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yverse Oct 13. 2020

서울 박이 은둔생활

동거 에필로그

영화로 영어공부를 할 만큼 영화 보는 취미가 각별한 나는 같은 영화라도 좋아하는 영화면 백 번도 볼 수 있다. 내가 거의 백 번쯤 반복해서 본 영화 중 하나는 나 말고도 팬덤이 강했던 트와일라이트 시리즈이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 트와일라이트의 감성과 색감이 난 참 좋다. 여성 감독이 만든 첫 번째 트와일라이트는 감성뿐 아니라 스토리도 블록버스터스럽지 않게 디테일이 강하고 섬세하다. 그중 결혼 후 유독 생각이 나는 디테일이 있다면 바로 벨라와 벨라의 엄마와의 관계일 것이다. 에드워드를 만나고 그의 정체를 알아차림과 동시에 뱀파이어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랑에 빠진 벨라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뱀파이어가 되기를 소원하게 된다. 에드워드조차도 말리는 벨라의 선택은 그녀에게 일상적이었던 모든 것들이 바뀔 것이라는 전제의 상황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그와 관련된 씬들이 스토리가 전개되는 동안 계속 펼쳐지게 된다. 그중 인상에 남고 지금 내 상황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씬이 있다면 벨라가 재혼한 엄마와 주말을 함께 하러 가 에드워드가 햇빛을 피해 다른 방에 있는 동안 엄마와 일광욕을 즐기며 이야기를 하는 씬일 것이다. 에드워드를 처음 만나 그의 정체를 모르는 벨라의 엄마는 옆방에 혼자 있는 에드워드를 의식하며 딸의 행복을 걱정한다. 그리고 곧 대학교로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할 딸을 위해 한 땀 한 땀 직접 꽤어 만든 퀼트 이불을 선물한다. 뱀파이어가 되면 이 세상에서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고 그렇게 되면 죽은 당시 나이로 계속 이승에 남게 되어 대학교로의 진학은 할 수 없으며, 동물피를 찾아 숲 속으로 사냥을 나가야 해서 밤에 잠을 자지 않게 될 벨라는 본인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고 이불을 선물해 준 엄마에게 미안해하며 아무 말 없이 진한 포옹을 하고 고맙다고 말한다.

트와일라이트의 벨라가 뱀파이어로서의 삶을 선택했다면 서울 박이인 나는 동거의 삶을 선택했다. 백그라운드 챕터에서 언급했듯 G백화점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가끔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동거에 대해 논의하곤 했었다. 21세기 서울서 사는 2-30대들에게 동거는 안 흔한 일이 절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거를 선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실을 부모님에게 숨기고 살고 있었고, 보통 부모님과 같은 지역에 살지 않을 경우 동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직장까지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는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던 나는 역시 차로 30분 정도 걸리는 남편의 집에서 동거를 하고 있었다. 숨기지도 않고 대놓고 얼떨결에 집을 나온 나는 행동 먼저 하고 이유는 나중에 생각하는 내가 한 대표적인 결정 중 하나였다. 점점 높아져만가는 서울의 집세를 생각할 때 한 커플이 같은 집에 살면서 각자 내야 할 집세를 하나로 줄이고 그것조차 나눠 낼 수 있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동거를 하는 경우가 굉장히 실용적인 케이스라고 한다면, 나 같은 경우는 따로 집세를 내고 있지도 않았고 남편도 따로 집세를 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실용적인 케이스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굳이 따지고 보자면 데이트 후 집에 돌아가는 택시값 아끼는 정도라고나 할까. 그래서 결국 20대 후반에 선택한 나의 동거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때늦은 반항’이 되었고, 내 입장에서는 ‘때늦은 자유를 향한 몸부림’이 되었다. 하지만 말만 거창한 자유를 향한 나의 몸부림은 나에게 결코 무한한 자유를 안겨주지 않았고, 서울에서 동거 상태로 남편과 함께 지낸 6개월 동안 나는 거의 홀로 은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나름 사회적으로 활발했던 나는 직장에서 만난 거래처 지인, 직장 동료 등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직장 근처 동네를 거닐다 보면 길에서 아는 사람을 두세 번은 마주치기 십상이었다. 오히려 그래서일까, 동거를 선택하고나서부터 나는 내가 그동안 너무나도 자유로웠던 도시 안에서 내 스스로를 가두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지만 주변 지인들이나 오래된 친구들이 나의 선택을 이해하거나 내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비난을 당할까 두려웠고, 그동안 쌓아온 나름의 좋은 이미지를 해칠까 두려웠다. 그래서 길 가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예전만큼 반갑게 인사하지 못했고, 결국은 웬만하면 아는 사람을 안 만나기 위해 연락을 끊은 경우가 허다했다. 아주 친한 친구들에게도 남자 친구가 생겨서 연애하느라 바빠서 못 만나는 척을 했고, 그나마 만나게 돼도 긴 얘기는 피했다.

