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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yverse Oct 13. 2020

남산에서 신용산까지

새로운 시작

백그라운드를 안 읽어 보았다면 그 챕터를 읽고 이번 글을 읽기를 권장한다. 이번 챕터는 소위 말해 좀 야한 챕터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선 보통 터부시 되는 것들에 대해 언급하게 될 것이고, 터부시 되는 이유는 아마도 성적인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가족은 영국 런던 외곽으로 이사를 갔다. 88 올림픽 때부터 K방송국 기자 생활을 하던 아빠가 특파원 발령이 나면서 하게 된 첫 외국 생활이었다. 영국에 도착해 히드로 공항에서 새로운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어린 마음에 굳게 다짐했던 게 생각난다. 이제 내 세상이 펼쳐질 거니까 이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을 거라고. 대체 무슨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상상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지만 나름 외국 생활에 대한 기대가 충만했던 건 분명하다. 한국에선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았던 엄청난 일들이 펼쳐질 것만 같은 그런 기대랄까. 글쎄 그 나이엔 무슨 일들이 엄청난 일들이었을까. 귀 뚫는 것? 남자 친구와 입술에 키스하는 것? 항상 원했던 모델로 길거리 캐스팅되는 것? 이 정도를 엄청난 일들로 여기지 않았었나 싶다. 하지만 생각보다 신나는 일들만 있는 건 아니었던 영국 생활에서 신선한 충격이었던 것이 있다면 아마도 성이나 성적인 표현에 대한 미디어에의 노출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말이 되면 부부동반 모임이 잦았던 부모님은 나보다 3살 어린 내 동생과 나를 볼 베이비시터를 고용하거나 내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턴 내가 동생을 돌보게 하고 저녁 외출을 하곤 하셨다. 둘이만 있을 때 동생은 나보다 먼저 잠들곤 했는데 그럴 때면 난 혼자 티브이를 보며 부모님이 돌아오시길 기다렸다. 혼자 자유롭게 티브이 채널을 돌릴 수 있을 때 내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던 채널은 그 당시만 해도 엄청 핫하던 MTV였다. 한창 캔디를 부르며 떼쓰는 아기를 연상하게 하는 춤을 추던 HOT가 히트를 치고 있던 한국의 가요 씬에 비해 영국 MTV를 통해 접한 힙합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는 충격 그 자체였다. 영어를 아직 완벽하게 알아듣진 못했지만 분간은 가는 엄청난 욕이 들어간 랩을 하며 모피를 두른 남성 힙합 아티스트들이 꼭 불이 나고 있는 고속도로 앞에 세워진 차 앞에서 서서 섹시한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과 춤을 췄다. 하긴 춤을 추면 얌전한 편이었고, 실내 씬일 경우 보통 침실에서 그 섹시한 여자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행동들을 해댔다. 중1이면 만으로 14살인데 18금 영화도 본 적 없는 여자애가 성행위에 대해 뭘 알았겠는가. 비밀 번호도 없이 그냥 볼 수 있는 채널들을 돌리다 보면 나오는 MTV에서 접한 흔하디 흔한 성적인 뮤비는 나에게 그야말로 비주얼적인 충격이었다. 그리고 잘 알지 못했던 성에 대해 많은 호기심을 자아내었다.

이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외국 생활 당시 캐주얼하게 갖게 된 성적인 호기심이 향후 현지인들에겐 터부시 되지 않았던 혼전 관계, 혼전 출산, 동거, 무결혼 출산에 대해 이해하는데 나름의 밑거름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 당시 최고의 공적 커플이었던 데이비드 베컴과 빅토리아 베컴은 첫째 아기인 브루클린을 출산하고 한참 뒤 결혼식을 올렸다. 브루클린이 밖에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세 가족의 파파라치 사진이 각종 타블로이드 첫 페이지를 장식할 때 내가 들었던 유일한 생각은 '여기 사람들은 결혼도 안 했는데 애가 있는 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네'였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결혼을 하고 그다음에 아기를 낳아 가정을 이룬다고 이해하고 있었던 가족의 형성 과정과 비교해 봤을 때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순서였다. 공적인 커플뿐만 아니라 주변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헷갈리게 했다. 중학교 당시 하루 일과가 끝날 때 학교로 나를 픽업하러 와서 함께 우리 집에 가서 과외 교습을 해 주셨던 플루트 선생님은 나를 가르치는 동안 임신 중이셨다. 그래서 어느 날은 선생님께 남편에 대해 뭔가를 물어보았다. 선생님의 답변은 예상치 않은 남자 친구에 대한 답변이었다. 그래서 그럼 결혼도 안 했는데 당신은 임신을 먼저 한건 가요, 그럴 경우 결혼은 언제 하나요 등등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머리에 너무 많이 떠올랐지만 선생님의 태도에서 대충 내 무언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 커플로 함께 산다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결혼을 한다는 것, 그리고 커플이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각자 별개의 문제이고 꼭 서로 연관관계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 생각을 한 이후부터는 한 커플에 관련된 모든 결정은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고, 그렇게 여기는 순간 커플이 내리는 결정은 자유로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영국은 다른 유럽 국가나 미국에 비해서도 좀 더 심하게 자유로운 편이어서 고등학교가 함께 있던 내 여중에는 하굣길에 학교를 중퇴하고 유모차를 끌고 친구들을 만나러 온 애들이 허다했다. 반면 나중에 뉴욕에 살면서 알게 된 현실이지만 청교도의 영향이 있는 미국이 오히려 동거나 혼전 순결에 대해 보수적인 편이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겪게 된 프랑스는 그 둘에 비해 또 다른 세계였다.

