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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우먼 Oct 25. 2022

부부 이야기

매년 다른 결혼기념일



첫 신혼집에서 프러포즈를 받은 날


 



 가을, 그리고 곧 11월이 되면 결혼기념일이 다가온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볕이 따사로운 이 좋은 계절에 우리 부부도 결혼을 했다. 벌써 11년 차. 참 신기하게 1주년 때, 2주년 때.. 10주년 때..  매년 맞는 기념일의 느낌은 조금씩 달랐다. 첫 기념일 때는 사실 남편의 실수로 우리 부부는 힘든 일을 겪고 있을 때였다. 결혼하고 바로 겪은 이 일로 나는 지칠 대로 지쳐 기뻐야 할 첫 기념일이 별로 기쁘지 않았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여자 같았다. 그래서 난 결심을 한다. 헤어지기로..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고 헤어지지 않았을 테지만 그때는 정말 그러고 싶었다. 그만큼 인생을 앞으로 헤쳐나갈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 출근을 하고 유독 속이 안 좋은 나는 번뜩 임신테스트기를 사기로 했고 간이 검사를 해보았다. 두 줄이 나왔다. 


'아니야, 더 정확해보자'라고 하여 바로 직장 근처 산부인과로 향했다. 당시 대학가 근처 대학병원에서 근무했었는데 산부인과엔 온통 대학생뿐이었다.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아무 생각이 안 났다. 임신이 맞다고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간호사가 혹시 원하지 않는 임신이냐고 물어볼 정도니 표정이 꽤 심각했나 보다. 

 

 저녁에 밖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초음파 사진을 보여줬다. 남편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감정 표현이 서툴다. 

나는 내 뱃속에 나의 생명을 품고서, 그 생명의 반의 몫이 있는 남편을 앞에 두고 헤어지자고 말할 결심을 조용히 덮어버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헤어짐을 막으시려고 주신 생명이라고 확신했었다. 의심이 없었다. 그것이 첫 번째 결혼기념일의 기억이다.


 하지만 곧 그 생명은 다시 하늘로 갔다. 유산이 되었다. 정기 검진 날 아이의 심장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 그날은 남편이 우는 것을 두 번째로 본 날이었다. 

얼마 뒤 다시 임신을 했다. 직장도 그만두고 태교에 전념을 다했다. 우연히 배운 미싱에 취미를 붙여 이것저것 만들었다. 몇 가지 천으로 필요한 것들이 뚝딱 만들어지니 신기했다. 주로 소품을 만들었다. 가방, 파우치, 덮개 등..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이의 옷을 만들면서 아이의 탄생을 기다렸다. 기쁨의 나날이었다.

그 사이 남편은 지방으로 취직을 결심하고 연수원에 들어갔다. 이때 우리는 첫 주말 부부를 경험했다. 그래서 두 번째 결혼기념일에는 떨어져 있었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는 그리움에 섞인 그런 날이었다. 


 곧 11주년..  작년 10주년 기념일 때는 보통 둘만의 여행을 가거나 좀 특별하게 보내는 게 보통인데 우리는 친정식구들과 다 같이 근처 펜션을 잡아 여행을 갔었다. 10주년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낯간지러운걸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동생네 부부가 곧 튀니지로 이민을 가게 되는 상황이 되어서 그전에 날 잡아서 겸사겸사 여행을 오게 되었다. 남편은 그래도 기념일 장식을 하려고 풍선이며 이것저것 준비했지만 어린 조카들이 다 뜯어놓아 기대한 축하 시간을 놓쳐서 좀 속상해했던 것 같았다. 아내와 오붓하게 보내지 못하고 처가 식구들과 보내게 해서 살짝 미안한 감정과 고마운 감정이 들었었다.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남편이 있는 지방에 갔던 크리스마스 즈음

 



 11년 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결혼할 당시만 해도 이렇게 롤러코스터 같은 나날을 보내게 될 거라 1%도 생각지 못했다. 이런 예상치 못한 무수히 많은 날들을 통해서 남편과 나는 연애할 때는 매력적으로 보였던 서로 다른 모습들이 이제는 서로에게 단점으로 보이게 되고 실망을 하고 서로를 힘들게 하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다가도 다시 마음을 잡고 손을 잡으면 내 안에 뾰족했던 부분들이 깎였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를 닮은 아이들이 색을 칠하면 우리만의 색으로 칠한 하트가 만들어진다. 


 이번 기념일에도 딱히 어떤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원래 매사에 계획을 세워야 하는 나였는데 계획을 세우기 싫어하는 남편을 만나 중간이 되었다. 또 남편도 나를 만나 어쩔 땐 갑자기 근사한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계획이 있건 아니건 아이들과 즐거운 날이 될 것이고 하루하루가 예쁜 하트가 되겠지! 꼭 예쁘지 않더라도 예쁜 색을 가진 아이들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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