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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천소년 May 02. 2024

비둘기는 잘못한 것이 없다

비둘기가 혐오 동물이 된 이유

© nate_dumlao, 출처 Unsplash


 얼마 전 아이랑 같이 집 근교에 있는 과학교육원에 갔습니다. 가는 도중 장난기가 발동한 아이가 갑자기 나무 아래의 비둘기 쪽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비둘기가 푸드덕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아이에게 갑자기 뛰면 어떡하냐고 화를 냈습니다. 아빠의 진심 어린 분노에 놀란 아들은 놀랐습니다. 비둘기를 쫓아낸 행동이 잘못된 것인 줄 몰랐다면서 겁을 먹은 표정으로 아이는 사과를 했습니다. 


 화를 버럭 하고 내고 나니깐 괜히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제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지더라고요. 부정적 감정을 애꿎은 비둘기들에게 화풀이를 하며 풀었습니다. 아이에게 비둘기는 도시에서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나 오물 등을 먹고 살며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비위생적인 동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비둘기가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더러운 것들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고 당부를 했고요.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비둘기에 대한 저의 거친 평가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 엄마에게 아빠는 비둘기를 정말 싫어한다고 고자질을 했죠. 생각해 보면 제가 처음부터 비둘기를 싫어했던 것은 아닙니다.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부터 비둘기를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비둘기에 대한 좋고 나쁘고의 감정 따위가 없었어요. 한 번은 공강 시간에 배가 고파 학교 매점에 가던 길목에서 비둘기 한 마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혹시라도 나의 발걸음에 놀란 비둘기가 나를 향해 날아오를 것 같다는 두려움에 결국 다시 주린 배를 움켜잡고 되돌아간 적도 있지요. 최근에 다녀왔던 쿠알라룸푸르의 바투 사원 앞 광장도 비둘기 떼로 가득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비둘기를 피할 길이 없어서 엄청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으로 비둘기 사이를 조심조심 살금살금 겨우 비집고 사원 안까지 들어간 적도 있지요.  


 왜 저는 비둘기를 싫어하게 되었을까요? 비둘기에 대한 혐오는 단순히 저의 취향 문제일까요?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지금은 도시 오염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국어 문제집에서 한 번 정도는 마주했을 '성북동 비둘기(김광섭)'라는 시 작품에서 비둘기는 무분별한 산업화로 인해 터전을 잃은 생명체로 묘사가 됩니다. 비둘기를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은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가득합니다.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비둘기가 자연과 사람을 잃고 쫓겨난 신세가 되었다며 말이죠. 1960년대 후반에 나온 그 작품에서 비둘기에 대한 혐오 정서는 일체 찾아볼 수 없습니다.


출처: 네이버 웹툰 복학왕 77화(기안84 )


 하지만 비둘기는 나름대로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오염된 자연 생태계에서 먹을 것을 찾지 못하자 인간이 버린 오물에 입맛을 맞춘 것이지요. 기안 84의 웹툰들을 보면 대학생들이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토를 하고 뻗어 있으면 꼭 대량의 비둘기들이 날아와서 오물을 먹습니다. 도시의 비둘기들은 그렇게 인간의 오물이나 함부로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 등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들의 덩치는 점점 비대해졌고, 개체 수는 늘어났으며, 비둘기의 세력은 인간에게 조금씩 불편함을 너머 혐오의 정서로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특정 대상에 대한 혐오의 정서는 다양합니다. 꽃이 만개하는 이맘때 즈음이면 꼭 한 번씩 수업하는 교실에 벌이나 벌레가 난입할 때가 있습니다. 여학생들 대부분은 갑자기 교실 안으로 침입한 벌이나 벌레 때문에 난장판이 됩니다. 비명을 지르는 학생도 있고, 제자리에 앉아 벌벌 떠는 학생도 있지요. 수업은 도저히 진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분명히 의연히 벌레를 잡을 수 있는 학생이 있을 텐데 대부분 부끄러워하며 상황을 관망합니다. 결국 사태를 빨리 해결하고 수업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서는 교사인 제가 나서야 합니다. 창문을 활짝 열어 벌레가 교실 밖을 빠져나가게 최대한 유도를 하거나 가끔 생포를 해서 창문 밖으로 던지기도 합니다. 작은 미물을 보고 도망가려는 학생들을 향해 웃으면서 말합니다. "이 아이 입장에서는 너희들이 진격의 거인인 수준인데 왜 도망을 가냐고. 너희 손바닥 스매싱 한 방이면 벌레는 이 세상과 작별해야 해."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 몸무게의 100분의 1 정도인 벌레가 무섭다며 난리입니다. 벌레는 징그럽고 비둘기는 혐오스럽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태어날 때부터 비둘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갖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보고 배우고 듣고 습득한 것들이 모여 지금 저를 이루고 있는 상식을 만든 것이니깐요. 비둘기에 대한 세상의 정보들과 그것에 대한 세간의 평가 등이 쌓여 저 나름대로 비둘기에 대한 이미지를 정립했을 것입니다. 제가 살아온 환경과 나만의 경험들 또한 내가 가진 생각과 특정 대상이나 집단에 대한 감정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요.