최근 브런치 북에 연재를 시작하면서 카카오톡에 홍보를 하다 보니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하고 지내던 고등학교 베프에게 카톡이 왔다. 친구는 내 글을 읽고 내 생각이 나서 안부차 연락을 했었다. 친구의 카톡을 받고 생각해보니 내가 한참 동거를 시작해 은둔생활을 하는 동안 그 친구가 결혼식을 했던 게 생각이 났다. 동거 초반 서로에 대해 알아가느라 다툼도 많았고 눈물 많은 내가 많이 울기도 했던 그 당시, 남편과 친구의 결혼식에 같이 갔던 게 생각이 났다. 첫 만남에서부터 눈에 띄었던 남편의 브라운 가죽 구두 굽이 많이 달아 그날 내가 구둣방에 가 굽갈이를 해다 줬었다. 하필이면 구둣방 아저씨가 굽 높낮이를 잘못 맞춰 짝짝이로 구두를 찾아온 나에게 불만족스럼을 표했던 남편은 그날 내가 입은 미니 원피스에도 엄청 토를 달았었다. 결혼식 자리에 너무 짧은 스커트를 입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래저래 불편한 마음으로 결혼식장에 도착한 우리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분위기가 싸한 우리에게 친구들도 많은 말을 시키지 못했다. 안 그래도 기분이 안 좋았던 남편이 평상시 멋없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던 한국식 결혼식 자리에서 기분이 좋을 턱이 없었다. 친구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예의상 음식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시늉만 내던 남편을 끌고 재빨리 식장을 나오면서 이제 나의 모든 삶은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상황과 생각을 이제는 자주 보지도 않는 친구들에게 털어놓기는 더더욱 힘들 것이라고 무언중에 깨달았던 생각도 났다. 어쩌면 그래서 이렇게 빙빙 돌려 글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친구들이 이 글을 읽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지만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남편이랑도 많이 다퉈 내 나름의 맘고생을 하게 되면서 오히려 더 많은 대화를 하게 된 사람은 엄마였다. 그 전에도 워낙 같이 돌아다니길 좋아하던 모녀였지만, 나의 이유 없는 반항에 상처를 받은 엄마가 본인도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며 내 얘기를 들어줬던 만큼 본인의 마음도 헤아려주고 부모로서의 입장도 생각해줬음 했었던 엄마의 말들을 나는 많이 들어주진 못했다. 이 글을 빌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 이유는 내가 모질게 굴고자 해서라기 보다는 남편의 주장을 뛰어넘어야 가능했던 우리 부모님의 입장 해명을 내가 잘하지 못해서였다. 내가 집을 나오고 며칠이 지나자 부모님과 나는 서로의 카톡을 좀 더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다시 끊겼던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서 하루는 부모님이 다 집에 계실 시간에 내가 집에 찾아갔었다. 말없이 집을 뛰쳐나온 뒤 처음으로 돌아간 날이었다. 평상시 보수적이시고 그러다 보니 자녀들에게 경외심을 심어주었던 아빠와 맘이 너무 아파서 나를 보면 한없이 울 것만 같았던 엄마를 생각하며 익숙한 집 거실로 들어갔다. 엄마 아빠는 마치 설날 세배라도 받는 노부부처럼 소파에 나를 맞대면하고 앉아계셨고, 같이 살면서 함께 편히 앉아 티브이를 보던 소파에서 맞대면을 받은 나는 공손히 두 손을 모으고 반대편에 앉았다. 그때까지 입장을 밝힌 적이 없던 아빠가 의외로 먼저 입을 여셨다. 내심 두려움에 떨고 있던 나는 아빠의 다음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인생을 사는 동안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그로 인한 사회적 충격을 받게 되는데, 그런 충격을 완화시켜주는 것이 사회적인 의식이라고 아빤 말했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가족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따로 살게 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고 또 새로운 충격에 노출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면서 그 충격을 완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인 행위가 결혼식이라고 아빠는 말했다. 그런데 내가 만약 그 결혼식을 건너뛰고 먼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자 한다면 엄마, 아빠는 말리진 않을 거지만 만약 그 변화로 인해 내가 너무 힘들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다고 말했다.

