 모두 206호 세입자를 새댁이라 불렀다.  집 아이들은 다섯 살, 세 살, 두 살로 꾸러기들이었는데 세 아이는 늘 바지를 홀딱 벗고 고추를 덜렁이며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다 요의를 느끼면 아파트 계단에 오줌을 갈겼다. 그들과 같은 동에 산다는 죄로 집을 오갈 때면 계단에서 풍기는 찌린내를 맡아야 해서 불만이 많았다. 찌린내는 한숨 참으면 됐는데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206호 부부는 전쟁 같은 부부싸움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였다. 경찰도 자주 왔고 주폭이 따로 없는 아저씨의 횡포로 아파트는 매번 소란스러웠다. 그렇게 한바탕 싸우고 나면 다음날 206호 새댁은 눈탱이가 밤탱이가 돼서 동네를 돌아다녔다. 선글라스나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새댁은 자신을 안타깝게 보는 이웃의 시선을 즐기는 듯 해맑았다. 205호 아줌마는 특히나 옆집이라 새댁네를 챙겼는데 조심스레 맞고 살지 말고 이혼하는 게 어떠냐는 조언에 새댁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고. 이 말을 전해 들은 푼수 떼기 105호 아줌마는 새댁이 좀 모자란 팔푼이 같다고 이곳저곳에 말을 옮기고 다녔다. 팔푼이라니.. 그런 모욕적인 표현을 하다니.  

  그러던 어느 날 새댁이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집에 혼자뿐이라 경계하다 문을 열어줬는데

"학생 이거 버리는 거야?"

새댁은 우리 집 현관문 앞에 버리려고 놓아둔 386 컴퓨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네? 이거 버리려고 둔 거예요. 전원도 안 들어와요."

"괜찮아. 그럼 가져간다?"

새댁은 고장 난 386 컴퓨터 모니터와 키보드를 활짝 웃으며 덥석 들어 올렸다. 폐기딱지를 사서 버리려고 내놓았는데 저 망가진 오래된 컴퓨터를 어디다 쓰려는 건지 몰랐지만 그냥 가져가도록 했다.  105호 아줌마 말처럼 새댁은 정말 팔푼이인가. 우거지죽상을 하고 다녀도 부족한 상황에 남의 집 쓰레기나 좋다고 주워가고. 시퍼런 멍과 환한 웃음이 공존하는 그녀의 얼굴처럼  모순적이었다. 

  올망졸망 삼 형제는 종일 뭘 하며 보내는지 내가 하교 후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면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하의 실종 패션의 삼 형제는 아파트 놀이터에서 모래를 파고 놀아 손톱밑이 새까맣고 꼬질꼬질했다.  손으로  옷을 붙잡고 늘어질까 봐 멀리서 아이들이 보이면 사라질 때까지 주변을 맴돌다 집으로 들어섰다. 간혹 없는 줄 알고 1층에 들어서다 마주치면 삼 형제는 나를 따라 5층까지 졸졸 따라왔다. 도대체 애엄마는 뭘 하는 걸까. 206호 현관문은 늘 활짝 열려있었지만 중문에 가려져 집안을 볼 순 없었다.

  삼일에 한 번씩  난리가 나는 집구석인데 보름 넘게 잠잠했다. 그러고 보니 계단에서 찌린내도 안 나고 꼬질꼬질 삼 형제도 통 안 보이네?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언젠가 부부싸움으로 시끄러운 206호를 두고 아빠는 걱정스레 이런 말을 흘리듯 했다.

"저러다 큰 사달 나겠어. 누구 하나 죽어나가게 생겼네."

차마 그 집 문을 두드려볼 용기는 없었다.  엄마에게 혹시 206호에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봤더니,

"2주 전에 이사 갔어. 너 몰랐어? 알고 보니 맞을 때마다 병원 진단서 떼고 증거를 모아 이혼했대. 집 팔아서 애들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더라. 잘 됐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206호 새댁은 팔푼이도 모지리도 아니었다. 그녀가 시퍼런 밤탱이 눈을 하고도 왜 환하게 웃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지금쯤 하의실종 오줌싸개 삼 형제는 이십 대의 어엿한 청년들이 되었겠지. 세명의 든든한 보디가드를 둔 206호 새댁에게 어느 누가 감히 손지검을 할까? 그녀의 영리한 선택은 그 시절 내 이마를 탁 치게 만든 최고의 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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