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방향성

내가 문제였다 편

by 이지속

지속은 자신이 불행한 이유가 나쁜 사람들 때문이라고 착각했다. 지속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짧은 글들을 쓰며 비로소 불행의 원인을 찾았다. 바로 인간 혐오증. 지속은 사람을 혐오했다. 대학원에서 마지막 한 학기 동안 짧은 기숙사 생활을 할 때도 룸메이드가 정말 싫었다. 방 한번 치우지도 않고 치장하고 나가는 꼴은 환멸이 날 정도였다. 룸메가 생리라도 하는 주간은 화장실 문을 열기 무서울 정도로 지속을 힘들게 했다. 신방과 대학원생이던 그녀는 졸업논문으로 파죽음이 되어 기숙사 침대에 쓰러져 잠들곤 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구겨진 검은 쓰레기 봉지같았다. 싫은 티를 팍팍 내며 보란 듯 룸메가 있을 때 달그락거리며 청소를 했는데 쉬기 위해 방에 온 룸메도 지속의 눈치를 보느라 아마 힘들었으리라. 이름도 기억 안나는 스쳐간 인연으로 끝나버린 지속이 생애 첫 룸메는 참 더러웠다.

노처녀 원장 학원으로 입사 전 한 달 정도 짧게 다녔던 영어학원이 있었는데 젊은 부부가 운영했다. 남자가 원장으로 지속과 같은 대학 출신이었으며 여섯 살 정도 위였고 여자는 부원장으로 지속보다 네 살이 많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여자 부원장은 오징어 지킴이 명예대원이었다. 남편이자 원장이 지속에게 수업 관련 설명을 할 때면 부원장은 자신의 수업 중에도 마커를 찾는다며 벌컥 상담실 문을 열었고, 자신과 지속이 마주 앉아 있을 때 원장이 자신의 옆자리가 아닌 지속의 옆자리에 앉을 땐 동공이 흔들렸다. 생각 없는 원장의 행동으로 지속도 부원장의 눈치를 봤다. 굳이 지속이 퇴근할 때 문구점에 간다며 집까지 지속을 태워다 준다는 원장의 과잉 친절은 모두를 힘들게 했다. 하루는 부원장이 지속을 조용히 불러 말하길, 학원에 편하게 하고 오라고 화장도 하지 말고 옷도 신경 쓰지 말고 대충 오란 뜻이었다. 눈치 빠른 지속은 부원장이 자신을 견제하고 있음을 느끼고 몹시 불쾌했다. 원장은 오징어도 아닌 주꾸미였다. 부원장에게나 지켜야 하는 존재지 지속의 눈엔 영 아니었다. 일을 도와주는 강사를 남편을 빼앗으러 온 꽃뱀 취급을 하는데 어찌 견디겠는가. 게다가 지속이 빈정이 상한 포인트가 있으니 바로 파인애플 주스. 학원 바로 위층에서 살림을 살았던 원장 부부는 근처 토스트 가게에서 늘 토스트와 과일주스를 사다 먹었다. 지속은 점심식사 후 출근을 했는데 자기들끼리만 먹는 게 민망했던지 파인애플 주스를 한잔씩 사다 줬다. 한두 번은 감사히 마셨는데 지켜보니 지들은 3천 원짜리 생과일 키위주스를 사서 마시고 지속은 싸구려 통조림 파인애플을 갈아 만든 천 원짜리 주스를 사다 주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안 사주는 게 낫지. 지속은 정말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여러 문제들로 한 달 만에 학원을 그만두며 지속은 킹 영어전문학원을 저주했다.(저주가 통했는지 원장 부부는 이혼하고 학원은 망해서 사라졌다)

후에 노처녀 원장 학원의 고인물이 된 지속은 신규 강사들 교육도 맡아했는데 젊은 강사들은 일을 바로 알아들어 속 썩을 일이 없었는데 중년의 강사들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이도 어린것한테 지적받으며 일을 배우는 게 스트레스였는지 가르쳐 놓으면 석 달을 넘기지 못했다. 두 번까지는 친절하게 설명했으나 세 번째가 되면 지속은 냉랭해졌다. 한 번씩 주말에도 모르는 걸 묻는 전화가 왔는데 지속은 지금 쌤한테 내가 월급을 받냐고 시도 때도 없이 매너 없이 왜 연락하냐고 난 모른다 하며 신경질을 내며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 꼭 늙은 강사는 조만간 학원을 관뒀다.

지속은 대학원과 언론사에서 어린것들에게 배척당하며 과거 자신이 중년 강사에게 했던 행동을 반성했다. 업보. 지속은 자신이 겪는 고통이 과거의 업보였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지속은 자신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생각했지만 그냥 못된 거였다. 대학원 룸메도 청소를 못하는 것이 미안했는지 지속에게 학식 카드를 주며 자신은 바빠서 못 먹으니 언니가 식사하세요 하며 건넸는데 지속은 거절했다. 세 번 정도 카드를 주려했는데 지속은 매번 거절했다. 지금 같아선 받아서 맛있게 학식을 먹고 룸메의 책상까지 빛나게 닦아주었겠지만.

지속은 유하지 못하고 인정이 없었으며 한 마디로 못된 년이었다. 나쁜 지속에게 나쁜 인간들이 꼬이는 건 똥에 똥파리가 꼬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속은 이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려면 지속이 달라져 이기심을 버려야 했다. 만물을 사랑하는 연습이 필요했다. 허나 노력해도 인간들이 징그럽게 싫은 걸 어쩌냐고. 이 병엔 약이 없었다. 지속은 차선책으로 포커페이스를 연습했다. 눈으로 쌍욕을 할지언정 싫어도 싫은 티를 안내는 연습을, 분노해도 꾹꾹 억누르는 연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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