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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속 Apr 03. 2023

핵인싸 미정이 엄마

그립습니다

  삼십 년 넘게 살아온 오래된 나의 연립주택이자 친정집인 대원아파트의(이름만 아파트) 최대 장점은 이웃이었다. 이웃집 숟가락 개수는 몰라도 서로 경조사나 김장을 도우며 정을 나눴다. 윗집이 시끄러우면 손자들이 놀러 왔구나. 고 녀석 뛰는 소릴 들으니 잘 크고 있네 하며 껄껄 웃어넘기는 정이 그곳엔 존재했다.

  낡은 아파트는 외관만 시간의 흐름을 비껴간 것이 아니었다. 과거에나 있었'이웃사촌'실로 더불어 살았다. 경비원도 두지 않고 동마다 요일별로 청소 당번을 맡았다. 바쁜 일로 청소를 못하면 벌금 오천 원을 냈고 그걸 포함해도 아파트 관리비는 사만 원을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모인 돈으론 5년에 한 번씩 아파트 도색을 했다. 회장도 뽑아 투명하게 돈을 관리했는데 분기마다 60 가구가 모두 모여 회의도 열었다. 회의 때마다 늘 큰 목소리로 의견을 주장한 이 글의 주인공 미정이 엄마가 이제 등장한다.

  그녀는 전형적인 뽀글이 파마에 기미 가득한 피부를 가진 시골 아줌마였다. 큰 목소리만큼이나 말도 많고 오지랖도 넓었다. 사사건건 이웃 모두에게 관심을 쏟을 만큼 정 많은 마당발로 험상궂은 인상을 가진 우리 아빠에게도 넉살을 떨 정도로 우리 동네 핵인싸였다. 우리 아빠만 보면

"봉기 오빠 이제 퇴근해요? 다음 회의땐 오빠도 나오세요." 웃으며 인사를 전하면 내성적인 극 I성향의 아빠는 얼굴이 뻘게져 선 그 자릴 후다닥 피하곤 했다. 아빠의 그런 반응이 재밌었는지 아줌마는 우리 아빠를 볼 때마다 큰소리로 "봉기 오빠"를 찾았다.

  우리 집 김장날엔 이른 아침부터 거실에 빨간 고무장갑을 연장처럼 착용한 미정이 아줌마가 었다. 두어 시간 배추 속을 넣어주곤 이제 306호 김장을 도와주러 간다며 사라졌다. 정작 본인 김장은 일주일 전에 혼자 해치우고선 그렇게 남의 집 일손을 도왔다.

  이웃을 돕는데 후했던 아줌마는 자신에겐 인색했다. 뽀글이 파마도 머리 손질 비용을 아끼기 위한 스타일이었고 피부를 뒤덮은 기미도 화장품 살 돈을 아껴 생긴 흔적이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식당일도 마다하지 않아 손가락 마디가 대나무처럼 굵었다. 그렇게 알뜰살뜰 아끼고 또 아끼는 것으로 아줌마는 참 유명했다.

  작년 여름, 영상통화 속 엄마의 표정이 어두운 어느 날이었다. 미정이가 친정살림까지 다 하느라 정신이 없다길래 왜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울먹이며 말했다.

"미정이 아줌마 돌아가셨어. 뺑소니 차에 치였대. 손도 못 쓰고 그렇게 갔어......"

멀리서 아빠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렸다.

"좋은 이가 허망하게 갔다. 마음이 안 좋다. 아파트가 동네가 텅 빈 것 같다."

반갑게 아는 체하던 아줌마의 인사에 도망가던 아빠가 참 슬프게 말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밤마실을 다녀오다 아파트 길 건너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에 음주운전 뺑소니를 당했다고. 다행히 뺑소니범은 붙잡혔고 합의금을 조율하고 있다고.....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참 아줌마다운 죽음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훌쩍 떠나버린 그녀. 박스째 뜯지 않은 새 냄비와 그릇들. 아껴서 몇 번 입지 못한 옷가지등 쓰지 않고 모셔엄마의 살림살이를 정리하며 미정이는 많이 울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의 연립, 아이들과 친정을 찾을 때면 계단을 오르는 소란스러운 발자국소리에 아줌마가 자기 집 현관문을 활짝 열며,

"지속이 친정 왔구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가. 어머나 애들이 인형이네." 하며 엄마보다도 먼저 반갑게 맞이해 주셨는데.....

  미정이 아줌마가 제주도 여행을 다고 생각해야겠다. 한 번도 못 가본 여행을 떠나셨다고. 그곳에서도 아줌마는 분명 특유의 친밀감으로 핵인싸가 되어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고 계실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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