 즉, 제가 비둘기를 싫어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호불호가 반영된 나의 생각은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하나의 상식이 되어 버립니다. 제가 아이에게 비둘기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혐오의 동물이라 싫어하고 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한 것처럼 말이죠. 떠오르는 나의 생각과 감정에 대한 의심 없이 나의 생각과 감정이 곧 나라고 확신까지 합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생각은 금방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고, 어떤 생각은 오랫동안 나의 뇌리에 남아 강한 확신으로 자리 잡기도 합니다. 비둘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후자에 해당하겠지요.


 비둘기에 대한 나의 생각은 과연 무조건적으로 맞는 것이었을까요. 누구나 생각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만 그 생각에 믿음을 부여할 것인가는 나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아이에게 지나치게 비둘기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했던 제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져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과연 비둘기는 나에게 그리고 인간들에게 그렇게 피해를 주는 생명체였는지 말이죠. 그리고 비둘기를 혐오하는 나의 감정이 오롯이 나의 취향이자 내 생각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비둘기가 저에게 직접적으로 해코지를 한 적은 단연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어렸을 때 개나 고양이에게 습격을 당할 뻔한 적은 있었지요. 하지만 개나 고양이를 해로운 존재로 생각해 누군가에게 정말 싫어한다고 격하게 표현한 적은 없습니다. 엄밀히 따졌을 때 비둘기에 대한 내 생각은 오직 나만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속해 있는 사회 문화적 요소와 살면서 마주하게 된 여러 메시지들의 영향으로 비둘기에 대한 나의 생각이 정립된 것입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비만과 더러움의 상징인 닭둘기가 된 이유는 인간에게 있습니다. 무분별한 개발과 도시의 비대화는 비둘기를 닭둘기로 만들었죠. 비둘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비둘기를 혐오할 이유도 없었고요. 비둘기들이 자연 속에서 먹이를 찾고, 생태계에서 조화롭게 살아가지 못하게 만든 것은 결국은 인간 때문입니다. 


 비둘기 사건(?)을 통해 저의 생각과 언행을 되돌아봅니다. 사실 여전히 비둘기가 근처에 있는 것이 싫습니다. 하지만 비둘기 역시 자기보다 몇십 배나 덩치가 큰 제가 두려울 것입니다. 제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반드시 그 사람도 저를 싫어할 것입니다. 비둘기가 더럽게 느껴질 때마다 인간이 비둘기가 다니는 길을 더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떠올려 봅니다. 저를 포함한 인간 개체를 비판하는 것보다 거리 일부를 장악(?) 하고 있던 비둘기들을 미워하는 것이 편하고 쉬운 행동이었나 봅니다. 


 누군가의 특정 행동만을 보고 그 사람을 쉽게 평가하는 생각이나 표현은 하지 않았는지도 반성해 봅니다. 제가 가진 편견으로 특정 잡단을 미워한 적은 없었는지 떠올려 봅니다. 장애인, 여성, 외국인, 성소수자 등 근거 없이 혐오 대상이 되었던 분들에 대해서도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지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무작정 뭔가를 혐오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준 비둘기에게 감사합니다. 그동안 필요 이상으로 그들을 미워했음을 사과드립니다. 비둘기는 잘못한 것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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