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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우리 소설 김시습의 금오신화 / 돌베개

만복서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by 박소형 Jan 20. 2025

작년에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 고전은 내용만 대충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읽을 필요성을 많이 느끼지는 못했다. 지금과는 시대적 상황이 많이 다르니 공감하기 쉽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열하일기>를 읽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 읽어도 앞서 가는 연암의 생각과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에 우리 고전이 새롭게 보였다.





<열하일기> 덕분에 생긴 우리 고전에 대한 관심은 <금오신화>로 이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 소설로 잘 알려져 있고 조선 초 계유정난 때 생육신이었던 김시습이 쓴 글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금오신화>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이라는 것도 잘 못된 정보였다. 이 책의 뒷부분에 나와있는 해설에는 <금오신화>보다 5백여년 전 창작된 소설인 최치원의 <호원>이 있고, 고려 초에는 최치원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최치원>도 있었고, 주인공 조신이 꿈을 통해 욕망과 깨달음을 경험하는 <조신전>도 있다고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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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에 막연히 한 편의 소설일 거라고 생각했던 <금오신화>는 단편 모음집이었다.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이렇게 총 5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의 제목 뜻과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만복사저포기>는 만복사에서 저포로 내기를 하다라는 뜻으로 양씨 성을 가진 선비가 만복사의 부처와 내기를 하여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지만 여인은 왜구의 손에 죽은 영혼임을 알고 이별을 맞이하는 이야기다.

<이생규장전>은 이생이 담장을 넘어가다라는 뜻이다. 이씨 성을 가진 선비가 명문가 처녀 최씨와 서로 사랑하여 부부가 되었지만 홍건적에게 죽어 귀신이 된 최씨를 다시 만나는 내용이다.

술에 취해 부벽정에서 놀다라는 뜻의 <취우부벽정기>는 술에 취한 홍씨 성을 가진 선비가 부벽정에서 선녀를 만나 신선 세계를 경험하고 현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이 세 편의 이야기는 비슷하다. 현실 세계의 선비가 영혼이나 선녀같은 다른 세계의 여인과 사랑을 하는 판타지 내용이다. 여주인공은 모두 절개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었고 남자 주인공인 선비들도 현실로 돌아와도 상대방을 그리워한다. 김시습이 의미하는 사랑은 절개 즉 절의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사건에 반발하여 벼슬을 버리고 절개를 지킨 여섯 명의 신하 중 한 명이었던 김시습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이 절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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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염부주지>는 남쪽에 있는 염부주에 가다라는 뜻으로 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꿈속에서 염라국을 방문하여 염라대왕을 만나고 와서 깨어나 얼마 후에 죽어서 염라대왕이 된다는 이야기다.



용궁의 잔치에 초대 받다라는 뜻의 <용궁부연록>은 한씨 성을 가진 선비가 용왕의 초대를 받아 용궁에 가서 신기한 경험을 한다는 내용이다.



선비가 염라국이나 용궁에 가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다는 판타지 내용으로 이 두 편 또한 비슷하지만 품고 있는 뜻은 다르다. <남염부주지>에는 김시습 자신이 죽어서 염라대왕이 되어 세조를 심판하겠다는 내용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용궁부연록>은 김시습이 어린 시절 세종대왕의 부름을 받아 궁궐에 간 경험이 반영되어 있어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고 용왕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단종을, 세 용신은 수양대군군의 왕위 찬탈 과정에서 희생된 인물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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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이 21세(1455년)에 북한산 중흥사에서 과거 공부를 하던 중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자 문을 닫고 사흘을 나오지 않고 통곡하다 책을 다 불살라 버린 후 미친 시늉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스님이 되어 떠돌다 29세(1463년)에 경주 금오산에 정착하여 1470년까지 지냈는 데 <금오신화>는 바로 이때 쓰여진 작품이다.



<금오신화>는 단순히 사랑과 이상 세계에 대한 판타지가 아니었다. 세조에게 목숨을 잃은 단종과 그 신하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에 대한 공감을 표현하기 위해서 김시습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쓴 작품이었다. 김시습이 사후에 염라대왕이 되어 세조를 통렬하게 심판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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