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3일 화요일)
냄새가 안 나… 향수 뚜껑을 열고 코에 갖다 대봤는데 아무 느낌이 없어.
방문 너머로 남편이 말했다. 정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향수병을 코에 대고 몇 초 못 버틸 것이다.
냄새가 안 난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식탁으로 가서 디퓨저 병에 꽂혀있는 스틱을 통째로 뽑아 들고 코에 갖다 대어 보았다. 스틱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몇 개의 스틱만 뽑아 들어도 라벤더 향이 훅하고 코를 찌르곤 했었었다. 그런데 아무런 향이 나지 않았다. 나는 바로 부엌 서랍에 넣어 놓은 디퓨저용 오일들을 꺼냈다. 라벤더, 오렌지, 페퍼민트 오일이 담겨 있는 작은 병의 뚜껑을 차례대로 열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향의 차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후각이 사라진 것을…
언제부터였을까…
놀라웠다. 후각이 사라진 것보다 그동안 후각이 상실되었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했다는 사실이 더 그랬다.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쓰레기통에서 냄새가 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버리다 보니 단 하루라도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으면 냄새가 진동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두 번, 적어도 자기 전에는 쓰레기통을 꼭 비워왔었다. 그런데 자가격리 기간 내내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쓰레기통을 열 때에도, 부엌과 바로 붙어있는 마루 소파에서 잠을 잘 때에도, 한 번도 냄새로 불편한 적이 없었다. 그랬다. 그동안 불편함이 없었던 것은 내가 후각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몰랐을까... 나의 둔감함에 대한 일종의 변호를 하자면, 나의 미각이 후각의 빈자리를 너무도 잘 채워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입맛을 잃은 적이 없었다. 후각은 미각에 영향을 주는데 그간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어서 후각에 이상이 생겼을 거라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다.
후각 상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후각 상실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후각 상실이 꽤 흔한 코로나 19 후유증임을 알았다. 특히 젊은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고 다시 후각을 찾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3주, 최대 9개월 이상으로 보고되고 있었다.
후각이 집을 나갔다.
언제쯤 돌아올까? 그동안 후각이 집을 비운 줄도 몰랐으면서, 빈자리로 인한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도 못했으면서 후각 상실을 인지하고 나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내게 당연하게 주어진 것으로 여겼던 뭔가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니 우울함이 찾아왔다.
남편과 나는 둘 다 코로나에 걸렸지만 그 증상은 확연히 달랐다. 나는 두통, 열, 오한을 하루 이틀 앓은 후 모든 증상이 사라졌고, 남편은 오직 기침만 했다. 우리 둘에게 나타난 유일한 공통 증상은 후각 상실이었다. 그러므로 후각 상실이 코로나를 구분하는 확실한 증상이 될 거라 생각했다.
아이들을 불러 앉혔다. 에센셜 오일의 커버가 보이지 않도록 오일병을 손으로 감싼 뒤 아이들에게 향을 맡게 하고 무슨 향인지 물었다.
페퍼민트, 오렌지, 라벤더...
아이들은 정확히 향을 구분했다.
마음이 놓였다.
Image by Christine Sponchia from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