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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씨 Nov 06. 2024

회사가 폐업했다 (1)

그것도 정규직 전환 2주 만에

2023년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남쪽나라,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서울의 겨울 공기는 콧잔등이 시릴정도의 추위를 경험하게 했다.


2주 만에 상경을 결심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말했다

"굳이 그 멀리까지 가서 그 고생을 해야겠니."

그때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가치가 있는 경험일 것이라고.


그땐 몰랐다. 그 고생이 이 정도일 줄은.




내로라하는 4년제 대학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온 나에게도 취업시장은 꽤나 혹독했다.

문과 중에서도 인문계열,

나는 문학을 좋아하는 소녀였을 뿐인데 그런 호불호는 구직의 세계에서는 도움이 안 되었다.


이과를 갈걸... 아니 경영학과를 갈걸... 이런 류의 후회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해가며

더 내려갈 곳도 없는 지하세계로 꺼져가는 내 자존심을 구제하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했다.

월에 45만 원짜리 단칸 자취방에서 구닥다리 노트북으로 닥치는 대로 자소서를 써댔다.


절실했다.


신빙성이 있는지도 모를 AI 면접 따위가 감히 내 가치를 평가해?라고 생각하면서도 유튜브에 있는 AI 면접 꿀팁은 모조리 챙겨봤다.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에 면접을 몇 번이나 다니며 추운 겨울 살색스타킹에 구두를 신고도 다리가 높은 굽에, 영하의 온도에 아려오는 줄 몰랐다.


그렇게 나는 내 첫 직장에서 합격 문자를 받았다.


생각보다 떨떠름했고,  

가슴 한켠에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도했다.


원하던 산업군, 원하던 직무,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리는 일은 전혀 아니었다.


학부시절엔 거들떠도 보지 않았을 회사.

아니, 이름도 몰랐을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감사했다.


당시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뭐라도 배워보자. 넓은 시장에서, 그 무섭다는 서울에서 닥치는 대로 해보자.

나는 아직 젊으니까.'




입사를 단 2주 남기고 받은 합격통보 덕분에 넘치게 축하할 수도, 축배를 들 시간도 없었다.


서울-부산을 당일치기하며 월 90만 원짜리 오피스텔을 하루 만에 구했다.

내 고향 부산 단칸 자취방 보다 정확히 두 배 비싼 가격이었지만

더 좁고 더 추웠다.


부산 자취방의 물건을 정리하고,

생활비를 벌 명목으로 하고 있던 과외들과 과사무실 알바를 그만두고,

동네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하며

나는 그 추운 방에서 시작할 제2의 출발을 위해 주변을 정리해 나갔다.


생전 처음 가보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동네에서

이삿짐을 정리하며 첫 출근을 준비를 할 때는

걱정보다는 새 시작에 대한 막연한 설렘이 더 컸다.

 



첫 출근 날,

팀장님은 얼어있는 신입사원들에게

이번 채용은 '채용연계형 인턴십'임을 그 무엇보다 강조했다.


3개월 수습과정을 거치며

신입사원의 역량을 평가하고,

중간발표와 최종 발표를 진행할 것이고,

성실성과 적극성이 매우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며,

신입사원 4명 중 반절인 2명 정도만 합격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내 모든 고향에서의 생활을 정리하며 새로이 시작한 연고도 없는 도시에서의 직장생활이

3개월이면 명을 다할 수도 있겠구나.


긴장의 끈을 절대 놓지 않아야겠다.

남들보다 더 잘해야겠다.


만 25세였던 나에게 이토록 냉정했던 경험은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이 사회생활의 과정이자 시작이겠거니 되뇌며

용기와 자신감이 고개를 픽 숙일 때마다 정신 차리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업무는 할 만했다.


당시 회사는 HR 관련 대행사였고,

우리 파트에서는 꽤나 굵직한 기업들의 인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배울 점이 많은 파트장님을 만나 페어로 업무를 수행하며 차츰차츰 배워나갔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회사였기 때문에

대기업이었으면 당연히 외주를 주었을 일들도 손수 직접 해나가면서 희열도 느꼈다.


이상하리만치 문과적으로만 돌아가던 뇌가

살아남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는지 다른 분야에 밝아지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부터였다.


GA(구글 애널리틱스)로 데이터 분석을 하며 숫자랑 친해지질 않나,

일러스트레이터 활용 방법을 터득해서 누끼 따기부터 간단한 디자인까지 척척 해내질 않나.


단 3개월 만에,

나는 마치 원래 거기 있었던 사람처럼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나는 누구보다 절박했다.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으면 월 90만 원의 월세를 충당할 수 없고 짐을 싸서 부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럴 순 없다.

이렇게 돌아갈 순 없다.라는 알량한 자존심,

그리고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직장이라도 어찌어찌 적응하며

어엿한 직장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스스로가 싫지 않았다.


주말을 할애해서 PT준비를 하고,

파트장님께 면담 요청을 해 PT 첨삭을 받기도 하고,

고객사 채용절차 전 과정을 부사수로 담당하며 혼자 40페이지에 달하는 결과보고서도 작성했다.


3개월이 흘렀고,

나는 그렇게

정규직 전환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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