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속 Jul 08. 2023

나의 대원 아파트

아파트계의 로제 파스타

  설비회사를 운영했던 부친 덕에 늘 새집에서 살았다. 설비와 새집이 무슨 연관이 있냐고요? 아빠는 다닥다닥 지어진 빌라의 설비를 하고 돈 대신 집 한 채를 받아왔다. 인기 없는 빌라 1층은 늘 우리 가족 차지였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  지어진 집에 유일한 입주자로 서너 달을 지내다 보면 이웃들이 생겨났다. 어린 시절에는 빌라여도 늘 새집에 살아서 우리 빌라 외관을 보며 참 잘 지어진 멋진 집이네라고 감탄하는 행인의 말에 으쓱하기도 했다.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던 아빠덕에 인천에서 빌라 서너 채를 가진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 엄마는 방문판매 고가 화장품을 사서 썼으며 종종 집 거실에 누워 판매원이 해주는 피부 마사지를 받았다.  나는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어린이 바이엘 2권을 채 배우지도 못 하고 도망치 듯 잘 지어진 빌라를 떠나 아빠의 고향으로 내려왔다.

  누군가와 언성을 높이며 통화하는 아빠와 불안한 눈빛의 엄마를 보며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하루아침에 낯선 시골로 이사를 왔는데 집안 사정이 나아지는커녕 부모님의 다툼만 잦았다. 그래도 시골에 지어진 신축 빌라라 깔끔해 불편 없이 지냈는데 아빠가 이 집도 경매로 넘어갔다며 이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경매가 뭐지. 왜 이렇게 이사를 자주 할까. 제발 한 집에서 오래오래 살았으면!

  두구두구 드디어 애증의 대원아파트. 90년에 준공된 두 동 60 가구의 나의 대원 아파트. 꼭대기 5층에 우리 가족이 자리를 잡았다. 아빠는 분명 잠깐 살 집이니 불편해도 참으라고 했는데 집에서 초중고는 물론 대학과 직장생활 심지어 두 딸을 낳도록 머물렀다. 한 집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소원이 왜 하필 이런 후진 집에서 이루어졌을까. 이래서 소원은 구체적이어야 하나? 27년 동안 우리 네 식구의 역사를 품은 나의 대원아파트.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을 비로소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금이 쩍쩍 난 외벽에 새파란 기와지붕이 한옥도 아니요. 양옥도 아닌 독특한 개성이 묻어 있던 그곳. 음식으로 치면 서양식 크림소스에  한국식 고추장을 섞은 로제소스와 견줄 그곳.  감아도 머릿속에 생생히 그려지는 모습, 냄새, 소리.

여러분,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특별히 초대할게요.

  태풍으로 기왓장이 날아가 슬레이트로 지붕을 보수공사 했다. 그래도 파란 지붕 색은 여전해 옛 감성을 잃진 않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대원아파트의 지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