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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여름 – 알베르 카뮈

앙드레 지드부터 니체까지, 카뮈의 철학에서 삶의 희망 찾기

by 박소형


카뮈를 처음 만난 건 고등학교 때였다.

<이방인>을 읽었는데 다른 내용들은 기억 속에서 다 사라지고 바닷가에서 주인공이 햇빛 때문에 누군가를 총으로 살해하는 장면만이 머릿속에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지난주 독서 모임에서는 카뮈의 에세이 <결혼·여름>을 읽었다. <이방인> 이후로 세월이 훌쩍 넘어서 <결혼·여름>으로 다시 카뮈를 만난 셈인데 너무나 낯설게만 느껴졌다. 분명 텍스트를 읽고 있지만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에 직면했다.



200페이지의 얇은 책인 <결혼·여름>은 6년간 600권 넘는 책을 읽으며 쌓아온 문해력에 대한 자부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두 번씩 읽고 필사를 해도 카뮈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었다. 독서 모임 선배님들도 쉽지 않았는지 이 책으로 겸손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는 선배님, 책이 수수께끼 같다는 선배님, 어두운 방에서 더듬더듬 무언가를 찾아가는 책이라는 선배님들의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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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에 어렵게 읽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도 떠올랐다. 성경, 그리스·로마 신화, 단테의 <신곡>, 괴테의 <파우스트> 등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나에게 28살의 젊은 지드의 말은 정돈되지 않은 생각처럼 읽혔던 기억이 남아있다. 어려운 내용도 있었지만 자두를 두고 감동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이 책 <결혼·여름>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쉽지 않은 내용이라 책 내용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카뮈의 고향 알제리의 티파사, 알제, 오랑 등 여러 지역의 자연을 예찬하는 부분은 반가웠다.



아침 햇살 아래, 커다란 행복이 공간 속을 유영한다.
(···)
‘이 땅에 살아서 이 모든 것을 본 이들은 행복하여라.’
<결혼·여름> p.22




더 재밌는 사실은 카뮈는 젊은 시절, 앙드레 지드의 작품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고, 특히 <지상의 양식>을 읽고 지드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지상의 양식>은 기독교적 금욕주의에서 벗어나 감각과 경험을 통해 삶의 충만함을 추구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는 삶의 부조리를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반항과 자유, 열정을 통해 의미를 찾으려 했던 카뮈의 사상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드와 카뮈는 44살의 나이 차이에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몇 달 전에 어렵게 읽은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떠올랐다. 이 책 <결혼·여름>에서도 니체의 초인과 무거움의 정신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카뮈의 사상이 니체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니체는 기존의 도덕을 파괴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하는 초인을 제시했는데 카뮈 역시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반항을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자기 창조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결국 이 책은 까뮈의 사상과 철학이 담겨 있다.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의 무의미와 허무함을 인식하는 부조리 철학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 감각적으로 느끼는 삶의 아름다움을 긍정하는 태양의 철학이 은유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어렵다고 느꼈던 것이다.



나는 바다에서 자랐고, 바다가 있어 가난도 내게는 호화로웠다.
그러다가 바다를 잃자 모든 호사가 잿빛으로 보였고,
궁핍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이후로 나는 기다린다.
귀항하는 선박들, 물의 집, 맑은 날을 기다린다.
<결혼·여름> p.177


나는 늘 먼바다에서 위협받으며,
고귀한 행복 한가운데서 사는 기분이었다. (1953)
<결혼·여름> p.188



이방인.jpg 카뮈의 <이방인>


카뮈의 사상을 조금이나마 알고 읽는 <이방인>은 어떤 느낌일까. <이방인>을 다시 읽고 나니 ‘한 편의 소설은 이미지로 표현한 어떤 철학에 불과하다’는 까뮈의 말이 떠오르며 주인공 뫼르소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에도 감정의 동요 없이 일상을 살아가고 강렬한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총으로 살해하는 뫼르소는 삶의 무의미와 허무함을 상징하면서 까뮈의 부조리 철학의 전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사형을 선택한 뫼르소의 마지막 내레이션에는 삶의 부조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연대하고 긍정하는 태양의 철학이 담겨 있었다.



세계가 그토록 나와 닮아서 마침내
그토록 형제 같다는 것을 깨닫자,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이방인> p.147




카뮈의 어린 시절, 알제리에서의 삶은 가난하고 힘든 부조리의 연속이었지만 알제리의 풍요로운 자연에서 위로받으며 꿈을 찾아갔던 경험이 카뮈의 철학을 완성시킨 것은 아닐까.

어렵게 읽은 책 속에서 카뮈의 철학을 찾아내고 삶의 희망도 찾았다.

이번 독서도 해피엔딩이다. 나에게 독서는 언제나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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