스타벅스에서 사적인 만남을 통해 첫눈에 반한 후 셰프인 남편의 식성에 맞춰 우리는 서울의 각종 힙한 레스토랑을 누비고 다니며 꿀 떨어지는 데이트를 시작했다. 감정 표현이 순수한 남편은 한국의 정서에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서든 애기처럼 나에게 애정 표현을 했다. 처음엔 주변 눈이 의식되어 나도 어쩔 줄을 몰랐지만, 몇 번 겪고 나서부터는 남편이 외국 사람이니 사람들도 이해하겠거니 하고 신경을 덜 쓰기 시작했다. 또한 데이트 비용을 나누느니, 더치를 하느니, 남자가 내느니 등 한국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주로 하곤 했던 데이트 비용에 관련해서도 남편과 논의하려고 몇 번 시도를 해봤으나 남편의 식성에 맞춰간 고급 레스토랑은 툭하면 십만 원을 넘기기 십상이어서 나중에는 논의를 포기하고 남편이 내게 놔뒀다. 데이트를 시작한 게 1월 말이었으니 한 세 번째 데이트가 됐을 때쯤엔 이미 밸런타인데이가 되어있었다. 남편은 호텔 식당에서 밸런타인데이 디너를 하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남편 친구 셰프가 있는 남산 하얏트에서 만나기로 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2달이 채 안돼 경제란에 쪼들리던 나는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고, 해외 명품 시계 수입 및 전개가 주종목인 회사에서 해외 사업 개발 업무를 맡게 되었었다. 여태까지 패턴을 지켜봤을 때 이십만 원이 족히 넘는 코스 디너 비용을 남편이 낼 것이 뻔했고, 그래서 나는 회사 직원 혜택을 활용해 남편에게 선물을 준비하기로 계획했다. 그래서 첫 데이트 때 눈에 띄었던 가죽 시계를 떠올려 남편이 좋아할 것 같은 스타일의 브라운 가죽 시계를 좋은 가격에 구매했다. 그 시계가 내가 남편에게 한 첫 선물이었는데, 그 후 나는 계속 명품 시계 업계에 있게 되어 이런저런 시계 선물을 많이 했지만 남편은 아직도 내가 처음으로 선물했던 그 시계를 가장 좋아한다.


남산에서 맛있는 코스 요리를 먹고, 추웠지만 얘기를 나누며 언덕에서 내려오는 동안 남편이 기분이 한창 좋아져 그 당시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던 씨가 클럽에 가자고 제안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제법 늦은 시간이었지만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그러자고 하고 우리는 씨가 클럽에 가서 더 얘기를 나눴다. 밤은 점점 깊어갔고, 난 머릿속으로 택시를 타고 집에 가야 할지 지하철을 타고 갈 수 있을지 시간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은 별생각 없이 또 다른 제안을 했다. 택시를 타고 본인의 아파트에 가서 같이 영화를 보자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20대 후반이었는데 서울에서만 살아온 우리 가족이 내가 아무리 직장을 다닌다고 해도 혼자 자취를 하게 내버려 둘 터가 없었다. 미혼인 나는 부모님과 같이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었고, 데이트도 좋고 남자 친구가 생긴 것도 부모님이 기뻐해 주실 일이었지만 새벽까지 놀다가 너무 늦게 들어간다고 반가워하실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난 또 분위기를 깨기 싫었고, 무엇보다 나름 쿨 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남편의 제안에 흔쾌히 오케이 했다. 그래서 남산에서 우리는 택시를 타고 신용산에 있는 남편 아파트로 가 둘 다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를 보기 시작했다. 왠지 좋아하는 영화가 비슷하다는 것도 기분 좋은 우연이었고, 특히나 영화에 나오는 음악이 좋아 자기 전에 항상 틀어놓은다고 하는 남편이 감수성 풍부한 남자 같아 보여서 귀엽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본인은 자기 집이고, 마침 자장가를 듣고 있어서 그런지 이미 새벽 1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라 남편은 쿨쿨 잠이 들기 시작해했다. 1시 10분이 되자 나는 마음속으로 패닉 하기 시작했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에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러다 잠에 들던 남편이 갑자기 잠에서 깼고, 조용히 짐을 챙겨 갈 때 인사하고 가려던 나에게 갑자기 봉창 뚜드리는듯한 소리를 했는데 그 말인즉슨 "넌 다 큰 어른인데 왜 부모님 때문에 일찍 돌아가야 해? 네가 더 있고 싶으면 더 있다 가던가, 자고 가면 안돼?"였다. 조용히 나가려던 마음에 갑작스러운 혼란이 와 뭐라 답변할지 말문이 막혔고, 무엇보다 남편의 말이 뭐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어서 반박할 말이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내 입장에선 설령 그렇게 한다고 치더라도 내일 아침 출근을 해야 하는데 여기서 자고 가면 입던 옷을 똑같이 입고 다시 출근할 수도 없었고 화장품도 안 챙겨 왔으니 절대 자고 갈 순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같이 살고 있는 부모님이 내가 숫처녀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외간 남자 친구 집에서 말없이 자고 온다는 행동은 용납할리 없었다. 더군다나 요 며칠 데이트가 끝나고 계속 새벽 1-2시에 들어가 엄마가 밤에 시끄럽다고 12시 전에 다녀달라고 부탁 까지 한 바 있었다. 이래저래 난감했지만 우선 밤이 깊었고, 긴 얘기를 하긴 애매해서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우선 가야겠다고 하고 나와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나름 순간은 모면했지만, 왠지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을 건드린듯한 느낌이었다.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화적 차이가 문제가 되어 앞으로 계속 만나기 힘들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집에 돌아가서도 이미 늦은 시간이라 번호키로 되어있던 문 여는 소리에 부모님이 깨시지 않도록 조심조심 들어가 그날 밤을 마무리했다.

