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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yverse Oct 09. 2020

백그라운드

작가에 대한 이해를 원하신다면

사실 소셜미디어에 나의 조금 특별한 사랑 이야기에 대해 포스팅도 많이 하고 사진도 많이 올렸지만, 생각해보면 연예인도 아니고 지인이 엄청 많은 사람도 아닌 내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좋아요'를 받기에는 턱없이 나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음을 느낀다. 그래서 적어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는 조금이나마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조금 써 보려 한다.

85년 소띠로 1녀 1남의 나름 장녀로 태어난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빠의 직장 발령으로 인해 영어권 국가인 영국에서 3년간 최초 외국 생활을 경험했다. 아마 그때 이후로 교포는 아니지만 외국인이나 외국어, 외국 생활에 대한 울렁증이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변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귀국 후 한국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외국 생활을 하지 않았던 친구들 눈에 사차원스러워 보이는 행동을 하거나 어설픈 한국어를 구사하기도 했다. 이렇게 밖에서 보이는 부분 말고도 실제로 나는 틀에 박혀 보이거나 전형적 이어 보이는 사고방식들에 대한 불만과 이를 탈피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했다. 그래서 나름 유해 보이고 인내심이 많아 보일 수 있는 성격에 비해 고집을 부려서라도 내가 믿음이 가지 않는 사상이나 사회적 관습, 유행은 절대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런 모습이 보편적인 관습을 중요시하는 부모님 눈에는 반항적이고 의외여 보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도 한국에서 좋다는 대학을 겨우 졸업하고 한국에서 좋다는 대기업에 취직을 해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것이 나름 부모님이나 사회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합하려고 애쓴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는 나의 마지막 한국 사회 적응이 아니었을까 싶다. 왜냐하면 결국 5년 정도의 직장 생활을 힘겹게 마치고 그 직장에서 알게 된 코쟁이와 사랑에 빠져 그 이후부터는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만한 행동들만 하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유치원 때부터 원하는 옷을 입지 않으면 유치원 버스를 탑승하지 않고, 초등학교 때 거울 앞에서 1시간씩 직접 머리를 묶어가며 원하는 스타일이 연출되어야만 문밖에 나섰던 나는, 영국에 가서야 이런 고집이 패션이라는 분야에 부합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패션 관련 전공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패션 관련 분야에 종사할 것이라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되었고, 그 꿈이 현실이 되어 첫 직장으로 너무 감사하게도 압구정에 위치한 G백화점의 뷰티 및 명품 바이어로 골인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현실이지만 패션 업계 관련 종사자들 중에는 박봉인 사람도 많고 야근이 허다한 사람도 많았는데, 운이 좋게도 백화점 바이어는 패션업계 피라미드 중에서는 나름 중상급 월급을 받으며 대기업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패션업계답지 않은 포지션이었다. 그래서 나는 연애도 미뤄가고, 개인 사생활도 미뤄가며 5년간 첫 직장에 혼신을 다했고, 20대 나이에 대상 포진까지 걸려가면서까지 바이어로서 경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업무를 해냈다. 지금까지도 내가 아는 패션 업계의 생태와 수많은 브랜드에 대한 지식은 다 첫 직장에서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5년 차가 되자 직장 내의 포지션 및 내 열정에 있어서 이래저래 고비는 찾아왔고, 결국 개인적인 욕심과 직장 내에서 느꼈던 한계에 부딪혀 그렇게도 올인하던 첫 직장에 사표를 내게 되었다. 지금 생각했을 때 그때 그냥 있었더라면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엄청 궁금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부터 난 거의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아마도 그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이 나의 조금 특별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직장에 올인하던 3년 차 시절, G백화점에는 H카드사에서 마케팅으로 히트를 쳤던 임원진이 CEO로 임용되었는데, 그는 첫 프로젝트로 백화점에 유입인구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식품관의 레노베이션을 계획했다. 이태리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뉴욕에서도 쉽게 만나볼 수 있는 고급 이태리 식자재 백화점 및 레스토랑 콘셉트인 'EATALY'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는 새로운 식품관은 GOURMET494라는 이름으로 재탄생되었고, 그 안에 입점된 여러 레스토랑 및 베이커리 코너 중 G백화점의 모기업에서 수입한 프랑스 베이커리 브랜드인 ERIC KAYSER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새로운 위치에 재오픈하게 되었다. 마케팅의 귀재였던 새 CEO는 식품관 오픈에 앞서 기자 회견을 진행했고, 기자 회견 현장에는 각 레스토랑 및 베이커리를 대표하는 셰프 및 오너들이 배경에 앉아있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그 현장에 나도 있었는데, 얼핏 나는 기억으로는 지금 나의 남편이자 그 당시 ERICKAYSER 대표 셰프로 프랑스에서 발령을 받아 와 있던 로망도 그 배경 중 한 명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비주얼에 대한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그 당시를 기억하지만, 무의식 중에 로망을 엄청 눈여겨보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는 그 당시 난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에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뭐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쳐다본다고 그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고 급 연애를 하게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항상 하고 산건 아니었지만, 여하튼 업무 중 외국인을 꽤 많이 접했던 나로서, 진짜 외국인은 외국에서 살면서 한국으로 출장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한국에 와서 살면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은 '언젠간 돌아갈 사람'이라고 분류했었다. 그리고 한 술 더 떠서 그런 사람은 혹시라도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언젠간 본국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런 복잡한 관계에 빠져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혹시라도 연애를 하게 되더라도 나 자신이 '국제적 미아'가 될 수 있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제는 선진국 반열에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을 내 본토로 삼고 열심히 여행을 하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괜히 외국에 나가서 살 생각을 하다가 비자 문제에 빠져들어 맨날 불안한 삶을 살고, 직업도 제대로 못 갖고, 경제적으로 불안하게 사는 여성이 되고 싶지 않은 생각도 강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자 회견을 목격한 2년 후, '언젠간 돌아갈 사람'과 결국 사랑에 빠졌고, 그 후 여러 국가를 바꿔가며 생활하는 국제 미아 커플이 되었으며, 항상 비자 문제에 빠져들어 불안한 삶을 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직업도 제대로 못 갖고, 경제적으로 불안한 삶을 사는 여성이 되었다.

