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정규직 전환 2주 만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며 나보다 먼저 서울 생활을 하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카카오톡 메신저로 이미 "나 정규직 전환됐다!" 자랑한 후였다.
친구들은 진심으로 나를 축하해주었고
계약서를 쓰고 왔다는 나에게
고맙게도 '축 계약'이 쓰인 레터링 케이크를 준비해 주었다.
나는 초를 후 불고는 큰소리를 치면서 말했다.
이 회사에서 열심히 배워서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하겠노라고.
내 마음가짐이 처음엔 그렇고 그랬지만 결국엔 나에게 기회를 준 은인 같은 존재라고.
이 한 몸 바쳐서 매출을 몇 배로 신장시켜 보겠노라고.
그리고 정확히 1주일 뒤,
회사의 폐업 통보를 받았다.
사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정규직 전환이 확정되었던 주 금요일에는 파트 축하 회식을 잡고,
"OO 씨 다음 주부턴 많이 바빠질 거예요"라는 으름장도 듣고,
파트원 다 같이 하하 호호 웃으며 퇴근했다.
그러나 차주 월요일부터 분위기가 급격히 변화하는 게 느껴졌다.
평소엔 눈에 띄지도 않던 대표의 팀장 긴급 호출,
팀장과 파트장의 긴급회의,
나와 입사동기만 쏙 뺀 팀 회의...
하루 이틀은 그러려니 했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나 보다.'
'매출 비중이 컸던 회사 수주를 새롭게 따낸다더니 실패했나 보다.'
'누군가 높으신 분이 퇴사하나 보다.'
혼자 커져가는 불안감을 이런저런 생각들로 꾹꾹 눌러댔다.
누구보다 농담 따먹기를 좋아하는 파트장님이
출근부터 퇴근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을 때도,
신입사원을 제외한 회사 구성원들의 타이핑 소리가 공격적일 만큼 거칠게 느껴질 때도,
우연히 들른 창고에서 타 팀원 분이 울고 계셨을 때도,
나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급격한 분위기 변동이 있고서 4일쯤 흘렀을까.
그날은 목요일이었고 파트 축하 회식이 예정된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오니 팀장님께서 네시쯤 대표 미팅을 하자고 하셨다.
대표미팅이라니.
입사 후에도, 정규직 전환되었을 때도 하지 않았던 대표 미팅을 지금 갑자기 왜?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모든 불안감을 빨리 해소하고 싶었다.
뭐든 알고 싶었다.
본인들만 알고 있는 사실을 나에게도 공유해줬으면 싶었다.
네시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파트장님이 갑자기 잠깐 보자고 하셨다.
잔뜩 긴장한 나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이 무슨 말을 할 텐데, 그 말을 듣고 나서 오늘 회식 참석 여부를 정해주세요.
OO 씨 마음대로 해도 되니까 편하게 말해주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길래
도대체 나에게 무슨 최후통첩을 하길래
이미 참석이 예정되어 있는 회식의 참석 여부를 다시 말하란 말인가.
사실 이때 나는 예감했다.
나의 첫 직장 생활은 여기서 마감이라는 것을.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들어간 회의실에서
나는 제대로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는 대표의 정중한 사과를 받았다.
일어나 고개 숙여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50대 남성 앞에서
감히 만 25세인 나는
괜찮다고 말할 수 없었다.
괜찮지 않았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사정은 이러이러했다.
해외에 모기업이 있는 회사였던 우리 회사는
코로나를 거치며 매출 실적이 급감했고,
이를 쇄신하기 위해 신입사원을 뽑았으며 매출이 회복되는 중이었지만
본사에서 숙고 끝에 한국지사 철수를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머리가 하얗게 백지가 되었다.
그러건 말건 나랑은 상관없었다.
지난 나의 3개월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 영상처럼 지나갔다.
괜찮지 않았으며
부당하다고 생각했으며
내 시간들이 아까워 미치도록 억울했지만,
이미 그렇게 결정이 났다는데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고 알겠다고 했다.
미팅을 가장한 퇴사통보는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