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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재필 Jul 08. 2021

8. 자립주거지원 일기 (8/15)


 오늘은 B님의 생일이었고 기념으로 두 분과 연신내에 나와서 고기도 먹고 보드게임도 했다. 두 분께는 오늘 경험이 처음인 것이 많았다. 연신내라는 곳도 처음, 돼지갈비를 이렇게 나와서 먹은 것도 처음, 보드게임도 처음. 우리에게 수많은 경험들을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직 얼마나 낯선 것인지 체감했다. 


우리가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같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고 그것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함께할 수 있는 사람들도 분명 충분히 존재할 것이다. 단순한 활동보조 뿐 아니라 이렇게 지역사회에서 경험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네트워크가 동작할 수 있다면?발달장애인 또는 느린학습자들이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쉬운 말로 된 길찾기 어플리케이션 등 기술이 발전한다면? 즐거운 상상이고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상상력과 실행해볼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런 활동의 성과를 적절한 방식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만 있다면 말이다. 복잡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보드게임장에서 할리갈리를 할 때에 평소에 점잖고 느릿하시던 A님이 갑자기 번개같이 손을 움직여 종을 울리는 모습이 폭소를 자아냈다. 밑장빼기까지는 아니지만 교묘한 전략까지 구사하시는 모습에 이런 모습이? 싶었다. 알고보니 승부사 체질이었던 A님. 클래식 브루마블도 한 판 하고 천천히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A님은 뭔가 돌아오는 길에 들뜬 모습이었고 B님은 다음주에는 만화방도 가보고 싶고 오락실도 가보고 싶다고 하셨다. 아직 안해본 경험이지만 이런 것도 못해봤어? 라고 놀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사람의 욕구와 욕망이 이런 실험 속에서 구체화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 경험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에서 즐거워하신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두 분이 같이 잘 지내시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다. A님이 성실하시긴 하지만 중간중간 생기는 실수들을 조금 귀찮음을 많이 표하시지만 빠릿하고 형을 잘 챙기는 B님이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두 분이 활동 이후에 실제 자립을 하게 되면 하우스 메이트로서 주거코치의 보조가 적절하게 맞춰진다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사는 일이 망상도 아니고 미션 임파서블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활동도 어느덧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202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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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주거지원 일기에 대해서


서울시에서는 2022년까지 장애인 탈시설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설 장애인 뿐 아니라 가족이 있는 재가장애인 분들도 실제로는 가족이 있어도 독립거주를 위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요. 


지금 제가 참여하는 사업은 이런 재가장애인을 대상으로 서부장애인복지관에서 수행하고 있는 주거지원실험사업입니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 분들은 한 달간 자립체험주택에서 가족, 본가와 떨어져 생활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주거코치로서 참여자 분들의 퇴근 후 생활을 함께 하며 식사 준비, 빨래 등 각종 생활 요령을 알려드리고 안전 문제를 확인하는 등의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첫 주에는 매일, 그 다음주부터는 격일만 방문하면서 자립 생활에 익숙해지실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회로 제안을 받아 이번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발달장애인 분들이 이용시설, 집을 벗어나 보다 폭 넓은 관계와 선택지 속에서 삶의 가능성을 넓히는 것은 언제나 제가 관심있는 일입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생각보다 심심하고, 그런데 어딘가 시트콤스럽고 가끔은 뭉클하기도 한 순간들을 기록하고자 이 일기를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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