우선 거의 30 평생을 사는 동안 아빠가 엄청 화내고 나를 혼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침착한 건 처음 봤지만, 그보다 나를 모르는 사람으로 내칠 수도 있다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했던 나에게는 너무나도 의외의 발언이었다. 물론 굳이 반박을 하자면 동거를 한다는 것이 굳이 내가 동거남이랑 결혼을 한다는 뜻도 아니었고, 정작 만난 지 얼마 안 된 우리 둘은 결혼에 대해 서로 얘기해본 적도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왠지 아빠의 앞뒤로 꽉꽉 채워진 지언에 반박할 한 마디를 내뱉기가 힘들었다. 오로지 내가 힘들면 언제든 돌아와도 된다는 아빠의 마지막 말이 너무 따뜻했고, 내가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는 사실이 감동이었다. 그래서 긴 말은 하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아빠에게 그렇게 말해 주어 무한 감사하다고 말했다. 반면 별말을 덧붙이지 않고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던 엄마에게는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다.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이렇게 행동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그러나 저러나 마음을 너무 아파하는 엄마에겐 정말 미안하다고.

반면 우리 집에서는 이렇게 드라마를 찍고 있는 동안 남편의 프랑스 부모님 집에서는 한국인 여자 친구로 소개받은 나를 호기심 있게 받아들였다. 동거를 시작하고 한 달 정도 후 남편이 프랑스 출장을 가게 되어 나도 그 참에 함께 놀러 가 남편의 부모님을 처음으로 뵙게 되었는데, 동거라는 단어를 굳이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튼 같이 살고 있다는 우리의 시추에이션에 대해 드라마틱한 반응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한 커플이 같이 살아보지 않고는 서로에 대해 잘 알 수 없다고 말하며 한국에서는 의례 결혼 전 같이 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걱정을 표했다. 그리고 내가 짧은 불어로 설명한 한국에서의 동거에 대한 시선에 대해 의아함을 표현했다.    

프랑스에는 동거에 대해 다른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는  두 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이전 챕터에서도 영국에 대해 언급했든 연애 및 결혼이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고, 한 커플이 내리는 결정은 자유라는 사상이 굉장히 강해서이고, 또 하나는 불어로 팍스라고 하는 동거 법 때문이었다. 프랑스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습관처럼 내 권리를 논하는 경우가 많다.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고, 단순히 뭘 해도 되니 안되니에 대해 말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항상 나에게 권리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언급하는 프랑스인들은 그만큼 자신의 권리에 대해 명확한 주장을 하고, 그에 수반된 혜택을 제대로 누리고자 노력한다. 아마 팍스를 하는 커플들은 동거를 하더라도 법적으로 가질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합법적으로 부여받고자 팍스를 선택한 것일 것이다. 예를 들어 결혼식을 올리고 하객을 초대해 사회적인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통상적인 결혼에 비해 팍스를 선택하는 커플들은 보통 식을 올리거나 대외적인 행사를 치르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한 커플과 거의 동일한 커플로서의 권리를 부여받으며 경제적으로도 여러 세금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각자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팍스를 선택하는 사람들 중 많은 커플은 경제적인 이유에서 이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경제적 상황이 사회적 잣대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동거를 선택하더라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선택이 되며,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더라도 선택에 의해하게 된다. 뭐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내가 봐온 케이스들은 그러했다. 그렇다 보니 동거를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으며, 동거든 결혼이든 철저한 개인의 선택이라고 여기고,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혼전 동거를 하는 게 낫다는 생각 등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다 쓰고 보니 그렇지 않은 나라 출신 사람으로서 내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이 긴 설명을 한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실지로 결혼을 결정해 식을 올리기 전까지 거의 5년 정도 동거를 먼저 했던 사람으로서 그저 나 나름의 동거에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동거, 결혼을 불문하고 한 커플의 앞길은 철저히 그 커플에게 달려있고, 그 누구도 어떻게 하는 것이 낫고 옳다고 혹은 안 좋고 틀렸다고 말해줄 수는 없다고. 모든 커플은 그 둘만의 관계가 있고 스토리가 있어 소중한 것 같다. 아무리 일상적이고 누구나 다 겪는 일이어도 그 커플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일일수 있고, 특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커플의 아름다운 스토리가 나에게 귀감이 될 순 있지만 내 커플이 꼭 그렇게 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고, 내 커플에게 아름다운 스토리라고 해서 꼭 남에게 귀감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랑을 한다는 것은 때로는 사회적인 관습과 관련이 있지 않으며, 사회적인 관습에 반하는 사랑이 나에겐 합리적이라면 내 커플에 신념을 갖고 그 사랑에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일들이 생길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던 것 같다.


 *더 많은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the_young_heiress

문제의 결혼식
남편 부모님을 처음 만났던 프랑스 여행
신용산 근처 한강에서


이전 03화 남산에서 신용산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