서울에서 산지 2년 차인 남편은 그 당시 나름 핫하다는 서울의 구석구석을 나름 잘 알고 있었다. 7시에 퇴근하던 나보다 먼저 퇴근하던 남편과 나는 매일 저녁을 거의 같이 먹었고, 저녁 먹고 커피나 칵테일 한 잔 하고 나면 밤 10시, 11시를 넘기기 일수였다. 집에 갈 때가 되면 아쉬움이 역력한 남편은 버릇처럼 본인 집에 가서 영화를 보자고 하기 일수였고, 그럼 남편은 항상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들기 십상이었다. 밸런타인데이의 레퍼토리는 그렇게 계속 반복되어 나는 집에 또 1-2시에 돌아오기 일수였고, 몇 번 하다 보니 나도 다음날 아침 출근해야 하는 일과가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밸런타인데이에 남편이 했던 말에 대한 답을 난 아직 하지 않은 상태였고, 남편은 밤에 내가 주섬주섬 짐을 챙겨 집에 갈 채비를 할 때마다 도대체 20대 후반인 내가 왜 아무런 결정권이 없냐는 식의 표정을 지었다. 보수적인 부모님에게 큰 반항 없이 살아온 나는 남편에게 응해주기 난처했지만, 뭔가 반응하지 않으면 우리 관계에도 무리가 생길 것 같은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이제 만 6년이 지난 지금, 그 이후 내가 내렸던 결정의 경과에 대해 아주 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억이 나는 부분은 어느 날 낮에 나는 한 일주일치 입을 옷을 급히 싸서 남편의 아파트로 향했던 기억이 나고, 웬일인지 내가 집에 없는 게 외출이 아니고 때늦은 가출이란 걸 이해한 부모님은 그 날 오후 17통의 부재중 전화를 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남동생이 15통의 부재중 전화를 하다 음성 사서함에 메시지를 남겼는데 그 내용인즉슨 엄마 아빠가 나와 연락이 되지 않아 엄청 걱정을 하고 계시고, 본인도 만약 내가 가출한 게 맞다면 엄청 놀랍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장녀로서 집안에 이런 불상사를 일으킬 수 있으며, 동생인 본인에게는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생각이나 해봤냐는 정도. 그 메시지를 들으며 나와 남편은 집 앞 E마트에서 그날 저녁거리를 찾아 장을 보고 있었고, 남편은 연어 스테이크를 하기로 마음먹어 곁들일 아스파라거스 중 가장 싱싱한 놈을 고르느라 한창 정신이 없었다. 나는 마트도 정신이 없었고 순간적으로 엄청 폭발적으로 돌변해 버린 동생의 분노 게이지에도 약간 어리둥절해 이래저래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차분하려고 노력했고, 남편과 나는 한 십만 원어치 장을 잔뜩 봐 각자 양손에 봉투 한개씩을 들고 낑낑대며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은 프라이팬을 아주 뜨겁게 데워 속은 덜 익고 겉은 바삭한 연어 스테이크와 끓는 물에 데쳐서 버터에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저녁으로 요리했고, 테이블이 없었던 원룸 스튜디오에서 우리는 침대를 테이블 삼아 저녁을 먹었다.

굉장히 일상적 이어 보이는 저녁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좁은 침대에서 평상시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초저녁 내내 울려대던 내 핸드폰은 엄청난 양의 부재중 전화를 뒤로 한채 조용해지기 시작했고, 그 날 저녁은 그렇게 무사히 지나갔다.


 *더 많은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the_young_hei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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