2년 후란 내가 직장을 그만두던 그 해. 그 당시 한창 외국이나 국내 할 것 없이 패션 업계에는 '블로거'라는 직종이 새롭게 커지고 있을 때였다. 한창 직장의 힘으로 패션쇼와 이벤트를 섭렵하고 다니던 나는, 직장에서 요구되는 행동 양식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패션 블로거로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워낙 사람이나 현상의 장점만 보는 것이 단점인 나는, 프리랜서의 일종인 블로거의 불안정한 수입은 보지 못하고 온갖 이벤트에 불려 다니며 바이어로서도 앉아보지 못한 패션쇼 프론트로에 앉을 수도 있다는 화려한 면모만 눈에 보였다. 더군다나 일반인에서 유명 블로거가 되면 거의 연예인급 초청을 받고 다니는 해외 파워 블로거들을 보며, 나도 나만의 스타일로 승부하면 그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또 한 번의 막연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막연한 꿈은 거의 6년이 지난 지금도 이루지 못했고, 아직도 가끔은 어떻게 하면 막연함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불안정한 수입은 블로거로 업종 변경을 시도한 2달 차에 이미 최대의 문젯거리가 되었고, 고정적인 월급을 5년 동안 받아오면서 커진 씀씀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재까지도 패션 블로거로서 재정적인 성공이 있기 전에 수입이 있는 상태까지 이르는 것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지 못한 채, 블로깅 내지는 패션 화보 촬영이 이젠 내 삶의 취미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 시도가 아무런 소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블로거로 전향하고자 하는 초반에 내가 스타일링한 화보들에 직접 #모델이 되어 몇 번의 패션 화보 촬영을 진행했는데, 그 당시 촬영했던 프로필 사진을 로망이 링크드인이라는 취업 관련 소셜미디어에서 접하고 나에게 연락을 취했다. G사에 근무하는 동안 업무차 몇 번 방문했던 ERIC KAYSER 매장에서 만난 적이 있었던 로망은, 나중에 사귀게 되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다른 한국인 직장동료에 비해 '활발해' 보였던 내 모습이 엄청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본인은 첫 외국 생활을 하고 있었던 차, 그 당시 그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불어를 잘하지 못해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던 나와 제대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에 우리의 업무적 첫 만남 이후 시사 영어 YBM 새벽반에 1년간 다녔다고 했다. 그때쯤 나는 블로거로 전향 후 링크드인 프로필을 화보스러운 사진과 내 블로그 이름으로 업데이트를 해 놨었는데, 그걸 로망이 보게 되었고, 아마도 영어가 좀 유창해져서 자신감이 붙었는지 내 화보 사진이 멋있다며 뜬금없이 포토그래퍼를 소개해달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메시지를 받는 나는 회사도 그만뒀겠다, 외국인이지만 나름 잘생긴 프랑스 셰프한테 디엠도 받았겠다 기분이 업되어 그럼 만나서 얘기하자고 답을 했고, 그렇게 우리는 신촌 #아트레온에 위치한 스타벅스에서 첫 사적인 만남을 갖게 되었다.

