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물리학으로 본 세상
미립자를 쏠 수 있는 장치로 두 개의 슬릿이 있는 벽에 전자를 쐈습니다. 당시엔 입자로 알고 있었던 전자이기에 슬릿을 통과한 전자만이 그대로 직진하여 입자의 운동처럼 결국 두 줄이 표현될 거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여러 줄무늬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를 보고는 전자가 두 개로 쪼개지거나 파동의 운동을 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나타날 수 없다고 했죠. 그래서 이 과정을 관찰하기로 합니다.
관찰 결과는 모두를 소름 돋게 했습니다. 실험 내용을 관찰하느냐 안 하느냐만 바꿨을 뿐인데, 이 전자가 처음 예상했던 것과 같이 입자처럼 운동을 한 결과 두 줄로 표현된 것입니다.
분명 파동형 운동을 한 것을 이미 증명해냈는데, 그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 줄무늬로 나타났던 수 많은 전자들이 돌파할 확률 중, 단 두 줄이 통과하는 결과만이 관찰자의 세계에 표현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이는 후일에 생긴 양자역학에서의 '아무리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사건이라 해도, 발생 확률이 '0'이 아닌 이상 반드시 일어난다'는 물리학적 아이디어에 기초합니다. 이 현상은 우리의 세상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물질이 확률적으로 이리저리, 여기저기에 자유분방하게 멋대로 존재합니다. 양자역학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건, 놀랍게도 세상은 우리가 상상한 대로, 생각한 대로 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중 슬릿 실험을 본 슈뢰딩거라는 한 과학자가 양자역학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한 실험인데요, 직접 한 실험은 아니지만 사고실험인데 안이 보이지 않는 상자에 고양이, 방사능 계측기에 방사능 물질을 넣어 둡니다. 이 방사능 물질이 붕괴할 확률은 반반입니다. 방사능 물질이 붕괴하면 방사능 계측기에서 전류가 발생하여, 기계장치가 작동되고, 기계장치가 독이 든 약병을 깨뜨리게 됩니다. 따라서 고양이는 50%확률로 독에 중독되어 죽게 되는거죠.
단순하게 확률만을 보면 반반이지만, 이를 양자역학적으로 봤을 때에는 관찰하기 전 고양이가 죽거나 살아있는 상태 둘 다를 동시에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슈뢰딩거는
"현실에서 전자가 이중성을 갖게 되면 동시에 두 가지 상태를 가진 고양이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상태는 존재하지 않으니 양자역학은 틀린 것이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관찰할때 고양이는 중첩된 상태가 아닌 살아있거나 죽은 상태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상자를 여는 과정이 관찰인지, 아니면 인과관계로 연결된 상자 속 일련의 과정이 관찰인지는 모호합니다. 하지만 양자역학으로 봤을 때에는 다른 여러 확률의 상태를 동시에 가진다는 그 자체가 본질이라고 하는거죠.
'뜬금없이 양자역학을 왜 설명하는거냐?'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실 내용은 상상의 세계를 흔들어 놓습니다. 위 내용을 더 알기 쉽게 얘기하자면, 관측하는 순간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 각각의 상태를 가져간 세상으로 두 갈래로 나눠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직접 상자에 들어가서 확인해보면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할 수 있지 않냐?'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비슷한 사고실험을 했습니다.
제가 랜덤으로 총알이 발사되는 총을 들고 있습니다. 공중에 쏜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입니다.
탕 철컥 철컥 탕 탕 철컥 탕 철컥 철컥 철컥
당연히 러시안 룰렛처럼 랜덤하게 발사되겠죠.
하지만 이 총을 제 머리에 겨냥하고 쏜다면, 즉 양자역학에서 주장하는대로 된다면 제게 일어날 상황은 아마 다음과 같을것입니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철컥
'이게 무슨 말이야?' 할 수 있지만 정말 말도 안 되지만 제가 살 수 있는 확률이 0.00001%라도 있다면 이 세상에서 저는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확률상 죽은 상태, 산 상태 둘 다를 가져야 하는데 과학자가 말하길, '인간은 죽은 상태를 느낄 수 없으니까' 아무리 0에 가까운 적은 확률이라도 살게 되는 그 결과만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기에 제 세상에서의 '저'는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의 세계에서 저는 확률 싸움에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각자의 세상이 있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죽더라도 내 세상의 나는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 '내 세상에서 죽은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에서 멀쩡히 살아있을 수도 있다.' 모든 선택은 스스로 하는 겁니다. 세상 단 하나뿐인 자신의 세계에서 말이에요.
혹시 모르죠. 만약 정말 그렇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면 좋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린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 영향력을 이 세상에 널리 퍼트려야 한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