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도 정규직 전환 2주 만에
회식은 예정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입사 3개월 만에 처음 하기로 한 축하회식은
단 일주일 만에
우울한 폐업회식이 되었다.
나는 자초지종을 따져 물었다.
언제 이 일들이 시작된 것이며,
어떤 수순으로 폐업을 확정 짓기로 했으며,
언제까지 근무 예정이며,
다른 팀원분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그리고 이럴 거라면 나는 왜 뽑았고 정규직 전환까지 도대체 왜 시킨 건지.
생각을 정리하면 할수록 어지러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납득되는 구석이 없었다.
파트장님과 파트원들은
본인들도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본사의 결정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통보를 받은진 딱 일주일 차라고 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이 회사를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이런 일이 아니고서야 공기가 그렇게 변하는 게 말이 안 되지.
납득이 되는 건 딱 이 것 하나뿐이었다.
처음으로 팀원들과 소주를 마시는데,
평소 주량보다 많이 마셨음에도
술이 취하지 않았다.
회식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고 온
월세 90만 원짜리 오피스텔 입구에서
나는 주저앉아 울었다.
당시 회사는 을지로였고 우리 집은 영등포구였으므로
출근을 하기 위해선 2호선을 타고 강남에서 강북으로 매일 아침 넘어갔다.
폐업 통보를 받은 다음 날,
나는 어김없이 출근을 했고
3개월 만에 익숙해진 지하철 속에서 마주한 한강을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 먼 곳을 가서 왜 고생하냐는 엄마의 말이
처음으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회사에서는 딱 한 달만 더 출근하라고 했다.
내부적으로 정리할 것들이 남았는지
전 직원이 한 달 정도 더 근무하고
완벽한 폐업 수순을 밟는다는 것 같았다.
이제 내 손을 벗어난 일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내 손안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파트장님은 신입사원들을 배려해
정리와 관련된 일은 기존 직원들이 할 테니
이직준비를 하든 다른 일을 하든 각자 자유 시간을 보내라고 했다.
그냥 알겠다고 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른 파트에서 근무했던 입사동기인
H언니도 나와 같은 처지였다.
언니도 중간 PT도 최종 PT도 겪으며 정규직으로 전환된 상태였지만
나처럼 폐업통보를 받았다.
당시 회사 근처에는 큰 교회가 있었는데,
부지가 꽤나 넓어서 정자 같은 쉼터가 많았다.
우리는 그곳에 앉아서
고민을 토로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걱정하고,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서 함께 비난했다.
6월로 막 넘어가는 시기였고,
추운 겨울은 진작에 끝나고
언제 지났는지 모를 봄이 끝나고 있었다.
날씨는 눈부시게 좋았다.