블로거를 준비하며 모델 활동도 조금 했던 나는 그 당시 인생 최저 몸무게에 보이시한 쇼트커트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고, 나름 신경 쓰고 나온 그는 주방에서 입고 있던 셰프 복장을 벗고 패션업계 종사자가 봤을 때 나름 '옷 좀 입을 줄 아는' 스타일로 입고 나왔다. 더블브레스트 네이비 핀 스트라이프 슈트 재킷 안에 블랙 캐시미어 목폴라와 리바이스 오리지널 청바지를 코디 해 입은 후, 일부러 맞춘 건진 알 수 없지만 손목시계 가죽 스트랩과 구두를 브라운 컬러로 포인트를 주었었다. 솔직히 옷을 잘 입을 거라는 기대는 전혀 안 했었는데 (예전에 매장에서 근무 후 가죽 재킷을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입었던 스웨이드 가죽 재킷 스타일은 좀 노해 보였었다), 의외로 옷을 신경 쓴 듯 안 쓴 듯 잘 입고 나와 놀랐고, 게다가 가까이서 보니 큰 키에 떡 버러 진 어깨가 더블브레스트 핀 스트라이프 슈트 재킷으로 더욱 강조돼 보여 엄청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명품 시계 바이어를 했던 사람으로서 시계에 관심이 있거나 신경 써서 시계 스트랩과 슈즈 컬러를 코디할 줄 아는 남성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다는 걸 아는 나로서, 그의 스타일링 센스에 좀 놀랐던 것도 사실이다. 이랬든 저랬든 그의 '사적인' 첫인상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반면 그는 아직까지도 그날 내가 촬영 때문에 가지고 다니던 미니마우스 모자를 가지고 놀리지만, 우리는 아마도 그 날 이미 서로에게 반했던 것 같다.

우리의 나름 밀레니얼스러운 만남의 매개체가 된 나의 화보 사진을 제외하고는, 사실 로망은 경제적 수입원이 되지 않고 겉만 번지르르해 보이는 허용된 꿈이라고 블로거를 직업이라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이에 맞대응해 나도 블로거로서 실질적인 결과를 보이려고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했으나, 우리가 함께한 그 후 6년 동안 나는 결국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직장과 블로깅을 병행해서 해야만 했다. 패션업계와 비주얼적인 크리에이티브를 좋아하는 나로서 블로깅은 아직도 이루지 못한, 이루고자 하는 꿈의 일환이다. 그래서 로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다이내믹한 라이프스타일과 해외생활을 토대로 계속 콘텐츠를 만들어보고자 항상 노력하고는 있다. 하지만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의 성격은 조금 다르다. 물론 소셜 미디어나 블로깅처럼 나의 일상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함으로써 남들이 알아줬으면, 어떻게 보면 인정해줬으면 하는 기본적은 스토리텔링의 욕구는 같을 수 있다. 하지만 주로 영어로 해왔던 기타 소셜 미디어는 말 그대로 '보여주기'용이었다면 이번에는 한글로 글을 씀으로써 나조차도 깨닫지 못했던 내 인생의 여러 면모를 고찰하고, 차분히 되돌려보려는 의도도 다분하다. 물론 혼자 보고 반성하려면 내 일기장에 손글씨로 썼겠지만, 우리 엄마를 비롯해 한글로 썼을 경우 내 속내를 더 잘 이해해줄 여러 사람들이 읽어봐 줬음 하는 흑심도 그득 담겨있다. 그래서 거짓으로 숨겨서 말할 의도는 전혀 없다. 되려 좀 더 선정적일지라도 있는 그대로를 최대한 객관적이고 담백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예정이다. 오늘도 어설픈 내 한글 글쓰기를 이마만큼이나 읽어준 당신에게 감사한다.


 * 많은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the_young_heiress

문제의 링크드인 프로필 사진. 시계와 쥬얼리는 쇼파드 협찬.
쿠킹클래스를 진행중인 쉐프차림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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