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의미

노처녀 원장은 무엇? 편

by 이지속

지속의 세계관에서 노처녀 원장은 빌런이자 때론 애증의 대상이었다. 객관적으로 작은 얼굴에 웃을 때 반달이 되는 눈이 매력적인 사람으로 지속은 원장을 처음 보고 속으로 예쁘다고 생각했다. 누구든 원장의 웃는 모습을 보았다면 그리 생각했으리라. 한마디로 비주얼은 호감형이다. 그리고 우아하게 보이려 목소리는 낮추고 발음에는 힘을 줬는데 그런 모습도 사람으로 하여금 신뢰를 줬다. 왜 그녀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을까. 닭도 모가지를 비틀어 털을 뽑기 전엔 지렁이를 잡아 먹이는 법,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원장은 남자를 유독 좋아했다. 언젠가 중후한 외모의 중년의 치과의사가 성인반 수업을 들었는데 그를 남몰래 음흉하게 바라보던 원장이었다. 원어민을 붙잡곤 그의 신상을 캐묻더니 그가 기러기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원장실에서 특별히 수업을 듣게끔 해줬다. 개원이래 원장실에서 수업을 들은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게다가 치과의사가 수업을 듣는 날이면 원장은 높은 하이힐을 신고 한껏 치장을 한채 평소엔 보지도 않는 두꺼운 책을 펼쳐 읽으며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 지속은 그녀의 눈물겨운 노력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궁금했다. 과연 치과의사를 원장이 꼬실 수 있을까? 결과는 당연히 실패였다. 원장 말로는 자신이 말실수를 해서 그렇다는데 같이 판단해보자.

"지속쌤 내가 글쎄 그 의사 선생님한테 스피킹 테스트를 말한다는 걸 실수로 오랄 테스트라고 한 거 있죠. 날 어떻게 봤을까요? 내가 못 산다 정말!"

지속은 지금 말실수가 문제가 아니고 그가 기러기 아빠이기에 원장에게 관심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스피킹이든 오랄이든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이렇듯 오십 줄의 원장은 자신과 나이대가 맞는 남자만 보면 그가 설사 유부남이어도 전혀 게이치 않았다. 이 점이 지속과 가장 반하는 부분이었다. 유부남, 유부녀는 제3의 성이 아니던가? 이성으로 보아선 결코 안되는데 어떻게 그러지? 지속은 그렇기에 원장이 남자에 환장한다고 확신했다.

원장은 짝퉁 마니아였는데 그녀가 자신을 치장한, 사실상 모든 것이 가짜였다. 결혼을 안 했기에 보석다운 보석도 없었고 길거리 자판에서 파는 가짜 큐빅으로 자신을 과시했다. 루이뷔통 백도 가짜였는데 보세 옷가게에서 마네킹이 들고 있던 디피 상품을 흥정해 18만 원에 샀다고 자랑하던 그녀였다. 진짜는 사백만 원에 달하는 모델이었다. 지속은 그런 원장을 보며 저 여자에게 진짜는 뭐지? 설마 원장 실체도 짭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헌데 놀랍게도 모두가 원장의 물건을 진짜라고 생각했다. 한 학부모는 지속에게 원장님이 엄청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고 있던데 몇 캐럿인지 아는지 물었고 지속은 차마 삼만 원짜리 큐빅 반지라 말은 못 하고 모르겠다고만 했다. 한 강사는 지속에게 원장이 든 루이뷔통 백을 언급하며 천안 신세계백화점에서 사셨나 강남을 가셨나 다음에 같이 쇼핑하러 가자고 해야지 하는 걸 들으며, 보세 옷가게인데 백화점은 무슨 하며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지속 눈엔 저렴하고 천박한 스타일의 원장이 어째서 남들 눈에 진짜처럼 보이는지 혼란스러웠다.

진짜는 진짜로 뭘까? 생각해보니 언제나 짭을 사놓고 신나서 지속에게만 자랑하던 원장이었다. 다른 강사들을 붙잡고 그런 시답지 않은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속은 모르고 싶은 걸 알게 되고 몰라도 되는걸 혼자 알았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다고 지속은 생각했다. 원장과 공적인 관계만을 원했는데 외로운 원장은 아니었다. 새롭게 눈길을 끄는 남자가 생기거나 짝퉁을 사면 언제나 지속을 불러 잔뜩 신이 나 떠벌였다. 한땐 그런 원장이 귀여웠다. 여고생 같았다. 시월드와 헬 육아를 평생 모르고 살아온 원장은 시간의 흐름을 비켜간 듯했다. 그리고 잠시나마 그런 그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원장은 비호감이었다. 그래서 짝퉁으로 잔뜩 멋을 부리고 유부남들과 술을 마시러 나가는 원장의 뒤통수를 보며 묻고 싶었다.


"나한테 왜 그랬어요? 왜 필터 없이 나한테만 솔직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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