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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 존 윌리엄스

스토너같은, 스토너스러운, 스토너다운 우리들의 삶

by 박소형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
어떤 걸 고를지 아무도 알 수 없거든.


초콜릿 상자 안에는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초콜릿이 들어 있지만, 먹어 보기 전까지는 어떤 맛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우리 인생 역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삶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기쁨, 슬픔, 즐거움, 절망을 느낄 수 있는 경험으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가 어떤 운명을 만나게 될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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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인 포레스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해주는 조언인데 이번 주 <스토너>를 완독하고 문득 떠올랐다. 포레스트의 인생에 대한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라면, 스토너의 인생을 담은 소설이 <스토너>다. 두 작품 다 미국이 배경이고 역사적 사실 속에서 한 개인이 겪는 에피소드가 잘 녹아 있는 점도 비슷하다.



이것은 그저 대학에 가서 교수가
된 사람의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매혹적인 이야기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톰 행크스가 <스토너>에 대하여 평가한 이 두 문장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인내하는 삶을 살고 있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스토너는 아버지의 권유로 농과 대학에 진학한다. 하지만 그는 우연히 들었던 영문학 강의를 듣고 매료되어 영문학 교수의 길을 걷는다. 배움에 대한 열정을 갖고 훌륭한 교육자가 되기 위해 한평생을 살아가지만 개인적인 삶은 행복과 거리가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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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에 반한 이디스와의 결혼 생활은 불편하기만 하고 딸 그레이스와의 관계도 점점 멀어져 간다. 동료 교수 로맥스와 갈등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기도 하고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키워가던 강사 캐서린과는 이별을 선택한다. 스토너는 이 모든 삶의 불행에 저항하기보다 묵묵히 받아들이고 학문에 대한 열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피로가 통증이 되어 찾아간 병원에서는 암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퇴직 후 병상에 누워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기대했는지 돌아보며 자신의 책을 펼쳐보다 죽음을 맞이한다.



이처럼 스토너의 삶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깝다. 가족 관계에서 보여주는 그의 삶은 불행했고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은 무책임해 보였다. 동료 교수와 이견에서 발생한 문제는 양보 없이 자신의 주장만 고집하며 갈등을 키워가는 모습은 융통성이 없어 보였다. 남들이 보기엔 불륜관계였지만 사랑의 의미를 깨닫게 해 준 그녀가 떠나가는 걸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모습은 비루해 보였다.

그렇다고 이 모든 불행이 비극으로 치닫는 결과를 향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시련일 뿐이고 물 흐르듯이 그의 삶을 이어 나가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과 화해하며 자신의 삶을 관조하면서 평화롭게 눈을 감는다.


이 소설은 여느 소설처럼 드라마틱한 성공이나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는다. 사실 위대한 성공이나 비극적인 삶을 사는 것은 일부 몇몇 사람들의 스토리일 뿐 우리의 인생도 스토너처럼 예측할 수 없는 작은 실패와 성공이라는 허들을 넘고 있다. 지금 나의 결정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모른 채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결국 스토너의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였다.



나와 같은 독자들이 영웅의 서사가 아닌 평범한 스토너같은 인물의 서사에 공감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으로 인한 내면의 갈등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에 이 책이 50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역주행이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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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스토너의 인생을 만나면서 새로운 바람을 가져본다. 초콜릿 상자와 같은 삶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그 어떤 상황이든 기꺼이 받아들이면서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삶을 완주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이 모든 것을 이루고 난 뒤에는 평온한 마음으로 인생을 반추하며 고요히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다. 스토너가 그랬듯이.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P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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