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이야기
오늘은 갑작스러운 변수가 많았다. 가스레인지에 점화가 되지 않고 3분 짜장을 돌리려 하다보니 랩비닐도 없었다. 할 수 없이 A, B님과 같이 나가서 랩도 사고 조리된 햄김치찌개를 사서 들어왔다. 오는 길에 내일이 장애인의 날인데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만인선언문(https://equalityact.kr/.../%EB%A7%8C%EC%9D%B8%EC%84%A0.../)'이라는 것이 있다, 한 번 같이 읽어보는 건 어때요? 라고 꼬셨는데 두 분 다 "싫어요, 싫어요" 라고 ㅎㅎ
밥을 차려서 먹고 설거지를 하시는 데 찬물만 나와서 보니 보일러에도 에러코드가 떠있다. 뭔가 잘 돌아가지 않는 날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다시 한 번 만인선언문 읽기를 내가 우겨서 같이 읽어보았다. 하지만 역시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나 혼자 간직하기로..
A님이 평소처럼 8시반에 잠에 드시고 B님이 내 옆에 앉아서 이런저런 삶의 경험들을 들려주셨다. 세상도 가까운 관계도 B님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여러 이야기들을 덤덤하게 얘기하시는 것을 들으면서 어딘가 삐걱댔던 하루지만 그래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혼자 살 집을 알아보고 싶어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꼭 그렇게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혼자 나선 세상이 이전처럼 불친절하지만은 않고 너무 외롭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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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주거지원 일기에 대해서
서울시에서는 2022년까지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설 장애인 뿐 아니라 가족이 있는 재가장애인 분들도 실제로는 가족이 있어도 독립거주를 위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요.
지금 제가 참여하는 사업은 이런 재가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부장애인복지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거지원실험사업입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 분들은 한 달간 자립체험주택에서 가족, 본가와 떨어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주거코치로서 참여자 분들의 퇴근 후 생활을 함께 하며 식사 준비, 빨래 등 각종 생활 요령을 알려드리고 안전 문제를 확인하는 등의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첫 주에는 매일, 그 다음주부터는 격일만 방문하면서 자립 생활에 익숙해지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회로 제안을 받아 이번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발달장애인 분들이 이용시설, 집을 벗어나 보다 폭 넓은 관계와 선택지 속에서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 것은 언제나 제가 관심있는 일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생각보다 심심하고, 그런데 어딘가 시트콤스럽고 가끔은 뭉클하기도 한 순간들을 기록하고자 이 일기를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